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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페이퍼진] '해운대', 전찬일 교수가 본 '1000만 관객' 의미

2009-08-31 10:44

장르의 재발견…관객의 재탄생

 장르의 재발견과 관객의 재탄생!

 '해운대'의 1000만 흥행을 지켜보며, 그 거대한 성과에 부여하고픈 영화사적 의의다. 무엇보다 이 두 측면에서 영화는, '괴물'에서 '실미도'에 이르는 네 1000만 클럽 멤버들과는 또 다른 특별한 의미를 갖고 다가선다.

 '해운대'는 재난 영화다. 우리에겐 불모의 영역이었던, 할리우드 친화적 장르. 장르 요인에서부터 영화는 모험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윤제균은 '두사부일체'에서 '1번가의 기적'에 이르기까지, 블록버스터급 영화와는 거리가 먼 '소품형 감독'이었다.

 하지만 감독은 이 땅의 대중 관객들이 얼마나 장르에 인색한 지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그저 할리우드형 재난 영화를 흉내 내서는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것. 그는 친-할리우드 장르를 '한국식'으로 비튼다. '재난'이 아니라 '한국적 정서'에 방점을 찍은, 그만의 '한국형 휴먼 재난 영화'를 빚어낸다. 최루성 멜로, 가족 드라마, 코미디 등을 두루 뒤섞어. 이쯤 되면 '장르의 재발견'이란 진단이 허풍만은 아니지 않을까.

 '한국형 블록버스터'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더라도 '해운대'는 역사적 결실을 일궈냈다 할 만하다. 영화는 지난 십 수년 간, 대한민국 영화계를 때론 울리고 때론 미소짓게 해왔던 도도한 경향에 한 획을 긋고, 나아가 새 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맹목적으로 스펙터클에만 치중하느라 내러티브에 소홀하곤 했던, 그래서 관객들로부터 외면을 받았던 대다수 한국형 대작들과는 다른 선택을 함으로써, '괴물' 못지않은 호응을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장담컨대 향후의 한국산 대형 영화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해운대'를 벤치마킹할 것이다. 2000년대의 거의 모든 국산 멜로 영화들이 곽재용 감독의 '엽기적인 그녀'를 모방하려 했던 것처럼.

 '해운대'의 이 같은 기념비적 성취는 우리네 관객들의 영화 관람 성향에서 일고 있는 변화가 아니라면 이뤄지기 불가능했을 것이다. 지금껏 1000만 전후의 초대형 대박을 터뜨린 한국산 영화들에는 간과할 수 없는 공통점이 관류해왔다. 해당 영화가 텍스트 바깥으로 나가 공적 영역(Public Sphere)과 조우해야 했다는 것이다. 영화가 순 오락적 층위에만 머물러서는 안되며 일반 사회와 소통해야 하거나,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어야 했다는 것이다.

 당장 '괴물'을 떠올려보라. 세계경찰국가를 자임하는 미국을 향한 비판적 시선이 내포되어 있지 않았더라면, 그 괴물 같은 대기록이 가능했을까. 마찬가지로 '왕의 남자'에는 21세기 들어 수면 위로 급부상한 동성애 담론이, '태극기 휘날리며'에는 민족 분단이란 한국적 특수 상황이, '실미도'에는 실미도라는 부끄러운 대한민국 과거와 현실이 결정적 흥행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았는가.

 '해운대'는 어떤가. 감독이 2004년 인도네시아를 뒤덮었던 쓰나미가 언제 어떻게 부산 해운대에도 들이닥칠지 모른다는 경각심을 불어넣기 위해 영화를 제작, 연출하진 않았을 것이다. 이 땅의 관객들 중 그 누구도 그 현실적 가능성을 두려워하며 영화를 본 이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곧 관객들이 한 여름 해운대로 피서 가듯, 영화를 보러 가 즐기며, 기대 이상의 화답을 보냈다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해 100% 오락 영화로 '해운대'를 즐기면서, 기적의 숫자로 여겨지는 1000만 시대를 열었다는 것이다. 홍콩 관객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한국 관객의 어떤 저력을 새삼 웅변하면서.

 이러니 어찌 '관객의 재탄생'이라 하지 않겠는가. '쉬리'로 이 땅의 관객들이 전격 탄생한 시점이 10년 전인 1999년이었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다소 과장 섞인 듯 보이는 내 주장이 결코 과장만은 아니지 않을까. '해운대'는 결국 '쉬리'의 2009년 버전으로, 한국 영화의 새 장을 연 문제적 텍스트로서 손색없는 셈이다. '대중 영화'라는 전제 아래서이긴 하나....


 < 영화 평론가ㆍ경기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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