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뉴스

'수사의뢰→실명공개' 진정한 사과에 필요한 건 용기, 그리고 타이밍[SC시선]

정현석 기자

입력 2021-07-15 02:25

수정 2021-07-15 05:48

more
'수사의뢰→실명공개' 진정한 사과에 필요한 건 용기, 그리고 타이밍
6일 잠실야구장에서 두산과 NC의 경기가 열린다. 경기 전 NC 박석민이 두산 선수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잠실=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2021.07.06/

[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많이 당황했을 것이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호텔 방 사적 모임. 일이 일파만파로 커졌다.

함께 동석했던 지인이 코로나19에 확진됐다. 불길한 느낌은 어김 없이 현실이 됐다.

검사 결과 백신 접종자 박민우를 제외한 해당 선수 전원(박석민 이명기 권희동)이 확진됐다. 프로야구 1군 선수 첫 감염. 여파는 컸다. NC 1군 선수단의 무려 64%(확진선수 3명, 밀접접촉 선수 15명, 코칭스태프 10명)가 2주 간 격리 조치됐다.

구단도 당황했다. 일단 "방역당국의 조사를 지켜보겠다"며 유보적 태도를 취했다.

그 사이 KBO 실행위와 이사회가 잇달아 열렸다. 갑론을박 끝 1주일 앞당긴 리그 조기 중단이 결정됐다. 프로야구 역사상 초유의 사태였다.

리그 중단 직후 NC는 리그 중단의 원인 제공에 대해 미디어 홍보팀 명의로 공식 사과했다. '방역당국의 역학조사에서 방역수칙 위반이 확인될 경우 리그 코로나 대응 매뉴얼에 따라 구단 징계 등 후속 조치를 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이후 원정숙소에서 4명의 선수들이 2명의 외부인과 함께 술을 마셨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사실이라면 명백한 방역수칙 위반이었다.

하지만 14일, 방역당국은 오락가락 했다.

서울시는 이날 오전 언론에 강남구 심층역학조사 결과를 토대로 '방역수칙 위반 보고는 없었다'고 알렸다.

하지만 같은 날 오후 강남구는 보도자료를 통해 '자신의 동선을 숨긴 확진자 5명을 경찰에 수사의뢰 했다'고 전했다.

CCTV 조사가 한정적인 호텔 객실 내에서의 사적 모임. 역학조사는 당사자들의 진술에 상당 부분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방역당국의 혼선은 일부 사실을 누락한 당사자들의 허위 진술이 있었다는 뜻이다.

강남구의 경찰 고발 직후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갔다.

NC 황순현 대표는 이날 오후 사건 발생 후 '처음으로' 구단 대표 명의의 사과문을 냈다.

곧바로 해당 선수 4명이 스스로 실명을 공개했다. 선수들을 대표해 박석민이 사과문과 경위서를 구단을 통해 올렸다. 이날 밤에는 국가대표를 반납한 박민우가 개인 SNS를 통해 따로 사과문을 올렸다.

오후부터 쏟아진 NC 발 줄 사과문.

진정성을 의심하고 싶지는 않다. 충분한 반성의 표현들이 포함돼 있다. 잘못의 대가를 달게 받겠다는 책임 어린 다짐도 보였다.

다만, 딱 하나 아쉬웠던 건 타이밍이었다.

구단과 선수 모두 공교롭게도 방역당국의 경찰 수사 의뢰 직후 줄줄이 실명을 공개하고, 사과문을 올렸다. 진의를 떠나 등 떠밀린 반성문 처럼 보일 수 밖에 없었다.

아쉬운 대목이다. 수사의뢰 여부와 관계 없이 미리 준비된 사과문이었을지라도 이미 그 자체가 너무 늦었다.

프로야구를 멈춰 세운 원인 제공자. 확진자 개인정보 보호라는 익명 뒤에 너무 오래 머물러 있었다.

진정한 사과와 반성에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종사자와 팬들에게 진심 어린 미안함이 있었다면 더 일찍 고백하고 솔직하게 용서를 구했어야 했다.

구단도 마찬가지다. 방역수칙 위반 사실을 인지한 순간, 해당 선수들을 설득해 곧바로 팬들 앞에 세웠어야 했다. 그 타이밍은 KBO 실행위와 이사회의 리그 중단 논의 전이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만에 하나 해당 선수들이 초기 단계에 구단에 거짓진술을 했다면? 구단에 진실을 보고할 선수의 의무를 저버린 셈이다. 이 경우 KBO 징계와 별도로 구단 자체 중징계를 피할 수 없다.

야구단과 팬들 모두 코로나19와 방역 전쟁을 벌이고 있는 엄혹한 시기. NC 선수들의 일탈은 씻을 수 없는 과오다.

다만, 모든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더 중요한 사실은 잘못을 저지르고 난 이후다. 제 자리로 돌려놓는 과정에서 보여줘야 할 건 용기와 책임감이다. 당장은 고통스럽더라도 이 악물고 감내해야 할 대가다. 자신이 저지른 문제를 회피 만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아쉽게도 해당 선수들은 두번 실수를 했다.

야구 잘하는 고참급 주축 선수들로서 리그와 동료, 팬들에 대한 책임감을 저버린 것이 첫번째. 잘못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먼저 용기내지 못한 책임감 결여가 두번째 실수였다.

이 과정에서 어떤 조치도 취하지 못한 NC 구단도 책임을 면하기 힘들다. 미리 알았다면 공동 책임, 끝까지 몰랐다면 무능일 수 밖에 없다.

타이밍을 놓쳐 버린 뒤늦은 사과문. 팬들의 분노를 누그러뜨릴 타이밍 마저 놓치고 말았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