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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소나무' 기성용 아래에서 꿈틀대는 '잔디' 김진성 [인터뷰]

윤진만 기자

입력 2021-04-1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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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소나무' 기성용 아래에서 꿈틀대는 '잔디' 김진성
2021 K리그1 FC 서울과 포항 스틸러스의 경기가 10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렸다. 서울 김진성이 동점골을 넣은 후 기뻐하고 있다. 상암=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21.4.10/

[스포츠조선 윤진만 기자]얼마 전 한국 축구 두 레전드간 환담이 방송됐다. 이영표 강원 FC 대표이사와 박지성 전북 현대 클럽 어드바이저가 한 예능 방송에서 마주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주제가 '이영표 후대는 왜 나타나지 않는가'로 뻗어나갔다. 이영표가 어떻게 말해도 '커리어부심'으로 들리는 상황. 박지성의 압박이 계속되자 이영표는 소나무를 반격 카드를 꺼냈다. "큰 소나무 아래에는 잔디가 자라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이 카드도 실패했다. "형이 너무 커서 후배들이 자라지 못한거네?"라는 박지성의 태클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며칠 뒤 기자는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서울-포항전을 찾았다. 여기서 생각지도 못한 '이영표의 소나무'가 문뜩 떠올랐다. FC 서울의 1999년생 유망주 미드필더 김진성의 플레이를 보면서다. 김진성은 이날 대체불가로 여겨지는 전 국가대표 주장 기성용의 부상으로 깜짝선발 기회를 잡았다. 지난해 서울에 입단한 김진성의 리그 두 번째 출전경기. 긴장될 법도 한데 등번호 6번 김진성은 쉼없이 움직이며 기성용 빈자리를 최소화하기 위해 애썼다. 전반 21분 송민규의 선제골로 0-1 끌려가던 34분 강력한 오른발 슛으로 동점골이자 프로 데뷔골까지 터뜨렸다. 그대로 교체없이 풀타임을 소화했다.

김진성은 13일 기자와 전화 인터뷰에서 "득점 빼고는 아쉬운 점이 많았다"고 겸손하게 말했지만, 경기 중에는 그의 움직임에서 땅 위로 힘차게 뻗어올라가려는 잔디의 의지를 느꼈다. 김진성은 이제야 국내축구 팬들에게 각인되고 있지만, 2020년 신인이다. '광운대 에이스'는 지난해 K리그에서 엔트리에도 들지 못하는 등 힘든 나날을 보냈다. '현타'(현실 자각 타임)가 왔어도 수십번은 왔을 터. 김진성은 "내 현실에 대해 너무 깊이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 우리 팀 미드필드진에 워낙 좋은 형들이 많았다. 그저 훈련 때 열심히 하면서 형들로부터 배울 수 있는 건 배우려고 했다. 그 덕에 전술, 수비, 공수전환, 템포와 같은 부분은 업그레이드된 것 같다"고 했다.

올해 서울 사령탑으로 부임한 박진섭 감독은 동계훈련 때 김진성의 가능성을 알아봤다. '서울 레전드' 김진규 코치의 번호였던 등번호 6번을 선물했다. 지난 3일 강원 FC전에서 K리그 선발 데뷔 기회를 잡았다. 당시 측면 미드필더로 출전해 후반 10분 큰 임팩트를 남기지 못하고 교체된 김진성은 포항전에선 가장 익숙한 포지션인 중앙 미드필더로 출전했다. 허벅지 문제로 결장한 기성용의 대체자로 낙점받은 것이다. 김진성은 "훈련 때 (기)성용이형 몸에 문제가 생긴 걸 알고 어쩌면 내가 선발로 뛸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언제 올지 모르는 소중한 기회다. 민폐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자, 이렇게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민폐를 끼치진 않은 것 같은데, 실점하는 장면, 수비적인 부분에서 내 활약이 아쉬웠다. 많은 분이 고맙게도 축하를 해주셨지만 나는 만족하지 못했다. 내 골보다 팀이 홈에서 승리하길 바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골 영상도 따로 돌려보지 않았다고.

기성용은 지난 동계 때 허벅지에 이상을 느꼈다. 이로 인해 개막전인 전북 현대전에서 전반 교체아웃됐다. 언제라도 부상이 악화될 우려가 있어 몸상태를 예민하게 체크해야 한다. 박 감독은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올 시즌 기성용 오스마르의 백업 역할을 잘 해줄거라 기대를 모은 한찬희의 폼이 좋지 않은 상황이기도 하다. 여러모로 '중앙 미드필더' 김진성이 당분간 중용될 분위기다. 당장 14일에는 서울 이랜드와의 '서울 더비'(FA컵 32강)가 기다린다. 포항전에서 전반엔 수비형 미드필더 위치에서 공수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후반엔 더욱 공격적인 임무를 수행하는 등 두가지 매력을 뽐낸 김진성은 "클라스가 다른 성용이형처럼 할 순 없겠으나, 내 나름대로 잘할 수 있는 플레이를 펼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출전한 2경기에서 팀이 모두 패했는데)다음 경기에 나선다면 그땐 무조건 팀이 승리하도록 돕고 싶다. 서울더비는 꼭 이겨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윤진만 기자 yoonjin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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