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장 하늘 위로 번개가 내리치고 있다. 대구=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2021.07.10/
[대구=스포츠조선 김영록 기자]오랜만에 시간을 내서 지인들과 야구를 보러갔는데 비로 경기가 취소된다? 그 기분은 당해본 사람만 안다.
경기가 무려 112분이나 지연됐다. 하지만 필요한 건 시간일뿐, '최신식 구장'인 대구 라이온즈파크(이하 '라팍')는 복구가 가능했다.
10일 삼성 라이온즈와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 정규이닝 9회초까지만 소화했지만, 경기는 무려 밤 10시 27분에 끝났다.
경기 도중 내린 폭우 때문이다. 삼성이 3-0으로 앞선 4회초 도중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쏟아졌다.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빗줄기였다. 혼비백산한 선수들은 더그아웃으로, 관중들은 지붕 아래로 황급히 피신했다. 경기 시작 한 시간도 안된 오후 6시 54분 경기가 중단됐다.
경기 시작 이후 경기 지속 권한은 주심에게 있다. 하지만 주심은 섣부른 취소(노게임)보다는 기다리기로 결정했다. 순간 강수량은 많았지만, 비구름은 많지 않았다. 비가 장시간 올 가능성은 낮았다.
그 다음은 2016년 준공된 라팍의 내구성에 달렸다. 삼성 구단 관계자는 "배수 시설은 최고다. 시간이 필요하지만, 비만 그치면 그라운드 복구는 가능하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폭우 속 동분서주하는 삼성 구장관리팀의 수고도 돋보였다. 이들은 우산도 없이 강풍에 휘날리는 방수포를 정리했다. 카트와 라이너 등을 가져와 방수포의 위치를 고정한 뒤로도 수시로 방수포 위의 물을 치웠다. 비가 그친 뒤엔 방수포 아래에 공기를 주입해 물기를 본격적으로 떨궈내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대기 시간이 한없이 길어졌지만, 라팍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토요일 오후의 여유일까. 팬들은 취식 공간에서 여유있게 배를 채우며 경기 재개를 기다렸다.
전광판에 '경기를 재개합니다'라는 글귀가 올라온 것은 오후 7시 50분경. 이미 1시간이나 지연됐지만, 뜨거운 환호가 쏟아졌다. 비가 완전히 그친 뒤 방수포가 걷힌 그라운드 상태는 경기 전과 다름없었다. 놀라울 만큼 뽀송뽀송했다.
문제는 파울지역과 펜스 앞 워닝트랙의 물웅덩이였다. 이것만큼은 최신식 구장도 어쩔 수 없이 '인력'이 필요했다. 스펀지로 물기를 제거하고, 푹 패인 그라운드를 다듬었다. 다시 한시간 가까운 시간이 소요됐다. 경기가 재개된 것은 오후 8시 46분이었따.
하지만 시간은 걸렸으되 복구가 가능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잠실이나 사직처럼 지자체와 시설관리공단이 임대료에만 집착하고 관리에 무심한, '구식' 구장들에선 진작에 노게임이 선언됐을 경기다. 구장관리팀의 노력만으로 될 일이 아니다. 특히 사직처럼 지붕에 빗물이 새고, 중계팀 대기실이 침수되는 구장에서 주심인들 그라운드 정비 가능성에 대한 확신이 있을리 없다.
이날 지연시간은 총 112분(오후 6시54분~8시46분). KBO리그 역사상 2위에 해당한다. 역대 1위는 1987년 삼성-빙그레 이글스(대전)의 116분, 3위는 2010년 한화 이글스-삼성(대구시민)의 109분이었다. 평소보다 지연 시간이 길긴 했지만, 선례는 적지 않았다. 다만 두 사례는 모두 2차례 중단된 시간을 합한 것. 단 1차례만 중단된 경기로는 이날 경기가 역대 최장시간이다.
예정된 일정을 소화하는 것은 정규시즌이 긴 야구에겐 꼭 필요한 미덕이다. 비가 내리는 시간과 그라운드의 복구 가능성 등을 감안해 늦더라도 경기 재개가 가능하다는 확신이 있다면, 경기를 진행시키는 게 맞다.
이날 라팍에는 2021시즌 대구 최다 관중인 8207명이 찾아왔다. 코로나19 여파속 추워진 야구계를 한껏 따스하게 달군 팬들의 온기였다. 대구의 일일 확진자는 20명 안팎에 불과하다.
기대했던 박세웅과 원태인의 선발 진검승부를 보진 못했지만, 팬들의 발걸음은 '헛걸음'이 되지 않았다. '최신식 야구장' 덕분이다.
▶KBO리그 역대 경기 지연시간 순위
1위 1987년 8월 15일 삼성-빙그레(대전) 116분
2위 2021년 7월 10일 롯데-삼성(대구) 112분
3위 2010년 8월 15일 한화-삼성(대구시민) 109분
대구=김영록 기자 lunarfly@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