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뒤 기자는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서울-포항전을 찾았다. 여기서 생각지도 못한 '이영표의 소나무'가 문뜩 떠올랐다. FC 서울의 1999년생 유망주 미드필더 김진성의 플레이를 보면서다. 김진성은 이날 대체불가로 여겨지는 전 국가대표 주장 기성용의 부상으로 깜짝선발 기회를 잡았다. 지난해 서울에 입단한 김진성의 리그 두 번째 출전경기. 긴장될 법도 한데 등번호 6번 김진성은 쉼없이 움직이며 기성용 빈자리를 최소화하기 위해 애썼다. 전반 21분 송민규의 선제골로 0-1 끌려가던 34분 강력한 오른발 슛으로 동점골이자 프로 데뷔골까지 터뜨렸다. 그대로 교체없이 풀타임을 소화했다.
김진성은 13일 기자와 전화 인터뷰에서 "득점 빼고는 아쉬운 점이 많았다"고 겸손하게 말했지만, 경기 중에는 그의 움직임에서 땅 위로 힘차게 뻗어올라가려는 잔디의 의지를 느꼈다. 김진성은 이제야 국내축구 팬들에게 각인되고 있지만, 2020년 신인이다. '광운대 에이스'는 지난해 K리그에서 엔트리에도 들지 못하는 등 힘든 나날을 보냈다. '현타'(현실 자각 타임)가 왔어도 수십번은 왔을 터. 김진성은 "내 현실에 대해 너무 깊이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 우리 팀 미드필드진에 워낙 좋은 형들이 많았다. 그저 훈련 때 열심히 하면서 형들로부터 배울 수 있는 건 배우려고 했다. 그 덕에 전술, 수비, 공수전환, 템포와 같은 부분은 업그레이드된 것 같다"고 했다.
기성용은 지난 동계 때 허벅지에 이상을 느꼈다. 이로 인해 개막전인 전북 현대전에서 전반 교체아웃됐다. 언제라도 부상이 악화될 우려가 있어 몸상태를 예민하게 체크해야 한다. 박 감독은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올 시즌 기성용 오스마르의 백업 역할을 잘 해줄거라 기대를 모은 한찬희의 폼이 좋지 않은 상황이기도 하다. 여러모로 '중앙 미드필더' 김진성이 당분간 중용될 분위기다. 당장 14일에는 서울 이랜드와의 '서울 더비'(FA컵 32강)가 기다린다. 포항전에서 전반엔 수비형 미드필더 위치에서 공수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후반엔 더욱 공격적인 임무를 수행하는 등 두가지 매력을 뽐낸 김진성은 "클라스가 다른 성용이형처럼 할 순 없겠으나, 내 나름대로 잘할 수 있는 플레이를 펼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출전한 2경기에서 팀이 모두 패했는데)다음 경기에 나선다면 그땐 무조건 팀이 승리하도록 돕고 싶다. 서울더비는 꼭 이겨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윤진만 기자 yoonjin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