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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본다'더니…성적 부진보다 시선이 두려웠나? 15년 태극마크 저버린 韓대표 투수의 거짓말 [SC시선]

[스포츠조선 김영록 기자] "일본 대표팀은 회식을 했나? 우린 좋은 성적을 내야 회식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조심스럽다. 눈치 보고 있다."

태극마크 15년에 빛나는 김광현(SSG 랜더스)이 지난 3월 8일, 2023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첫 경기 호주전을 앞두고 뱉은 말이다.

마지막 국가대표라는 부담감을 안고 싸우는 입장에서 회식마저 못하니 술이 필요했던 걸까. 알고보니 그는 전날 고교 직속 후배를 동반하고 일본 아카사카의 한 스낵바에서 술을 마신 뒤였다.

'WBC 대표팀 음주 논란'의 장본인 3명이 모두 고개를 숙였다. '국가대표 에이스' 김광현을 비롯해 이용찬(NC 다이노스) 정철원(두산 베어스)이 그들이다. 김광현은 이날 삼성 라이온즈와의 인천 홈경기, 이용찬과 정철원은 우천으로 취소된 창원 두산-NC 전을 앞두고 각각 공식 사과했다.

이번 사태가 불거진 것은 지난달 30일 뉴데일리를 통해서였다. 매체는 유튜브 '세이엔터(전 가세연)'의 내용을 토대로 추가 취재한 결과 간판 선발투수 A씨가 학교 후배인 타 구단 불펜투수 B씨를 데리고 2차례 술을 마셨고, 마무리 C씨도 따로 또다른 술집에 드나든 것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KBO와 10개 구단이 발빠르게 움직여 사실관계를 파악했다. 해당 선수들의 실명이 공개되지 않은 상태에서 경위서를 받고, 사정을 청취했다. 하지만 이미 누구인지 야구계에는 익히 알려진 상황. 공식 사과는 시간문제였다.

경위서에 따르면 이들은 경기 전날밤 음주에 대해서는 입을 모아 부인했다. 대신 오사카에서 도쿄로 이동한 날(3월 7일)과 일본전 패배 후인 휴식일 전날(3월 10일)이라고 정정하고 나섰다. 다만 대회 중이었음에 초점을 맞췄다. 세 사람은 "국가대표로서 대회 기간에 생각없는 행동을 했다. 모든 야구팬과 관계자 분들께 실망을 끼쳐드려 죄송하다"는 요지의 입장을 전했다.

그 중에서도 대표팀의 주축 투수이자 에이스로 활약해온 김광현에게 시선이 쏠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메이저리그를 다녀왔고,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간판 스타다. 다른 두 투수와는 무게감이 전혀 다르다.

김광현은 이번 대회를 마지막으로 태극마크를 내려놓았다. 우승팀인 일본을 상대로 첫 2이닝 동안 삼진 5개를 잡아낸 강렬한 피칭이 돋보였고, 당장의 성적에는 속상함이 컸으되 오랫동안 국가대표에 헌신한 투수에 대한 감사함도 적지 않았다.

그리고 그 마음을 송두리째 날려보낸 이번 파문이다. SSG는 1일 삼성전에 선발로 예정됐던 김광현을 1군에서 말소, 최대한 몸을 숙였다. 이용찬과 정철원은 사과는 전했으되 엔트리에서 말소되진 않은 상황. 5일에 한번 나오는 선발과 매일을 준비하는 필승조, 마무리의 차이로 여겨진다.

최근 2차례의 WBC 1라운드 탈락에 도쿄올림픽 4위까지, 부담감이 클 수밖에 없었던 이번 WBC였다, 혜택이나 영광보다는 사명감에 초점이 맞춰지고, 그보다는 온몸을 짓누르는 압박감에 시달렸다.

이를 이겨내기 위해 술의 힘을 빌릴 수도있다. 경기 전날, 밤늦게 이뤄진 음주가 아니라면 어느 정도 용납할만하다.

하지만 "회식도 못했다"던 이중적인 태도가 한층 더 큰 배신감을 불렀다. 일본 대표팀은 오타니와 다르빗슈 유를 중심으로 대규모 선수단 회식을 가졌고, 오타니는 팬들에게도 힘을 달라고 부탁했다.

결과적으로 김광현으로 대표되는 한국 선수단의 위축된 태도는 보다 철저한 대회 준비를 위해서라기보단, 부진의 책임을 팬들에게 미루고자 한 핑계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일본처럼 기분좋게 회식 현장을 공개하고 의지를 다짐만 못했다.

아직 진실 공방의 여지도 남아있다. 일본의 스나크 바(Snack Bar)는 한국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스낵바'와는 느낌이 다르다. 설령 진짜 스낵바였다 한들, 김광현이 굳이 고등학교 후배 정철원과 간단하게 자리를 하고자 했다면 더 적당한 장소가 없었을까. 성적 부진보다는 타인의 시선에 더 초점을 맞춘 행동인 셈이다.

15년 태극마크의 영광을 저버린 김광현의 어이없는 일탈. 야구팬들은 올해 KBO리그 개막을 전후해 잇따라 터진 논란에도 관중석을 가득 메우며 뜨거운 열기를 보여줬다. KBO의 대응을 지켜보는 시선이 더욱 따가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잠실=김영록기자 lunarfl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