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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하인드 스토리] '눈에 밟혀서' 개막 엔트리, 감독들은 불면의 밤

"2군에 내려보내야 하는데, 그 선수가 앞에 와서 씩씩하게 인사하면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아십니까."

프로야구 10개팀 감독은 시범경기가 끝나고, 개막을 준비한 이번주 불면의 밤을 보냈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최고 전력으로 경기에 임할 수 있는 엔트리를 짜느냐에 고심이 컸다.

스프링캠프에서 코칭스태프의 눈에 들기 위해 피땀 흘린 선수들의 노고를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1군 개막전에 설 수 있는 선수는 팀당 27명 뿐. 눈물을 머금고 많은 선수들을 2군으로 내려야 한다.

차라리 여러 자리 경쟁으로 이것저것 생각하면 오히려 머리가 덜 아프다. 운명의 장난도 아니고, 항상 엔트리를 짜면 마지막 1~2 자리를 놓고 2~4명의 선수가 머리에서 맴돈다. 이 선수를 넣으면 이게 불안하고, 다른 선수를 넣자니 어떤 부분이 부족해 엔트리표에 이름을 썼다, 지웠다를 반복한다.

LG 트윈스의 예를 들어보자. 스프링캠프와 시범경기에서 외야 경쟁이 매우 치열했다. 주전 좌익수 후보였던 이병규가 시범경기 23타수 3안타, 타율 1할3푼으로 부진했다. 스프링캠프에서는 프로 입단 후 최고의 몸상태를 자랑해 양상문 감독을 들뜨게 했던 이병규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외야 자원인 이형종이 시범경기 공동 홈런왕(3개)에 오르는 등 물오른 기량을 보여줬다. 이형종 외 나머지 외야수들도 1군에 생존하기 위해 집중력을 발휘해 시범경기 좋은 성적을 남겼다.

이병규는 타격이 좋은 선수다. 실력이 없었다면 스프링캠프에서 좋은 컨디션을 보여줄 수 없었다. 양 감독도 이병규가 실력이 없어 시범경기에서 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개막을 앞두고 부담이 컸던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기회를 주면, 곧 자신의 진가를 보여줄 선수라고 믿는다. 시범경기 부진으로 엔트리에서 빼면, 이병규의 사기는 크게 저하될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 떨어져야 하는데, 시범경기에서 잘한 선수를 빼면 팀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 '열심히 해도, 이름값에서 밀리면 안되는구나'라고 생각을 하는 선수들이 나오는 순간 팀은 성장 동력을 잃는다. 양 감독은 팬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외야 경쟁에 대한 얘기가 나올 때마다 "참 어려운 문제"라고 말한다. 일단, 개막 엔트리에는 포함되지만 선발투수들이 차례로 1명씩 들어올 때마다 자리를 비워줘야 하는 야수들도 있다. 그래도 개막 엔트리에 드느냐, 들지 못하느냐는 하늘과 땅 차이다. 양 감독은 일단 외야 엔트리에서 이병규를 제외했다. 양 감독은 "언제든 1군에서 자기 역할을 할 수 있는 선수이니, 2군에서 잘 준비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또, 팀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신인급 선수들을 넣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정작 시합에 투입할 생각을 하면, 기존 경험있는 선수들에게 다시 눈이 돌아가기 마련이다. A감독은 "밖에서 지켜보는 사람이야 이 선수 써봐라, 저 선수 괜찮다 쉽게 얘기할 수 있겠지만 현장에서는 선수의 애버리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1군 경기는 해줄 선수들이 해준다"고 설명했다. 올해 신인 선수들은 10개 구단 통틀어 5명밖에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시범경기 활약으로 기대를 모았던 삼성 라이온즈 최지광도 빠졌다.

B감독은 "2군에 보내야 하는데, 앞에 와서 인사를 씩씩하게 하면 마음이 아프다. 아예 마주치지 않으려고 눈치를 볼 때도 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래서 감독들도 스타일 차이가 있다. 직접 선수를 만나 격려하며 잘 타이르는 감독이 있고, 아니면 아예 코치들을 시켜 엔트리 탈락을 통보하는 방법도 있다. 중요한 건 기회를 얻지 못하는 선수들이 상처를 받지 않고 2군에서 열심히 준비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