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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상문 감독 결산 인터뷰 'LG, 나에겐 기회의 땅이었다'

"임창용을 무너뜨리던 순간, 기적의 가능성을 엿봤습니다."

2014년. LG 트윈스 양상문 감독에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한 해가 됐을 것이다. 시즌 도중 갑작스럽게 잡은 지휘봉. 하지만 팀은 꼴찌, 분위기는 처참했다. 양 감독 본인 스스로도 '이번 시즌은 욕심내지 말자'라고 말하며 차분하게 손을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믿을 수 없는 기적이 일어났다. 조금씩 조금씩 일어나기 시작한 팀은 어느새 4위 경쟁을 했고, 결국 2년 연속 가을야구 진출을 확정짓는 값진 성과를 냈다. 비록 넥센 히어로즈와의 플레이오프에서 패하며 한국시리즈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2014 LG 야구는 팬들에게 많은 감동을 선사했다. 양 감독이 직접 LG 감독으로서의 올시즌을 돌아봤다. 양 감독의 결산 인터뷰다.

▶다 끝나고 이틀의 시간이 지났다. 패배가 확정되던 순간과는 또 다른 느낌일 것 같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후회는 없다. 혹자는 마지막이 될 수 있는 4차전, 조금 더 총력전으로 펼쳐나가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지만 다시 똑같은 상황이 와도 나는 똑같은 야구를 할 것이다. 결국 강조했던 것이 밑에서 올라오는 팀이 우승을 하려면 정규시즌과 같은 정상적인 팀 운용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물론, 한국시리즈 6, 7차전이라면 상황이 다르지만 준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부터 무리를 하며 한국시리즈에 올라가면 백전백패라고 생각한다.

단, 나도 사람이기에 아쉬움이 아예 사라질 수는 없다. 1차전 주루 실수(LG는 이병규(7번)가 주자 2명을 두고 2루타를 때렸을 때, 2루주자가 홈에서 아웃당하고, 이병규가 앞주자 추월로 아웃되는 주루 실수로 경기 흐름을 상대에 내줬다.)가 머릿속에 강하게 남는다. 넥센이 1차전에 모든 초점을 맞춰 시리즈 운용을 했다. 1차전을 잡았다면 시리즈 전체 승기가 확실히 우리쪽으로 왔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하나, 경기를 할수록 확실히 선수들의 힘이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준플레이오프 때는 타자들의 감이 매우 좋았는데, 플레이오프에서는 점점 스윙이 무뎌졌다. 정규시즌 마지막 10경기부터 선수들의 심적, 육체적 피로가 대단했다. 여기까지 버텨준 선수들이 오히려 자랑스럽다.

▶정말 어려운 상황에서 팀을 맡았다. 그 때의 솔직한 심경이 궁금하다.

-정말 솔직히, 나에게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왜냐. 올시즌 성적에는 부담이 없었다. 해설위원 활동을 하며 '좋은 기회가 오면 이런 야구를 해봐야겠다. 오랜 시간 구상해왔던 야구관을 바탕으로 내가 원하는 야구를 꼭 펼쳐보고 싶다'라고 매일같이 생각했다. 밖에서 야구를 보니 내 야구관이 점점 더 확고해지더라.

성적, 분위기가 처진 팀이기 때문에 오히려 내 색깔을 내는데 유리할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걱정 안했다. 올시즌은 다른 팀 수장들과의 승부가 아닌, 나 스스로와의 재미있는 승부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솔직히 올해, 그리고 내년 시즌은 팀을 만드는 시기로 잡으려 했다. 그리고 그 다음 시즌 승부를 보고 싶었다. 그런데 선수들의 잠재력이 일찍 폭발했다.

그리고 롯데 자이언츠 감독 시절도 리빌딩 과정에 있는 팀을 지휘했었다. 그 때의 도움이 분명히 도움이 됐다. 충분히 해볼 만한 승부라고 생각했다.

▶언제, 탈꼴찌가 아닌 더 높은 곳으로 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나.

-4위까지는 아니지만, 올시즌 하위권 탈출 이상의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을 한 경기가 있다. 잠실구장에서 삼성 라이온즈 마무리 임창용을 무너뜨렸을 때다. 그 경기 후 '야, 이거 느낌이 좋다'라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3연전 첫 경기 승리 후 나머지 두 경기를 모두 내줬지만 우리 팀이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 경기였다. (LG는 5월 27일 9회말 터진 정의윤의 끝내기 안타로 5대4 역전승을 거뒀다. 임창용에게 시즌 첫 패를 안긴 날이었다.)

외국인 타자 조쉬 벨을 바꾼 이유도 설명할 수 있다. 이 경기를 보고 승부가 될 수 있다는 계산을 했다. 그 때부터 새 외국인 타자를 물색했고, 7월 초 교체했다. 선수들에게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 실제, 스나이더 합류 후 우리 선수들이 의욕도 생기고 팀 분위기도 훨씬 좋아졌다고 하더라.

▶정규시즌 마지막, 롯데에 졌지만 SK 와이번스가 패하며 기적적으로 4위를 확정지었다.

-올스타전 직전 삼성 라이온즈와의 2연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그 때 2경기를 모두 잡았을 때 본격적으로 4위에 대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느낌이 매우 좋았다. 그리고 아시안게임 휴식기 이후 죽음의 5연전(넥센 3연전-NC 다이노스-삼성 라이온즈)을 4승1패로 마쳤을 때 4위를 확신했다. SK가 정말 열심히 우리를 따라왔지만, 결국 우리가 가겠다는 생각을 했다. 5연전 4승을 해서가 아니었다. 그 과정 우리 선수들이 경기를 풀어나가는 모습이 감독에게 감동을 줬다. 1년에 한 번 나올까말까 한 완벽한 경기를 매일같이 해내더라.

▶덕아웃 포커페이스가 인상적이다. 감독도 사람인데, 기쁨을 드러내고 선수들과 호흡하고 싶지 않았나. 일부러 참은건가.

-취임 당시 5할 하이파이브 공약도 했지만, 경기 중에는 일부러가 아니라 쉽게 웃음이 안나오더라. 마지막 이기는 모습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끝이 아니라는 생각에 오직 경기에만 집중했다. 집중하니 포커페이스란 말씀들을 하시더라. 또, 우리 팀이 나에게 여유를 주지도 않았다. 매 경기 박빙 승부여서 경기 중간 기뻐할 수 있는 상황이 안만들어지더라.(웃음)

▶열 손가락 깨물어 안아픈 손가락 없다지만, 정말 고마운 선수가 있을 것 같다.

-기록으로 보면 여러 선수가 잘해줬다. 우리가 상승세를 탈 때 객관적 성적을 보면 타선에서는 캡틴 이진영, 마운드에서는 불펜 이동현, 신재웅 등이 중심을 잘 잡아줬다. 이 선수들 덕분에 경기를 잘 풀어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기록 외적으로 감독이 정말 고마운 선수는 최경철이다. 경기 중간중간 흐름을 우리쪽으로 가져오게 하는 보이지 않는 플레이를 정말 많이 해줬다. 올시즌 가을야구 진출의 힘은 최경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이 선수들 외에도 우리 LG 선수들 모두가 영웅이었고, 제 역할을 잘해줬다. 이런 훌륭한 선수들과 함께한 감독이라 행복했고, 영광스러웠다. 내년 시즌에는 이 선수들과 또 다른 기적을 만들겠다.

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