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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엽의 눈물과 김현수의 눈물. 그리고 언제 누군가 흘릴 눈물

노재형 기자

입력 2021-08-08 09:16

수정 2021-08-0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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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엽의 눈물과 김현수의 눈물. 그리고 언제 누군가 흘릴 눈물
2020 도쿄올림픽 야구 준결승 대한민국과 미국의 경기가 5일 요코하마 베이스볼 경기장에서 열렸다. 대표팀 김현수가 8회초 무사 1루에서 병살타를 치고 아쉬워 하고 있다. 요코하마=최문영 기자 deer@sportschosun.com

[스포츠조선 노재형 기자]도쿄올림픽 야구대표팀 김현수는 지난 7일 동메달결정전서 도미니카공화국에 패한 직후 방송 인터뷰 도중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그는 "최선을 다했고, 제가 잘 못해서 진 것 같습니다. 후배들은 정말 잘해줬고, 다음이 없다고 생각하니까 너무 아쉬운데"라며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김현수는 이번 대회에서 타율 4할(30타수 12안타), 3홈런, OPS 1.271을 기록했다. 대표팀 중심타자로 할 만큼 했다. 또 주장으로 더그아웃에서 가장 큰 목소리로 후배들을 독려하는 등 대회 내내 대표팀을 이끌었다. 그래서 그가 흘린 눈물은 슬프다.

13년 전, 베이징올림픽 준결승 직후 이승엽이 흘린 눈물과 묘하게 겹친다. 베이징올림픽에서 이승엽은 예선 리그 내내 침묵하다 일본과의 준결승에서 8회 역전 결승 투런홈런을 터뜨리며 부진과 부담을 동시에 떨쳐냈다. 경기후 방송 인터뷰에서 이승엽은 "4번타자로 너무 부진해서 감독님과 후배들한테 너무 미안했습니다. 홈런 한 방으로 만회한 것 같아 기쁩니다"라고 말했다. 당시 이승엽도 인터뷰 도중 쏟아지는 눈물을 어쩌지 못했다. 이승엽은 훗날 그 눈물을 "울분"이라고 했다. 온갖 비난을 이겨낸 역전 홈런으로 울분을 날렸고, 비로소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는 뜻이다.

김현수의 눈물은 패자의 눈물이고, 이승엽의 눈물은 승자의 눈물이다. 의미와 농도가 정반대다. 다른 해석을 곁들일 것도 없다. 베이징올림픽 대표팀 막내로 참가해 이승엽과 함께 금메달 영광을 함께 누렸던 김현수가 13년 후 도쿄에서 '이승엽의 위치'가 됐지만 원하는 바는 이루지 못했다.

두 선수의 눈물은 13년을 사이에 두고 한국 야구의 어제와 오늘을 그대로 보여준다. 프로 선수들을 주축으로 대표팀을 꾸려 참가한 국제대회에서 한국은 숱한 신화를 만들어냈다. 2006년과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각각 4강, 준우승을 차지했고, 베이징올림픽에선 9전 전승 금메달을 따냈다.

그때마다 한국 야구에는 굵직한 기둥 투수와 중심타자가 있었다. 2006년 WBC에선 박찬호와 이승엽, 2009년 WBC에서는 류현진과 김태균이 맹활약했다. 베이징올림픽에서는 류현진과 윤석민, 김광현 트리오가 마운드를 이끌었고, 이승엽이 준결승과 결승서 홈런포를 쏘아올리며 한국 야구 위상을 정점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지금 한국 야구에는 에이스와 거포가 없다. 류현진, 김광현, 양현종이 떠난 뒤 KBO리그 마운드는 외인 투수들 천하가 됐다. 이승엽 은퇴 후로는 국제용 거포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용병들'에게 에이스 자리와 중심타선을 빼앗긴 토종 선수들의 입지와 실력은 날로 좁아지고 떨어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10개 구단으로 늘면서 경기력 저하와 선수간 양극화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 그렇다고 당장 외국인 선수 제도를 폐지하거나 구단수를 줄일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도 최근 한국 야구를 이끌 재목들이 나타나 희망의 싹을 되살릴 수 있게 된 건 다행이다. 최근 KBO리그 마운드에 '영건 시대'를 연 원태인 소형준 이민호와 이번 올림픽에서 두 차례나 선발로 호투한 이의리는 소중한 자원들이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언제 누군가 흘릴 눈물은 달콤한 눈물이 됐으면 좋겠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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