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상을 보며 다짐하는 것이 있다. 나는 60세가 되면 칼같이 은퇴하겠다는 것-그래서 이웃들의 밝고 즐겁고 건강한 할머니가 되겠다는 것이다. 나는 우리 사회에-정치, 사회, 경제할 것 없이 너무도 늙은 사람이 많다는 생각을 줄곧 가져왔다. 사실 늙는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지혜와 현명함 그리고 삶을 꿰뚫어보는 통찰력이 갖춰진다는-성숙해진다는 '성장'의 한 부분일수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한국사회는 이 사회를 이끄는 '늙은 사람'들이 '성장'보다는 '퇴행'의 상태에 있는 경우가 많다. 한 예로 얼마전 작고한 모 재벌기업의 총수가 그렇다. 또한 기업의 총수는 제대로 기동도 못하는 노인이 되어 아침과 저녁에 한 말을 헷갈리다 한국경제에 긴 그림자를 드리웠다. 만일 적당한 나이에 전문경영인에게 물려주던가 원 시나리오대로 자식들에게 물려주었어도 그런 혼란과 문제는 겪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왜 그랬을까? 육체와 정신이 명료했을 때 자신의 텃밭을 내주고 왜 새로운 꽃밭을 만들지 않았을까? 치열했던 생산지를 떠나 아름다운 꽃을 가꾸며 그는 그 자잘하고 소박한 행복을 만끽할 수는 없었을까? 나는 실제로 이런 질문을 그 회사에 있는 사람에게 해봤다. 그는 그 그룹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었다. 그의 대답이 이랬다.
'원래 카리스마가 강한 사람은 죽기 직전에야 권력을 놓는 법이죠. 그런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예외없는-'
하기는 그렇다. 한국사회는 이른바 '잘난 사람들'-카리스마가 있네하는 이들이 끝까지 돈과 명예와 권력을 놓지 않으려하는 데서 많은 소용돌이에 휩싸여 왔다. 그들은 도무지 무대에서 내려오려고 하질 않는다. 관객석에 앉아 무대를 보는 것도 참으로 좋으련만, 그들은 늙고 추한 대사까지 헷갈리는 늙은 배우가 되어 20대 햄릿역을 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것이다. 정치사에서 거의 40년 넘게 권력의 핵심에서 공놀이해온 한 정치인은 '사라지더라도 서쪽 하늘을 벌겋게 물들이겠노라'는 무시무시한(?) 괴기적 발언을 하기도 했다.
문제는 끝까지 돈과 권력에 연연하는 카리스마형 '성공시대' 노인네들 뿐만이 아니다. 얼마전 친구들 모임에서 '버스안의 울분(?)'이야기를 들었다. 두어개 짐을 갖고 아이와 함께 앉아있는 유치원엄마인 친구 앞으로 꼭 할아버지들이 다가온다는 것이다. 턱 와서는 '자리 비키슈'하는 표정으로-힘도 좋아 보이건만 '나 늙었다. 비켜라'이다. 대개 엄마들은 하는 수 없이 일어난다. 노인을 공경해야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문제는 대개 '만만한 아줌마' 앞에만 그 할아버지들이 선다는 것이다. 무서운 10대와 20대 청년, 인상 북쓰고 있는 30대 남자 앞에는 안가고 꼭 만만한 아줌마한테만 와서 자리내놓으라는 시위를 하는 것이다.
이 사회가 제대로 되려면 우리 모두가 물러날 때 물러나고 건강하고 당당하게 늙어야 한다. 이어령교수가 은퇴후 했던 석좌교수직을 물러나면서 한 말이 있다. '디지털 패러다임속에서, 특히 고령화사회 속에서 우리의 최고 미덕은 언제 사라질 것인가를 아는 것'이라고-제대로 늙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 인간에게 주어진 최고의 '인생예술'아닌가?
< 방송인ㆍsatuki@chollian.net>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한국사회는 이 사회를 이끄는 '늙은 사람'들이 '성장'보다는 '퇴행'의 상태에 있는 경우가 많다. 한 예로 얼마전 작고한 모 재벌기업의 총수가 그렇다. 또한 기업의 총수는 제대로 기동도 못하는 노인이 되어 아침과 저녁에 한 말을 헷갈리다 한국경제에 긴 그림자를 드리웠다. 만일 적당한 나이에 전문경영인에게 물려주던가 원 시나리오대로 자식들에게 물려주었어도 그런 혼란과 문제는 겪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왜 그랬을까? 육체와 정신이 명료했을 때 자신의 텃밭을 내주고 왜 새로운 꽃밭을 만들지 않았을까? 치열했던 생산지를 떠나 아름다운 꽃을 가꾸며 그는 그 자잘하고 소박한 행복을 만끽할 수는 없었을까? 나는 실제로 이런 질문을 그 회사에 있는 사람에게 해봤다. 그는 그 그룹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었다. 그의 대답이 이랬다.
'원래 카리스마가 강한 사람은 죽기 직전에야 권력을 놓는 법이죠. 그런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예외없는-'
하기는 그렇다. 한국사회는 이른바 '잘난 사람들'-카리스마가 있네하는 이들이 끝까지 돈과 명예와 권력을 놓지 않으려하는 데서 많은 소용돌이에 휩싸여 왔다. 그들은 도무지 무대에서 내려오려고 하질 않는다. 관객석에 앉아 무대를 보는 것도 참으로 좋으련만, 그들은 늙고 추한 대사까지 헷갈리는 늙은 배우가 되어 20대 햄릿역을 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것이다. 정치사에서 거의 40년 넘게 권력의 핵심에서 공놀이해온 한 정치인은 '사라지더라도 서쪽 하늘을 벌겋게 물들이겠노라'는 무시무시한(?) 괴기적 발언을 하기도 했다.
문제는 끝까지 돈과 권력에 연연하는 카리스마형 '성공시대' 노인네들 뿐만이 아니다. 얼마전 친구들 모임에서 '버스안의 울분(?)'이야기를 들었다. 두어개 짐을 갖고 아이와 함께 앉아있는 유치원엄마인 친구 앞으로 꼭 할아버지들이 다가온다는 것이다. 턱 와서는 '자리 비키슈'하는 표정으로-힘도 좋아 보이건만 '나 늙었다. 비켜라'이다. 대개 엄마들은 하는 수 없이 일어난다. 노인을 공경해야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문제는 대개 '만만한 아줌마' 앞에만 그 할아버지들이 선다는 것이다. 무서운 10대와 20대 청년, 인상 북쓰고 있는 30대 남자 앞에는 안가고 꼭 만만한 아줌마한테만 와서 자리내놓으라는 시위를 하는 것이다.
이 사회가 제대로 되려면 우리 모두가 물러날 때 물러나고 건강하고 당당하게 늙어야 한다. 이어령교수가 은퇴후 했던 석좌교수직을 물러나면서 한 말이 있다. '디지털 패러다임속에서, 특히 고령화사회 속에서 우리의 최고 미덕은 언제 사라질 것인가를 아는 것'이라고-제대로 늙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 인간에게 주어진 최고의 '인생예술'아닌가?
< 방송인ㆍsatuki@chollia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