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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희호 코치에게 바친 664분만의 골, 11경기만의 승리, 그리고 눈물

박찬준 기자

입력 2021-07-11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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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희호 코치에게 바친 664분만의 골, 11경기만의 승리, 그리고 눈…


[대전=스포츠조선 박찬준 기자]종료 휘슬이 울리자 모두 그라운드에 쓰러졌다. 한참이 된 후에야 일어났다. 선수들의 뺨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벤치에 앉은 선수들도 한동안 주저 앉아 흐느꼈다. 인생에서 가장 슬픈 승리, 이날 서울 이랜드 선수들에게는 그랬다.



이랜드는 10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전하나시티즌과의 '하나원큐 K리그2 2021' 20라운드에서 베네가스의 멀티골로 2대0 승리를 거뒀다. 무려 664분만의 골, 11경기만의 승리였지만, 아무도 기쁨을 느낄 수 없었다. 동고동락했던 김희호 코치가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7일 이랜드에 비보가 날아들었다. 김 코치가 유명을 달리했다는 소식이었다. 고인이 된 김 코치는 2009년 영국에서 유럽축구연맹(UEFA) A코칭 라이선스를 취득했다. 유창한 영어실력과 축구지식, 선수단 관리 등의 면에서 능력을 인정받았다. 프로 경력 없이 일찍 지도자 수업을 받기 시작해 영국에서 자격증을 따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그는 K리그와 일본 J리그에서 차근차근 경력을 쌓았다. 2014년 이랜드를 시작으로 부산 아이파크, 성남FC 등에서 활약했다. 일본 사간도스에서 윤정환 감독을 보좌한 경험이 있다. 쇼난 벨마레에서도 코치 생활을 했다. 김 코치는 2020년 이랜드로 돌아와 정정용 감독의 뒤를 받쳤다.

그런 김 코치의 갑작스러운 사망에 이랜드는 초상집이 됐다. 코칭스태프와 프런트는 3일 내내 김 코치의 빈소를 지켰다. 경기가 있는 날, 오전 발인까지 함께 했다. 구단은 심신이 쇠약해진 정 감독의 상태를 우려, 대전 원정을 수장 없이 치르기로 했다. 경기 전 김은영 사무국장은 "3일 동안 사무국 전체 직원과 정 감독님이 김 코치 보내드리는 일정까지 마쳤다. 직원들은 대전으로 왔지만, 감독님의 몸이 좋지 않았다. 앞으로 많은 경기 남아 있는데 경기장에 오는게 무리라고 판단했다. 대행체제로 가는 것을 권유드렸다"고 했다. 인창수 수석코치가 대행체제로 나섰다. 김 코치의 자리에는 '77 김희호'라고 적힌 유니폼이 있었다.

스승을 잃은 이랜드 선수들은 전과 다른 눈빛으로 투지있게 대전을 밀어붙였다. 전반 13분 선제골이 터졌다. 고재현의 크로스를 베네가스가 발리슈팅으로 마무리했다. 664분간 터지지 않았던 골, 공격 상황을 전담했던 김 코치가 그토록 원했던 골이었다. 득점 후 선수들은 김 코치의 이름이 적힌 유니폼을 들고,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는 세리머니를 펼쳤다. 기세가 오른 이랜드는 베네가스가 후반 추가골을 성공시키며 승리를 마무리했다. 그라운드에서 뛴 선수들도, 벤치에 앉아 있던 선수들도 기쁨 대신 슬픔의 눈물을 흘렸다. 서로를 위로하며 슬픔을 달랬다.

경기 후 기자회견에 나선 인 코치는 "선수들이 이야기를 안해도 상황을 잘 인지하고 준비했다. 오늘 경기는 김 코치를 위해서 하자고 했다. 하늘에 있는 희호 코치와 기쁨을 나누고 싶다. 선수들이 최선을 다해서 감사하다"고 눈물을 흘렸다. 동석한 김 국장도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추스린 후에도 눈물 바다는 계속됐다. 이랜드는 김 코치의 마지막 가는 길을 그렇게 함께 했다.

대전=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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