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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희-김구라 등 '나쁜'캐릭터에 열광 왜?

2009-01-19 09:44

  시청자들이 이상해졌다. 착한 주인공 보다는 나쁜 캐릭터에 꽃다발을 던진다. 드라마건 예능이건 가요무대건 팜므파탈, 옴므파탈이 휘젓고 다닌다.

 '아내의 유혹'(SBS)의 은재(장서희)는 요즘 악을 악으로 갚느라 독기가 가득하지만 시청자들은 파이팅만 외칠 뿐이다. '꽃보다 남자'(KBS2)의 준표(이민호)는 잔디(구혜선)에게 "서민 주제에!"라는 심한 말을 시도 때도 없이 퍼붓지만 문제삼는 '서민(?)'은 찾아보기 힘들다. '엄마가 뿔났다'의 주인공은 김혜자였지만 종영후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배우는 까칠한 고은아 역을 맡은 장미희 쪽이었다.

 한때 어록까지 남기며 예능계 최고의 인기를 모았던 김제동은 막말 방송을 앞세운 김구라의 혜성 같은 등장에 예능 섭외 순위에서 살짝 밀려난 듯 하다. 따뜻하고 좋은 말 보다 상대방을 깎아내리며 웃음을 유발하는 방식을 시청자들이 더 좋아하는 걸까. 비 동방신기 이민우 등 인기 가수들은 찬바람 부는 '나쁜 남자' 얘기를 노래로 변주, 숱한 '여심'을 애간장타게 만들고 있다.

 이런 풍조에 대해 어설프게 비난했다가는 자칫 공공의 적이 될 수 있다. 토크쇼 '박중훈쇼-대한민국 일요일 밤'(KBS2)의 진행자 박중훈은 최근 프로그램의 부진과 관련, "시청자가 익숙해지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MC가 게스트를 면박주고 얼굴을 달아오르게 만드는 게 트렌드인 것처럼 착각하는 게 유감스럽다"는 말을 했다가 공감 보다 되레 심한 공분을 샀다.

 '나쁜 캐릭터, 나쁜 프로그램' 창궐의 직접적인 이유로는 단순하고 평범하고 지루한 것을 싫어하는 대중의 취향이 점점 더 긴장감을 주고 자극적인 것들에 중독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심신이 힘들 때 더 독주나 독한 담배를 찾듯 시대가 어려워지니 더 자극적인 볼거리로 현실을 위안받는다는 것. 몸에 좋지만 맛없는 슬로푸드 보다는 건강을 헤쳐도 입에 단 패스트푸드가 더 유혹적인 건 분명한 사실이기도 하다.

 하지만 선악을 딱 잘라놓기 힘든 시대. 시청자들의 심리 저변에 혹시 기존에 옳다고 여겨져온 가치나 그런 가치를 주장하는 세력들에 대해 강한 거부감이 깔려 있는 건 아닐까. 좋을 일도 없는데 웃기만하는 캔디 보다는 독하지만 찾아보면 이유가 있는 캐릭터가 더 현실적이고, 너무 착해서 매력없는 선(善) 보다는 일말의 선을 숨긴채 악을 과장한 '위악(僞惡)'을 인간적이라고 보는 것이다.

 '베토벤 바이러스'(MBC)의 강마에 같은 절대적인 실력자가 내게 '똥덩어리'라고 구박한다면 달게 들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누군가가 조언이랍시고 잔소리를 늘어놓는다면, '친절한 금자씨'가 그랬듯 "너나 잘하세요!"라며 면박줄 준비가 돼 있는 게 나쁜 프로그램, 나쁜 캐릭터에 열광하는 요즘 시청자들의 속내인 지도 모르겠다.

 < 정경희 기자 scblog.chosun.com/gumnu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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