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um App

Experience a richer experience on our mobile app!

[SC초점] TV 드라마엔 자막 넣고, OTT 예능엔 자막 뺀다

[스포츠조선 정빛 기자] 방송가의 자막 활용법이 움직이고 있다. TV 지상파 드라마는 오랜 관행을 바꿔 자막을 제공했고, OTT 예능에서는 공식으로 여겨지던 예능식 자막이 빠졌다.

우리말 콘텐츠에 한글 자막을 제공하는 서비스가 새로운 표준이 된 모양새다. 당초 청각장애인을 위한 서비스 목적으로 도입됐지만, 최근 비장애인 시청자들도 자막 이용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원래 드라마에서 자막이 활용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극 중 장소, 시대, 인물 이름 및 정보 등을 설명하기 위해 잠깐 등장하는 정도였다. 혹은 인물의 속마음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자막이 동원되기도 했다.

이러한 흐름을 본격적으로 깬 것은 넷플릭스의 등장이었다. 미국에 본사를 둔 넷플릭스는 2011년 미국 청각장애인협회로부터 청각장애인용 자막을 붙이지 않는 것은 차별이라는 소송을 당한 이후 대부분 작품에 자막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넷플릭스 작품들이 인기를 끌기 시작하면서, 한국 드라마도 자막과 함께 시청하면 편하다는 감상이 나왔다. 장소를 가리지 않고 시청할 수 있다는 플랫폼 특징상, 소음이 심한 곳이나 조용히 시청을 해야하는 환경에서 자막이 편이하게 해준다는 의견도 많다. 또 출연자 발음에 구애받지 않고, 대사를 놓치지 않아 이해가 더 쉽다는 반응도 있다.

이처럼 드라마 자막에 대한 호응이 나오자, 다른 스트리밍 플랫폼들도 한국 자막을 도입했다. 현재 국내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대부분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한극 자막 서비스를 선보이는 중이다.

그런 가운데, TV 지상파 드라마도 이러한 트렌드에 발맞추는 분위기다. SBS는 지난달부터 일반 시청자를 대상으로 드라마 한국 자막 서비스를 시작했다. 지난달 종영한 드라마 '법쩐'과 '트롤리' 재방송에서 한국어 자막을 함께 제공한 것이다. 현재 방송 중인 '모범택시2' 재방송에서도 한국어 자막을 포착할 수 있다. 다만 OTT처럼 시청자가 자막 설정을 직접 선택할 수 없기에, 드라마 재방송에서 자막을 붙인 것으로 보인다.

SBS 관계자는 "OTT 드라마를 중심으로 이미 한국어 자막 서비스가 일상화되는 상황에서 우리도 드라마의 재미와 몰입도를 끌어올리기 위해 재방송에 자막을 도입했다"며 "일괄적인 자막 도입으로 인해 연출적 요소나 연기에 대한 집중이 떨어질 수 있다는 이견도 있어 본방송 반영은 아직 계획이 없다"고 했다.

반면, 드라마 자막의 시초인 넷플릭스가 예능에서는 '예능식 자막'을 덜어내 눈길을 끈다. 예능에서 흔히 쓰이는 자막이나 효과 등을 최대한 배제한 것이다. 넷플릭스 예능 '코리안 넘버원', '피지컬: 100' 등은 기존처럼 청각장애인을 위한 한국어 자막은 공급하지만, 재미를 위해 덧붙이는 설명형 예능식 자막은 모두 거둬냈다.

사실 1990년대 중후반까지만 해도 예능에서도 자막은 없었다. 일명 '쌀집아저씨' 김영희 PD가 일본 프로그램에서 자막 활용을 보고, 1996년 MBC 'TV파크'에서 예능식 자막을 처음 도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시청자를 청각 장애인으로 보냐는 항의도 빗발쳤지만, 2000년대부터는 예능에서 자막은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았다.

단순 텍스트 자막을 벗어나, 각종 이모티콘, 특수문자 등이 예능식 자막으로 발전됐다. 특히 MBC '무한도전'에서 제작진의 의도와 속마음 등을 자막으로 활용하는 등 새로운 메시지 전달 용도로도 확대된 바다. 일각에서는 진정한 K-예능의 완성은 자막이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현재 글로벌 스트리밍 플랫폼에서의 K-예능은 조금 달라졌다. 이러한 예능식 자막이 빠졌기 때문. 여기에는 글로벌 시청자를 타깃으로 했기 때문에, 예능식 자막이 최소화됐다는 분석이 있다. 국내 시청자들은 이러한 예능식 자막에 익숙하지만, 글로벌 시청자들이 예능식 자막까지 따라잡기엔 어렵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예능식 자막이 잘 활용될 수 있었던 것은 한글 자체가 비교적 다른 외국어들에 비해, 차지하는 부피가 적기 때문에 유리했다. 이에 외국어보다 자막 활용빈도가 높을 수 있었다. 그러나 외국어로 예능식 자막을 사용하면 그림이 어지럽게 된다. 더불어 스토리가 중요시되는 드라마, 영화 등과 달리, 예능은 문화 코드에 따라 웃음 차이가 크다. 때문에 K-예능의 해외 진출은 얼마나 글로벌 타깃에 잘 맞추느냐가 관건으로 통한다. 또 장면마다 자막이 달리는 예능 특성상, 수출 국가 언어에 맞춰 번역하려면 비용도 많이 든다.

이것이 글로벌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K-예능의 예능식 자막이 줄어든 이유로 관측된다. 아울러 해외에서 주목받은 국내 예능프로그램이 다른 콘텐츠 장르처럼 수출이 아닌, 현지 리메이크 형식으로 재탄생되는 것 또한 일맥상통한 대목이다.

그런데 넷플릭스에서 'K-예능'의 글로벌 공략 문법을 새롭게 바꿨다. 예능식 자막을 뺀 프로그램들이 좋은 반응을 얻기 때문이다. '피지컬: 100'은 한국 예능 최초로 넷플릭스 글로벌 TV쇼 부문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특히 강력한 피지컬을 가진 최고의 몸을 찾기 위한 서바이벌 게임 예능인 만큼, 예능식 자막 대신 진정한 육체에 집중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였다.

'피지컬: 100' 장호기 PD는 "이 프로젝트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전세계 시청자들이 볼 때 따라가기 어려우면 안 되겠다는 것이다. 기존 서바이벌 예능에서는 자막 의존도가 높았지만 이런 부분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기로 하고 편집에서 많이 배제했다. 전세계 사람들이 볼 때, 정서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을까 고민했고, 그 결과 부연 설명이 필요한 장면을 삭제하고 시청자가 쉽게 볼 수 있도록 편집했다"라고 예능식 자막을 뺀 이유를 설명했다.

정빛 기자 rightlight@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