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뉴스

[와글와글] 상가(喪家) 코미디쇼

2004-06-18 12:18

 원맨쇼 황제 남보원, 국내 유일의 상가 코미디쇼
 
◇ 기상천외한 상가(喪家) 코미디쇼를 펼치는 남보원.
 혹시 '상가(喪家)쇼'라는걸 들어보셨습니까. 상가에서 코미디쇼를 한다는 얘기입니다. 슬프게 울어줘도 시원찮을 판에 무슨 코미디 같은 소리냐구요? 상주한테 몽둥이 찜질이라도 안당하면 다행이라구요?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헛소리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사실인걸 어떡합니까. 그것도 유명 코미디언이 문상객들을 상대로 쇼하는걸 제 두눈으로 똑똑히 확인을 했으니까요.
 
 국내 최고의 원맨쇼를 자랑하는 남보원이 그 주인공입니다. 상가에서 쇼를 한다는건 웬만한 배짱이 아니고선 상상조차 해보지 못할 일인데요. 원맨쇼의 1인자답게 남보원은 아낌없는 성원을 받으며 쇼를 진행합니다. 독자분들도 '왔구나~ 왔어~'로 시작하는 배뱅이굿 가락을 들어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남보원이 상가에서 배뱅이굿을 흐느끼듯 불러제치면 상가의 분위기는 끝없이 숙연해집니다.
 
 
 1인3역의 기상천외한 상가쇼로 문상객들 감동시켜
 
 배뱅이굿의 내용은 원래 명문 집안의 무남독녀인 배뱅이가 스물을 못넘기고 죽자 딸의 혼령을 위로하려는 그 부모의 넋풀이인데요. 남보원이 자식(상주)의 입장에서 망자를 그리며 서럽게 노래를 하면 참 그럴듯하게 어울립니다. 또 구수한 목소리(나래이션)로 망자의 살아온 일생을 일괄하는데 중간중간에 기상천외한 악기소리(배경음악)를 등장시킵니다. 음악은 물론 맨손과 맨입으로만 내는 것이구요.
 
 상가에서 애절하게 펼쳐지는 그의 원맨쇼는 TV 오락프로에서 보는 느낌과는 전혀 다른 찡한 감동을 줍니다. 특히 색소폰이나 풀피리음은 말그대로 환상인데요. 망자가 살아생전 여행을 가는 장면을 묘사하는 경우라면 기차나 비행기 소리까지 자유자재로 만들어냅니다. 직접 진행(MC)을 하고 노래(唱)와 밴드, 여기에 또 온갖 효과음까지 다양하게 펼쳐내니 그 자체가 멋진 쇼무대일 밖에요.
 
 
 지인들은 눈물 줄줄, 수백만원 개런티 아깝지 않아
 
◇ 개그맨 등 연예인들이 코미디황제 이주일의 운구를 옮기고 있다.(사진은 기사내용과 관련없음)
 이런 상황을 처음 경험하는 문상객들은 난데없이 마이크를 통해 흘러나오는 남보원의 원맨쇼에 다소 의아해 하기도 하지만 금방 공감을 합니다. 박수까지는 아니라도 신기(神技)에 가까운 쇼에 몰입돼 좀처럼 자리를 뜰 수 없지요. 망자의 이력을 소개하고 넋을 달래주는 과정이 워낙 리얼해서 가족들은 물론이고 가까운 지인들도 눈물을 줄줄 흘릴 수 밖에 없는데요. 이것도 초빙된 공연(쇼)이다보니 당연히 개런티가 주어집니다.
 
 더러는 감동을 받은 문상객들중에서도 감사의 표시로 따로 봉투를 건네 짭짤한 부수입이 생깁니다. 남보원이 마이크를 잡는 상가는 대체로 좀 재력이 있다는 집안인 경우가 많은데 수백만원의 개런티가 절대로 아깝지 않을 만큼 만족을 한다고 합니다. 개런티가 비싸서 이런 곳이 얼마나 있겠느냐고 생각하실테지만, 한번 남의 상가에 갔다가 그의 공연을 본 분들이 많이 연락을 해온다고 합니다.
 
 
 명문가 고희연‚ƒ 팔순잔치, 백남봉과 쌍두마차 이뤄
 
 쇼에 버금가는 이런 공연이야 당연히 호상(好喪)일 경우이구요. 방귀 깨나 뀌는 집안의 자손들은 천수를 누린 부모의 상까지 모양새를 갖추고 싶어합니다. 예전에도 호상 난 상가에선 초빙된 소리꾼이 북과 장구소리에 맞춰 창을 했지요. 고찰의 스님이 목탁을 두드려 망자의 가는 길을 배웅하는 의식과도 비교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병원장례식장이 초현대화되면서 이런 문화도 많이 바뀐 셈이지요.
 
 남보원을 얘기하면 백남봉을 빼놓을 수 없는데요. 상가 코미디쇼는 사실 창(唱)이 가능한 남보원이나 백남봉 정도나 가능합니다. 입가에 늘 미소가 떠날 날이 없는 백남봉은 회갑연이나 고희연, 팔순잔치에 더 제격입니다. 국내 원맨쇼의 쌍두마차로 비교될 수 있는 이들은 나이를 잊고 살 만큼 바쁘게 뛰어다니지요. 그렇다고 아무데나 가는건 아니구요. 워낙 부르는데가 많아 명문가만 골라다닌다고 합니다.
 
 
 경로효친사상과 노년의 잔치문화 연예인 먹여살려
 
◇ 남보원과 함께 국내 원맨쇼의 쌍두마차로 불리는 백남봉.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사실 회갑연이나 고희연 같은 '노년의 잔치문화'가 연예인들을 많이 먹여살립니다. 전에도 잠깐 언급했듯이 연예인들의 태반은 TV나 영화출연 자체를 하지못해 놀고 있습니다. 이들 연예인들이 그나마 돈벌이가 되는 곳이 바로 잔치무대지요. 특히 말재간이 좋은 희극인들은 본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남보원 백남봉의 대를 이을 만한 '선수급' 후배들도 꽤 많습니다.
 
 그중 한명으로 꼽히는 엄용수는 "경로효친사상이 투철한 우리 효문화 덕분에 방송을 않고도 넉넉한 수입을 얻는 연예인들이 많다"고 털어놓았는데요. 일부 연예인들은 소득의 30~40%에서 많게는 70~80%까지 각종 이벤트 MC로 돈을 버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요. 또 행사개런티라는게 대기업의 공개이벤트가 아니면 대부분은 영수증이 없는 것이어서 세금도 없는 알짜수입인 경우가 많습니다.
 
 
 각종 이벤트 수입이 방송출연이나 부업 보다 나아
 
 재미있는건 정해진 개런티가 없다는 것입니다. 대기업이나 재력가 집안의 행사이면 단가가 세지고, 작은 규모의 이벤트는 좀 약한데요. 형편에 따라 자연스럽게 늘었다 줄었다 하는 한마디로 '고무줄 개런티'라고나 할까요. 또 당초 얼마로 책정을 하고 무대에 서도, 실제로는 감동받은 주최측에서 보너스로 더 얹어주는 일이 허다합니다. 방송출연이나 웬만한 부업으로 벌어들이는 수입은 오히려 별개 아닙니다.
 
 연예인들이 더러 부업에 뛰어들어 사업가 흉내를 내보는데요. 대개 성공 보다는 고생만 하다 포기합니다. 레스토랑이나 카페를 폼나게 차려도 1년을 못버티고 두손을 들어버리는데, 온종일 붙들려 고생해봐야 한달 수입이 한두번의 행사 개런티만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상가 코미디쇼를 얘기하다 좀 길어졌습니다만 말꾼들의 기막힌 재능은 앞으로도 차츰 기회를 만들어 자주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 강일홍 기자 eel@>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

많이 본 뉴스

 
Copyright sport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