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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한사현 감독님 생각나" 서울시청 '질풍가드'오동석 로포인트 첫1000득점 위업[직격인터뷰]

전영지 기자

입력 2021-11-15 21:46

수정 2021-11-1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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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한사현 감독님 생각나" 서울시청 '질풍가드'오동석 로포인트 첫1000…
13일 오후, 제주 구좌체육관에서 열린 '2021 KWBL 휠체어농구리그' 서울특별시청와 춘천시장애인체육회 경기에서 서울 오동석(오른쪽)은 KWBL휠체어농구리그 통산 1000득점을 달성하였으며 LOW포인트부문에서 리그 1호이다. 시상에는 최욱철 KWBL총재가 함께 했다. 55대 49로 서울특별시청이 승리하였다. (사진=한국휠체어농구연맹 제공)

'스마트 가드' 오동석(34·서울시청)이 KWBL 휠체어농구리그 로(low) 포인트(2.0포인트 이하) 선수 최초로 통산 첫 1000득점 위업을 이뤘다.



지난달 31일 수원 무궁화전자전까지 통산 980득점을 기록했던 오동석은 12일 제주 구좌체육관에서 열린 리그 제주삼다수와의 맞대결에서 18득점을 기록, 통산 998득점으로 기록 달성에 단 2점을 남겨뒀었다. 13일 오후 제주 구좌체육관에서 이어진 3라운드 춘천시청전 휘슬 직후 오동석이 깔끔하게 림을 뚫어내며 통산 1000득점, 로 포인트 선수 최초로 1000득점 고지에 올랐다. 휠체어농구는 가장 장애가 심한 1.0포인트부터 신체기능이 가장 좋은 4.5포인트까지 스포츠 등급이 나뉘고, 선수 5명의 스포츠등급 합은 14포인트를 넘어선 안된다. '서른네 살 베테랑 가드' 오동석의 사상 첫 통산 1000득점 돌파는 시간과 한계를 이겨낸 투혼의 결과물이기에 더욱 뜻깊은 기록이다. 하프타임 진행된 시상식, 최욱철 KWBL총재가 축하인사와 함께 시상에 나섰다. 오동석은 언제나처럼 담담했다.

대기록 직후 인터뷰, 소감을 묻는 질문에 오동석은 "기록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편이라 그냥 무덤덤했다"고 단답했다. "오래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기록도 달성할 수 있었다. 좋은 지도자, 좋은 동료들을 만나서 다른 선수들보다 기록을 일찍 달성할 수 있었다"며 주변에 공을 돌렸다.

기록 달성 순간 가장 먼저 생각난 이는 역시 도쿄패럴림픽을 1년 앞두고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난 영원한 스승, 고 한사현 서울시청 감독(국가대표 감독)이었다. 휠체어농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하이포인트와 로 포인트의 역할 분담이다. 한 감독은 재능충만한 '로포인트 가드' 오동석에게 끊임없이 공격적인 역할을 주문하고 독려했던 지도자다. 오동석은 "서울시청으로 팀을 옮긴 후 농구가 많이 성장했다. 한 감독님이 살아 계셨다면 정말 기뻐하셨을 것같다. 저를 유난히 예뻐해 주시고 챙겨주신 분"이라며 절절한 그리움을 전했다.

불굴의 에이스 오동석이 대기록을 달성한 주말, 서울시청은 제주, 춘천, 대구를 줄줄이 꺾고 시즌 개막 후 파죽의 12전승을 내달렸다. 26일 3라운드 수원무궁화전자를 상대로 승리하면 13전승으로 창단 첫 챔피언결정전 직행을 확정 짓는다. 창단 첫 3연패 꿈은 이제 꿈이 아닌 현실이다.

올 시즌 서울시청의 무패 비결을 묻는 질문에 오동석은 "도쿄패럴림픽"을 떠올렸다. 오동석을 비롯 이윤주, 김태옥, 양동길, 곽준성 등 국가대표 전력의 절반 이상이 서울시청 선수들로 구성됐다. 도쿄패럴림픽에서 메달을 획득해 고 한사현 감독님 영전에 바치겠다는 약속은 지키지 못했지만, 쓰라린 실패와 도전의 경험은 리그에서 진한 '보약'이 됐다. 오동석은 "패럴림픽에서 원하는 성적을 내진 못했지만 세계적인 팀들과 겨루면서 한단계 성장했다. 플레이도 한층 성숙해졌다"고 설명했다. "상대팀 잘하는 선수들에게 배울 점도 많았지만 한편으론 우리가 더 노력하고 발전한다면 넘지 못할 벽은 아니란 것도 느꼈다"고 했다.

팀에 닥친 위기 역시 기회가 됐다. 떠난 이의 빈자리는 남은 이들을 '원팀'으로 똘똘 뭉치게 했다. "지난해 우승을 이끌었던 주장 (조)승현이형이 춘천시청으로 이적했을 때 많은 분들이 전력 공백을 우려했다. 그래서 선수들끼리 더 이를 악물고 한 면도 있다"고 털어놨다. "(이)윤주형이 중심을 잘 잡아주고, 고득점을 잡아주다보니 밸런스가 좋아졌고 덕분에 나머지 선수들이 편안하게 자신의 플레이를 할 수 있었다"고 연승의 비결을 분석했다.

올 시즌 서울시청의 압도적 분위기에서 기복없이 묵묵히 알토란 활약을 펼치는 '스마트 가드' 오동석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12일 이겨야 사는 제주와의 원정 라이벌전에서도 오동석은 19득점으로 펄펄 날았고 MVP로 선정됐다. 그리고 이튿날 나홀로 점을 몰아치며 1000득점 고지에 올랐다. 오동석은 "득점이 팀 기여도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척도는 아니겠지만 적어도 팀에 계속 기여해왔다는 뜻으로 생각한다"며 겸손한 소감을 전했다.

남은 시즌 목표를 묻는 질문엔 "팀 우승이 제일 큰 목표다. 개인적인 목표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농구선수로서 장점을 묻는 질문엔 "어떤 선수와 하더라도 맞춰줄 수 있는, 이타적인 플레이"라고 짧게 답했다. 남은 경기에서도 후배들을 위해 솔선수범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했다. "'챔피언결정전에 조기 진출한다고 해서 느슨해지지 말자,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만 한다. 김영무 감독님도 승패 상관없이 경기력과 내용을 강조하신다. 우리 팀엔 어린 선수들이 많다. 저희가 더 열심히 해야 어린 선수들이 뛸 수 있는 러닝타임이 늘어난다"고 했다

야구선수를 꿈꾸던 재기발랄한 소년은 1998년 불의의 사고 이후 2004년 휠체어농구를 처음 만났고, 2021년 프로리그 첫 1000득점의 주인공이 됐다. 오동석은 끝없이 이어지는 질문에 "제가 자격이 되는 선수인지 모르겠다"며 말을 아꼈지만 어딘가 있을지 모를 꿈나무 후배들을 위한 한마디만큼은 아끼지 않았다. "저는 내성적인 편이다. 어릴 때 다치고 나서 농구를 시작하기 전까진 거의 집에만 있었다. 말수도 없고, 조용한 편인데 단체운동인 농구를 하면서 성격이 활발해진 부분이 있다. 농구를 통해 사람을 만나고 바깥 세상을 경험하다보니 삶의 질도, 자신감도 함께 올라갔다"고 돌아봤다. 그리고 담담하지만 분명한 메시지를 전했다. "농구공을 처음 잡던 날, 이런 날이 올 거라 생각지 못했다. 취미로 시작한 일이 어느덧 직업이 됐고, 계속 하다보니 국가대표도 됐고, 기록도 세우게 됐다. 아무쪼록 내 기록을 더 빨리 깨는 좋은 후배가 나오길 바란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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