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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발해"-"싫어요"…벼랑 끝 팀 구한 150㎞ 강속구 탄생의 비밀 [PO 비하인드]

이종서 기자

입력 2021-11-10 00:17

수정 2021-11-10 07:24

"선발해"-"싫어요"…벼랑 끝 팀 구한 150㎞ 강속구 탄생의 비밀
2021 KBO리그 포스트시즌 플레이오프 1차전 두산과 삼성의 경기가 9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렸다. 6회말 2사 만루의 위기를 넘긴 두산 홍건희가 동료들과 기쁨을 나누고 있다. 대구=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2021.11.09/

[대구=스포츠조선 이종서 기자] 감독의 선발 제안을 대차게 거절한 투수. 자기 자신을 잘 아는 건 역시 자신뿐이었다.



올 시즌을 앞두고 실시한 스프링캠프에서 홍건희(29·두산 베어스)는 선발 투수 전향 제안을 받았다.

입단 당시부터 강속구 투수로 기대를 모았던 그는 고질적인 제구 난조에 확실하게 정착하지 못했다.

지난해 6월 KIA 타이거즈에서 두산으로 트레이드된 그는 한층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두산에서는 제구에 신경을 쓰기보다는 더욱 자신 있게 직구를 던지라는 주문을 했고, 홍건희는 1군 투수로 완벽하게 정착했다. 이적 후 50경기에서 3승4패 8홀드 평균자책점 4,76을 기록하면서 불펜 한 축을 담당했다.

필승조로 가능성을 보였지만, 시즌 초 두산 코칭 스태프의 생각은 다소 달랐다. 홍건희가 선발 경험이 있는 만큼, 강속구 선발 투수로 자리를 잡아주길 바랐다.

홍건희의 생각을 달랐다. 많은 투수들이 일정한 루틴을 가지고 나서는 선발 투수를 선호한다. 그러나 선발 투수를 경험하면서 자신의 길이 아니라는 판단을 한 홍건희는 불펜에 남겠다는 뜻을 전했다.

홍건희는 "KIA에 있을 때 선발 욕심을 내서 도전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았다. 헤매는 부분도 있었다"라며 "두산에 와서 마냥 어린 나이도 아니고 잘하고 싶은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 감독님께서도 잘 이해해 주셨다"고 이야기했다.

결과적으로 홍건희의 판단이 옳았다. 홍건희는 올 시즌 6승6패 3세이브 17홀드 평균자책점 2.78을 기록하면서 두산의 필승조 한 축을 맡았다.

투수조장으로서도 역할을 완벽하게 해냈다. 후배들은 이구동성으로 '(홍)건희 형이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포스트시즌에 들어오면서 김태형 감독은 승부처에 기용할 필승조 투수로 이영하 홍건희 김강률을 들었다.

플레이오프 1차전. 홍건희가 불펜에 남은 이유를 증명했다. 이영하가 지난 7일 LG 트윈스와 준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4이닝 동안 66개의 공을 던지면서 플레이오프 1차전에는 나갈 수 없는 상태가 됐다.

홍건희는 이영하에게 "푹 쉬어라. 내가 막겠다"라며 안심시켰다.

1차전에서 홍건희는 3-2로 살얼음판 리드를 안고 있던 5회말. 1사 만루 위기에 몰렸다.

타석에서는 올 시즌 25개의 홈런을 날린 오재일. 지난해까지 두산에서 뛰었던 만큼, 누구보다 두산에 잘 알고 있던 타자였다.

두산은 선발 투수 최원준을 내리고 홍건희를 올렸다. 홍건희는 오로지 직구로만 오재일을 상대해 2루수-유격수-1루수로 이어지는 병살타를 이끌어내 실점없이 이닝을 끝냈다. "맞는 순간 정면인 걸 알아서 안도했다"고 할 정도로 완벽한 순간이었다.

홍건희는 6회에도 만루 위기에 몰렸지만, 수비의 도움을 받아 실점하지 않았다. 7회까지 무실점으로 막은 뒤 4-2로 앞선 8회에 1사 2,3루 위기에서 마운드에 내려갔지만, 이현승이 1실점만 허용했다.

두산은 6대4로 승리를 거뒀고, 홍건희는 생애 첫 포스트시즌 승리투수가 됐다.

경기를 마친 뒤 홍건희는 직구 승부를 고집했던 이유에 대해 "변화구를 엄청 잘 구사하는 투수도 아니다. 직구에 자신감도 있었고, 변화구 던져서 어렵게 승부하기 보다는 내가 가장 잘 던지는 것으로 승부한 뒤 결과에 순응하자고 한 것이 따라왔다"고 웃었다.

3이닝 동안 52개의 공을 던졌지만, 홍건희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그는 "2차전 던질 수 있다"라며 밝게 웃었다.대구=이종서 기자 bellstop@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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