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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빙캐치 매력에 푹, 모두 희망 잃지 마세요'…병마도, 비도 막지 못했다. '건강해지면 보자'는 약속

[스포츠조선 이종서 기자] "다시 기회가 올 수 있을까 했는데…."

한형선(26) 씨는 지난 2022년 9월 5일 잠실구장에서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가야만 했다.

KIA 타이거즈와 두산 베어스의 잠실 경기 시구자였던 그는 준비까지 했지만, 비가 쏟아지면서 결국 그라운드에 서지 못했다. 한 씨는 "연습까지 했는데 비가 내리더라"라며 "그날 이후 '내게 이런 기회가 다시 올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돌아봤다.

한 씨가 아쉬워했던 이유는 단순히 시구를 못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마움을 무겁게 했다.

한 씨에게 시구는 정수빈과의 약속이었다. 중학교 입학을 앞둔 2012년 재생불량성빈혈과 갑상선암 진단을 받았던 그는 조혈모세포이식을 받는 등 투병 생활을 이어갔다.

그에게 힘이 된 건 야구였다. 한 씨는 OB 베어스(현 두산 베어스) 팬인 아버지를 둔 '모태 베어스팬'이다.

한 씨의 '최애 선수'는 정수빈. 한 씨는 "2011년에 정수빈 선수를 처음 봤다. '잠실 아이돌'이라는 별명을 듣고, 정말 잘생겼다는 생각을 했다. 수비하는 모습도 아름답더라. 정수빈 선수의 전매특허인 다이빙캐치를 보면서 팬이 됐고, 지금까지 좋아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2012년 한 씨는 '메이크 어 위시'에 정수빈과 만나고 싶다는 사연을 보냈다. 시즌 종료 후 사연을 들은 정수빈은 한 씨를 야구장에 초대했다. 유니폼과 사인볼을 선물했고, 캐치볼도 했다. 정수빈은 "건강해지면 잠실야구장에서 꼭 시구하자"는 약속과 함께 쾌유를 빌었다.

정수빈의 응원에 한 씨도 힘을 냈다. 완치 판정을 받았다. 임상 병리사가 돼서 아픈 사람을 위해 일을 하기 시작했다.

10년을 기다린 약속. 하늘이 야속했다. 한 씨는 "아쉬운 마음이 컸는지 하루는 정수빈 선수가 내 공을 받는 꿈을 꾸기도 했다"고 웃었다.

한 씨의 소원은 결국 이뤄졌다. 두산의 팬 소원 성취 프로젝트 '두잇포유'에 사연을 보냈다.

한 씨는 약 12년 만에 '건강해지면 시구하자'는 약속을 지키게 됐다.

4월14일 잠실 LG 트윈스전. 날씨는 맑았다.'라이벌전'에 관중은 가득 찼다.

한 씨는 정수빈에게 깜짝 선물을 준비했다. 지난해 9월 득남한 아들을 위한 수제 인형. 태명 '수달이'에서 착안해 수달 인형 세 개를 준비했다. 아빠, 엄마, 그리고 아기 수달로 구성돼 있었다. 정수빈의 마음에도 꼭 들었다. 정수빈은 "너무 예쁘다. 아이에게 꼭 안겨주고 싶다"고 미소를 지었다.

한 씨의 힘차게 공을 던졌다. 그라운드에는 박수가 쏟아졌다. 공을 받은 양의지도 미소를 지었다. 한 씨는 "역시 최강 10번타자 팬이었다. 정말 감사드린다. 양의지 선수도 잘 받아주셨다. 만족스럽다"고 고마워했다.

정수빈은 건강하게 돌아온 팬을 반겼다. 그는 "무엇보다 (한)형선이가 완쾌해 시구자로 온다는 약속을 지켰다는 그 자체가 대단하다. 힘든 투병생활 고생이 많았을 텐데 잘 이겨내서 다행"이라고 이야기했다. 정수빈은 이어 "내 응원이 힘이 됐다고 하는데, 내가 한 건 없다. 진심으로 쾌유를 빌었을 뿐이다. 시구 경기가 우천취소되는 등 변수가 많았는데 10년 넘는 다짐이 비로소 오늘 이뤄진 것 같다. 앞으로 형선이가 아픈 사람들을 많이 치료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어려운 순간. '야구의 힘'에 웃었던 한 씨는 다른 사람에게도 이런 에너지가 전해지길 바랐다. 한 씨는 "정수빈 선수가 나에게는 굉장히 큰 희망이 됐다. 나도 그렇게 좋은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는 꿈을 꾸며 학창 시절을 보냈다"라며 "아픈 이후에 야구를 좋아하는 환자들이 많이 보였다. 야구를 통해 힘든 시간을 잊고 건강해지는 사람도 많았다. 모두 새로운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밝혔다.이종서 기자 bellstop@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