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문화 발달로 '고려청자' 탄생 |
'흙과 불의 예술'로도 불리는 도자기 예술은 인간이 불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초기에는 점토를 구워 만든 토기로부터 자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발전돼 왔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고려청자나 영국의 본차이나, 일본의 도자기와 같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도자기 문화가 모두 차의 음용과 더불어 시작돼 차문화와 함께 꽃피우고 발전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비색과 독특한 제조기법으로 찬란한 자기 문화를 이루었던 청자는 원래 중국에서 3세기경부터 빚어지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는 9세기경 도입됐는데 당시 중국으로부터 불교의 한 계파인 선종과 더불어 차문화가 들어오면서 귀족이나 왕실, 승려사이에 차 마시는 습관이 늘어남에 따라 도자기의 수요도 크게 증가했다..
오늘날 차례(茶禮)라고 하는 것도 조선시대에 술로 바뀌긴 했지만 고려때 차를 놓고 제사를 지내는 데서 유래되었다.
차를 마시는 방법도 고려와 조선초기에는 가루차가 주류를 이뤘으나 이후 찻잎을 우려 마시는 잎차가 생산되면서 차 마시는 도구도 '찻사발'에서 '차관'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그 모양은 남녀의 신체를 형상화 시킨 형태로 차를 우리는 다관의 몸체와 뚜껑은 풍만한 여성의 가슴과 젖꼭지 모양이고, 찻물이 나오는 물대는 어린아이의 고추 모양, 손잡이는 어른의 성기에서 유래된 것으로 사람의 신체를 심미적으로 표현하며 여자와 남자 즉, 음과 양이 조화된 모양을 띄고 있다.
조선 초 주류를 이루었던 분청자기는 도자기 생산이 불가능했던 일본에서는 매우 귀중한 물품으로 취급됐다. 오랜 전쟁으로 천하를 평정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피폐해진 국민들의 마음을 순화시키기 위해 차 마시기를 적극 권장하면서 조선의 분청자기인 막사발을 최고의 차관으로 평가했다.
분청자기에 눈독을 들이고 있던 도요토미는 임진왜란때 우리나라의 분청자기 도공들을 모두 잡아다 큐슈 지방으로 데려가 처음으로 일본에서 자기 생산이 시작됐고, 중국의 도자기 생산이 중단되는 시점을 기회로 유럽 각국으로 수출해 세계적인 수출품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이처럼 한국이 일본에 자기 제조기술을 전수한지 1백여년이 지난 18세기
초에는 유럽에서도 처음으로 자기 제조가 시작되었다. 당시 마르코폴로에 의해 처음으로 유럽에 전해진 중국의 자기는 유럽인들에게는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워낙 고가여서 왕후나 고위 성직자, 대부호들만이 이러한 자기를 손에 넣을 수 있어 마치 자기를 가진 사람은 권력과 부의 상징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1743년 동인도 회사로부터 제조기법을 소개 받은 영국은 질 좋은 원료와 얇고 강한 내성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 동물의 뼈 가루를 넣어 제조하는 비법을 터득했다. 이렇게 태어난 '본차이나'는 세계적 명성과 더불어 자기 산업이 영국의 주요 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처럼 세계적인 도자기 산업은 모두 차로 인해 발달하게 되었고, 차문화와 더불어 꽃피우게 돼 차가 인류 문화에 끼친 영향은 매우 크다 할 수 있다.(도움말= (주)티젠대표이사 김종태). 〈 김형우 기자 hwkim@〉
차 종류 따라 '다관' 선택
★…차를 우릴 때 사용하는 주전자인 '다관'은 그 종류에 따라 흡습성이나 온도를 유지하는 보온력이 각각 달라 차에 따라 알맞은 것을 선택해야 한다. 발효가 되지 않는 녹차는 차의 성분이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에 떫은 맛이 적게 우러나도록 보온력이 약한 백자나 청자, 분청다관을 사용하는 것이 좋고, 우롱차에는 보온력이 강한 사기류가 적당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고려청자나 영국의 본차이나, 일본의 도자기와 같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도자기 문화가 모두 차의 음용과 더불어 시작돼 차문화와 함께 꽃피우고 발전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비색과 독특한 제조기법으로 찬란한 자기 문화를 이루었던 청자는 원래 중국에서 3세기경부터 빚어지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는 9세기경 도입됐는데 당시 중국으로부터 불교의 한 계파인 선종과 더불어 차문화가 들어오면서 귀족이나 왕실, 승려사이에 차 마시는 습관이 늘어남에 따라 도자기의 수요도 크게 증가했다..
오늘날 차례(茶禮)라고 하는 것도 조선시대에 술로 바뀌긴 했지만 고려때 차를 놓고 제사를 지내는 데서 유래되었다.
차를 마시는 방법도 고려와 조선초기에는 가루차가 주류를 이뤘으나 이후 찻잎을 우려 마시는 잎차가 생산되면서 차 마시는 도구도 '찻사발'에서 '차관'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그 모양은 남녀의 신체를 형상화 시킨 형태로 차를 우리는 다관의 몸체와 뚜껑은 풍만한 여성의 가슴과 젖꼭지 모양이고, 찻물이 나오는 물대는 어린아이의 고추 모양, 손잡이는 어른의 성기에서 유래된 것으로 사람의 신체를 심미적으로 표현하며 여자와 남자 즉, 음과 양이 조화된 모양을 띄고 있다.
조선 초 주류를 이루었던 분청자기는 도자기 생산이 불가능했던 일본에서는 매우 귀중한 물품으로 취급됐다. 오랜 전쟁으로 천하를 평정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피폐해진 국민들의 마음을 순화시키기 위해 차 마시기를 적극 권장하면서 조선의 분청자기인 막사발을 최고의 차관으로 평가했다.
분청자기에 눈독을 들이고 있던 도요토미는 임진왜란때 우리나라의 분청자기 도공들을 모두 잡아다 큐슈 지방으로 데려가 처음으로 일본에서 자기 생산이 시작됐고, 중국의 도자기 생산이 중단되는 시점을 기회로 유럽 각국으로 수출해 세계적인 수출품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이처럼 한국이 일본에 자기 제조기술을 전수한지 1백여년이 지난 18세기
초에는 유럽에서도 처음으로 자기 제조가 시작되었다. 당시 마르코폴로에 의해 처음으로 유럽에 전해진 중국의 자기는 유럽인들에게는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워낙 고가여서 왕후나 고위 성직자, 대부호들만이 이러한 자기를 손에 넣을 수 있어 마치 자기를 가진 사람은 권력과 부의 상징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1743년 동인도 회사로부터 제조기법을 소개 받은 영국은 질 좋은 원료와 얇고 강한 내성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 동물의 뼈 가루를 넣어 제조하는 비법을 터득했다. 이렇게 태어난 '본차이나'는 세계적 명성과 더불어 자기 산업이 영국의 주요 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처럼 세계적인 도자기 산업은 모두 차로 인해 발달하게 되었고, 차문화와 더불어 꽃피우게 돼 차가 인류 문화에 끼친 영향은 매우 크다 할 수 있다.(도움말= (주)티젠대표이사 김종태). 〈 김형우 기자 hwkim@〉
차 종류 따라 '다관' 선택
★…차를 우릴 때 사용하는 주전자인 '다관'은 그 종류에 따라 흡습성이나 온도를 유지하는 보온력이 각각 달라 차에 따라 알맞은 것을 선택해야 한다. 발효가 되지 않는 녹차는 차의 성분이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에 떫은 맛이 적게 우러나도록 보온력이 약한 백자나 청자, 분청다관을 사용하는 것이 좋고, 우롱차에는 보온력이 강한 사기류가 적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