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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홀에 빠진 느낌" 42억 거포가 고백한 FA 부담감+시프트 공포[인천리포트]

김영록 기자

입력 2021-07-06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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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홀에 빠진 느낌" 42억 거포가 고백한 FA 부담감+시프트 공포
인형을 소중히 양팔에 안고 인터뷰에 임한 최주환. 김영록 기자

[인천=스포츠조선 김영록 기자]"내가 이렇게 안타를 못친 적이 있었나? 블랙홀에 빠진 느낌이었다."



프로 16년차 베테랑에게도 FA의 부담감은 컸다. 최주환(SSG 랜더스)이 92일만의 멀티 홈런을 쏘아올리며 그간의 마음고생을 날려보냈다.

최주환은 지난겨울 4년 42억의 FA 계약을 맺고 정든 두산을 떠나 SSG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FA는 프로야구 선수에게 '인생 대역전'의 찬스지만, 그만큼 무거운 책임감을 요구한다.

롯데 자이언츠와의 개막전에서 최정과 더불어 홈런 2방씩을 쏘아올리며 기분좋게 새 시즌을 시작했다. 4월 한달간 타율 3할6푼5리 4홈런 15타점, OPS(출루율+장타율)은 1.013에 달했다.

하지만 4월말 뜻하지 않은 햄스트링 부상이 찾아왔다. 한달간의 휴식 후 복귀전을 치렀지만, 그때부터 긴 슬럼프가 시작됐다.

5~6월 최주환의 타율은 1할9푼6리(97타수 19안타)에 그쳤다. 간간히 쏘아올린 홈런이 전부였다. 7월 3경기에서도 타율 1할(10타수 1안타)의 부진에 시달렸다.

올시즌 KBO리그는 사상 초유의 '외국인 감독 3명 시대'다. 상상 이상의 '깊은' 수비 시프트는 외국인 감독들의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다. 최주환이나 추신수 같은 왼손 거포가 등장하면 3루수는 평소의 유격수 위치, 유격수는 2루 뒤쪽, 2루수는 1,2루 사이 중간쯤의 잔디 위에 선다. 평소대로 당겨치면 잘 치고도 아웃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억지로 밀어치자니 좋은 타구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김원형 SSG 감독은 서두르지 않았다. 그는 2019년 두산 투수코치로 부임, 2년간 최주환과 한솥밥을 먹은 사이다. 김 감독은 최주환에 대해 "너무 안 맞으니까 혼자 남아서 특타를 하더라. 잘하고 싶은 욕심이 굉장히 큰 선수"라며 "두산 시절에는 초구부터 적극적으로 치는 공격적인 타자였다. 지금은 너무 소극적이다. 팀원들을 믿고 부담없이 쳤으면 좋겠다"는 위로와 신뢰를 전했다. 투수코치와 타자라 큰 접점은 없었지만, 오랫동안 관찰해온 노하우가 드러나는 조언이었다.

마침내 믿음이 보답을 받았다. 최주환은 5일 롯데 전에서 3점홈런 2방을 쏘아올리며 그간 어깨를 짓누르던 압박감을 떨쳐냈다. 그것도 0-3으로 뒤지던 4회 동점 홈런, 7-4로 추격당한 6회 승부에 쐐기를 박는 한방이었다. 두 홈런 모두 발사각이 40도에 달할만큼 작정하고 퍼올린 타구였다. '거포 2루수'다운 파워를 마음껏 뽐냈다. 아홉수를 일찌감치 떨쳐내며 두자릿수 홈런도 달성했다. 특타에 단거리 훈련까지 소화하며 신체 밸런스를 가다듬은 보람이 있었다.

최주환은 "야구가 참 어렵다"고 혀를 내둘렀다. 그는 "한동안 좋은 타구들이 다 시프트에 걸리면서 블랙홀에 빠져드는 기분이었다. 한달간 이렇게 성적을 못낸 적이 있나? 아마 2012년에 30몇타수 무안타 친 이후 처음인 것 같다. 팀을 옮겼으니까 더 잘 하려고 하다보니 야구가 더 안됐다"며 한숨을 쉬었다.

"요즘 한 열흘 정도는 시프트가 문제가 아니라 타격감 자체가 바닥이었다. 그래서 생각을 바꿨다. 내 스윙으로 강한 타구를 만들어내서 시프트를 뚫는게 최선인 것 같다. 앞으로는 좋은 타구를 만드는 타이밍을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최주환은 "중심을 최대한 뒤에 남겨두고, 자신있게 스윙하니까 좋은 결과가 나왔다"면서 "감독님께 생일 선물을 드릴 수 있어 기쁘다. 믿음에 감사하고, 꼭 보답하는 선수가 되겠다"고 거듭 다짐했다. 홈런 인형을 안은 채 웃음을 감추지 못하는 최주환의 표정은 신인 때로 돌아간 듯 밝게 빛났다.

인천=김영록 기자 lunarfly@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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