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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 칼럼] 강한섭, '블러디 선데이' 충격과 감동

2004-06-29 14:24

 '블러디 선데이'라는 영국영화를 '할 수 없이' 보았다. 내가 진행하는 영화토론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주제 영화로 선정되었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의 담당 프로듀서가 이 영화를 처음 이야기했을 때 나는 마땅치 않았다. 요즘 같이 후덥지근한 여름철에 누가 그런 심각하고 작은 영국영화에 관심을 가질까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완전히 감동, 또 감동했다. 그리고 요즘 너무 안일하게 살고 있는 자신을 반성하게 되었다.
 '블러디 선데이'는 1972년 1월 31일 일요일 북아일랜드 데리시에서 일어났던 실재의 사건을 다루고 있다. 그날 데리 시민들이 영국 정부의 식민정책에 반대하고 시민권 보장을 요구하는 평화행진을 벌였다.
 그러나 행진이 처음 예정된 코스를 벗어나고 다혈질의 청년들이 돌 몇 개를 던지기 시작하자 영국군은 별다른 예고도 없이 발포하기 시작했다. 13명의 무고한 시민이 총격으로 사망하고 14명이 치명적인 부상을 당했다. 그래서 그날은 북아일랜드 독립 투쟁사뿐만 아니라 현대 유럽사의 수치스러운 피의 일요일로 남아있다.
 영화는 사건을 다큐멘터리적인 방법으로 재구성한다. 행진 재연 장면에는 1만명의 데리 시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했으며, 총격 이후 지옥으로 변한 병원 장면에는 실제 유가족이 출연했다. 발포한 진압군 역에는 실제의 공수부대 출신의 병사도 기용됐다.
 폴 그린그래스라는 젊은 감독은 아주 치밀하게 피의 일요일 하루를 재현한다. 그래서 관객은 마치 자신이 총탄이 난무한 시위현장에 있는 듯한 느낌 속에서 영화를 보게 된다.
 영화를 보다가 휴대 전화의 진동음이 울렸다. 처음에는 전화를 받았다. 하지만 두 번째 온 전화는 역사에 죄를 범하는 것 같아 받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휴대폰의 배터리를 뽑아 버렸다. 영화가 끝나고 극장에 불이 들어왔지만 흥분과 분노는 여전하다. 가슴이 울렁거리는 충격은 영화를 본지 일주일 지난 지금까지 여전하다. 단연 역사를 소재로 한 영화 중에 최정상급의 작품이다. 그리고 금년 한국에 공개된 외국영화 중에 으뜸이다.
 그런데 필자가 이렇게 의심을 살 정도로 칭찬을 늘어놓아도 관객들은 이 영화를 쉽게 볼 수 없다. 영화는 6월 중순 서울에서 고작 3개의 스크린에서 개봉되었다. 하지만 일주일도 되기 전에 강남의 으리으리한 멀티플렉스 극장은 영화를 이틀 간격으로 그것도 사람이 없는 오전에만 상영하고는 곧 간판을 내려 버렸다.
 그래서 이 놀라운 영화에 동참하려는 시민들은 무지무지 노력해야 한다. 인터넷에서 상영극장을 찾고 그것도 틀릴 수 있으니까 극장에 전화를 직접 걸어 상영여부와 시간을 확인해야 한다.
 '블러디 선데이'. 틀림없이 낯선 영화다. 하지만 지금 극장가를 석권하고 있는 '투모로우' 보다 충격적이고 '슈렉2' 보다 재미있는 영화다.
 요즘 한국의 극장들은 '돈 놓고 돈 먹는' 투전판이다. 이 끔찍한 마케팅의 지옥 속에서 '블러디 선데이'를 구출하자. < 영화평론가, 서울예술대학 교수 ksub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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