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um App

Experience a richer experience on our mobile app!

뭉클했던 94세 SK 열성팬의 역대 최고령 시구

"최 정 선수를 보시더니, 눈이 휘둥그레지시던데요."

SK 와이번스를 사랑하는 역대 최고령 시구자가 인천 문학구장에서 꿈을 이뤘다. 인생에서 느지막한 시점에 이룬 꿈이지만, 그래서 더 감동적이었고 뜻깊은 시간이었다.

SK와 LG 트윈스의 경기가 열린 28일 문학구장. SK는 이날 경기를 앞두고 '야구의 날' 기념 시구를 실시했다. 원래 야구의 날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 야구 종목 금메달을 땄던 8월 23일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날인데, 이날은 23일 이후 SK가 치르는 첫 홈경기였다.

SK는 시구자로 94세의 백근주 옹을 선정했다. SK 창단 때부터 열혈팬이었음을 강조한 백 옹은 온 가족이 SK를 응원하는 SK 집안의 최고 어른. 가장 열성적인 것은 올해 고3이 된 손자지만 백 옹의 열정도 만만치 않다고 한다. 매일같이 SK 경기를 지켜보는게 낙이다. 성적이 좋지 않으면 우울증 증세가 찾아오기도 한다고 한다. 백 옹은 "SK 선수들이 홈런 치고, 이기고, 우승하는게 가장 좋다"라고 말했다. 백 옹의 가족들은 "본인도 시구를 굉장히 하고 싶어 하셨다. 나이는 들었지만 시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해오셨다"라며 "예전부터 얘기가 있었는데, 마침 이번 기회에 시구자로 초청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특별한 나들이였다. 고3 손자를 제외하고 온 가족이 문학구장에 총출동했다. 자택이 경기도 의정부였는데, 오는 길 소요시간이 1시간 30분이 넘어 고령의 백 옹에게는 피곤한 시간일 수 있었다. 하지만 경기장 입구에 들어오면서 가족들에게 "떨린다"라고 하더니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최 정을 보자마자 피곤한 기색 없이 두 눈이 휘둥그레지며 좋아했다는 게 가족들의 설명이었다.

최 정이 반갑게 백 옹을 맞았다. 백 옹은 최 정과 악수를 나누며 "직접 보게 돼 영광"이라는 인사를 건넸다. 최 정은 백 옹과 캐치볼을 하고 투구폼에 대한 설명도 했다. 고령의 나이에 폼도 어색했고, 공도 잘 날아가지 않았지만 그저 최 정과 함께 캐치볼을 하는 자체가 즐거워 보였다. 백 옹은 캐치볼 뿐 아니라 함께 사진 촬영을 하고 사인과 선물까지 최 정에게 전해받았다. 94년 인생 최고의 소원풀이였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백 옹을 위한 진정한 시간은 바로 시구의 순간이었다. 자신의 이름과 나이를 표현한 등번호 94가 달린 유니폼을 입고 마운드에 선 백 옹은 김풍기 구심의 안내에 따라 마운드에서 몇 발짝 앞으로 나와 자세를 잡았다. 경기장에 오기 전 "공이 안날아갈 것 같다"라며 걱정을 하면서도 어디서 공을 구해와 자녀들 몰래 연습까지 하며 설레는 마음을 드러낸 백 옹이었다고 한다.

포수 이재원에게까지 날아가지는 않았지만, 그 어떤 시구자가 던진 공보다 힘차게 날아간 시구였다.

인천=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