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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같았던 평양 원정,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이었다

[스포츠조선 김 용 기자] "그냥, 전쟁이었어요."

직접 지켜본 북한전 분위기가 어땠었느냐는 질문에 내놓은 최영일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의 답이었다. 대표팀 캡틴 손흥민(토트넘)은 경기가 자꾸 생각나는 듯,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한국 축구대표팀이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북한 원정을 다녀왔다. 한국은 15일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조별리그 3차전을 북한과 치르고 왔다. 파울루 벤투 감독을 비롯한 선수단은 16일 북한을 떠나 중국 베이징을 경유했고, 17일로 날짜가 바뀐 새벽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문제가 많은 경기였다. 북한이 취재진, 응원단의 방북을 허락하지 않았다. 심지어 생중계도 협조하지 않았고, 4만명의 관중이 올 것이라고 하더니 무관중 경기를 만들어버렸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지 알 수가 없었다. 양팀 선수들이 전반전 대치 상황을 연출했고, 매우 격렬한 경기가 펼쳐졌다는 정보밖에 얻을 수 없었다. 그런 가운데 0대0 무승부 결과가 나왔다. 평양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 지 알 수 있는 건, 결국 선수단의 입을 통해 전해 듣는 일 뿐이었다.

벤투 감독과 손흥민, 그리고 선수단장 자격으로 동행한 최 부회장이 북한 원정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했다. 내용은 생각보다 더욱 충격적이었다. 경기 외적 변수는 충분히 예상했던 것이지만, 경기 내용적으로도 어려움이 있었다는 얘기였다.

손흥민은 당시를 다시 떠올리기 싫다는 듯 연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는 "축구를 하다보면 얻는 것, 잃는 것들이 있다. 이번 경기는 목표로 했던 승점 3점을 얻지 못해 아쉬웠다. 하지만 선수들 모두 다치지 않고 돌아왔다는 자체만으로 큰 수확"이라고 말했다. 북한 선수들이 지나치게 거친 플레이로 일관했다는 것. 손흥민은 이어 "축구를 하다보면 몸싸움은 당연한 거다. 하지만 이번 경기는 누가 봐도 거칠게 들어오는 상황이 많았다. 그게 작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정말 심한 욕설도 들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욕설이었다"고 떠올렸다. 관중이 없다보니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들과, 벤치에 있던 선수들의 외침이 그대로 현장에 있던 선수들에게 다 전달됐다.

최 부회장은 "그냥 전쟁이었다. 상대 선수들 눈빛이 달랐다. 우리는 기술적으로 축구를 했다면, 상대는 정신력으로 나온 듯 보였다. 정말 거칠었다. 팔꿈치와 손으로 치고, 점프를 하면 무릎으로 가격하는 등의 플레이였다. 다치지 않고 승점 1점을 따온 것으로도 만족한다"고 밝혔다.

실제 이날 경기 중 황인범(밴쿠버)이 상대에 가격을 당해 양팀의 대치 상황이 벌어졌다고 한다. 고의로 가격한 건 아니었다고 할 수 있지만, 몸이 재산인 선수들 입장에서는 공포 그 자체였다. 손흥민은 "최대한 안다쳐야 한다는 생각만 갖고 경기에 임해, 경기력이 다 나오지 않았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손흥민의 경우 평소 인터뷰 때 상대를 헐뜯거나 비판하는 식의 언행을 잘 하지 않는다. 하지만 북한전 관련 질문에는 정색하는 반응을 자주 보였다. 얼마나 끔찍한 원정길이었는지 짐작해볼 수 있다. 손흥민은 "경기 후 유니폼을 교환했느냐"는 질문에 "굳이 왜"라고 답하며 자신의 심경을 표현했다.

경기 외적으로도 북한은 선수단을 홀대했다. 입국 시 필요 이상의 검사로 입국을 지연시키며 스케줄을 흐트러뜨려 밥도 제때 먹지 못했다. 대표팀이 가져간 음식 재료도 사용하지 못했다. 호텔에서는 아예 아무도 외부 출입을 못하게 막아놔 방에만 있어야 했다. 최 부회장은 "2년 전 여자축구로 방북했을 때와 비교하면 반응이 싸늘했고, 추웠다. 이것저것 말을 걸어도 눈도 마주치지 않고 대답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당시 분위기를 설명했다.

북한의 일방적인 경기 개최에는 한국 선수단 뿐 아니라 현장을 찾은 국제축구연맹(FIFA 지아니 인판티노 회장도 깜짝 놀래켰다. 최 부회장은 "FIFA 관계자들이 경기장에 도착해 관중이 없는 걸 확인한 후 깜짝 놀라더라"고 말하며 "이번 경기에 대한 FIFA 제소 여부는 규정을 따져보고, 회의를 거쳐 결정을 내리겠다"고 말했다.

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