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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룡영화상] '韓영화 격조와 품격 그 자체'…청룡영화상, 더할 나위 없었던 심사표 공개

[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격조 있고 품격있는 한국 영화, 그리고 명품 배우들이 올 한해 스크린에서 웃음과 감동의 스토리로 전 세계 관객을 사로잡았다.

지난 25일 개최된 제43회 청룡영화상은 2021년 10월 15일부터 2022년 10월 30일까지 개봉한 한국 영화를 대상으로 후보를 선정해 뛰어난 작품성과 연출력, 열연을 펼친 작품과 감독, 배우에게 최고의 영예를 안겼다.

공정하고 투명한 심사로 매회 공신력을 인정받고 있는 국내 최고의 권위의 청룡영화상은 8명의 심사위원과 네티즌 투표 결과를 종합한 총 9표 중 과반수 득표수를 받은 후보를 수상작(자)으로 정했다. 전문성과 대중성을 두루 평가하며 모든 작품, 배우에게 공평한 심사를 내리기 위한 방식이다. 후보에 오른 모든 작품을 꼼꼼하게 평가, 면밀한 심사를 거쳐 올해 최고의 작품과 배우를 선정했다.

올해 심사는 시상식 당일인 지난 25일 오후 2시부터 시작해 약 3시간의 심사위원 격론 끝에 영광의 수상자가 탄생했다. 8명의 심사위원은 심사 결과 유출을 사전에 막기 위해 휴대전화를 반납하고 열띤 토론으로 작품과 연기를 평가, 수상작(자)을 선정했다. 투명하고 공정함을 자랑하는 청룡영화상의 심사, 올해 최고의 작품과 배우가 선정되기까지 치열했던 히스토리를 공개한다.

▶ 신인상, 신인답지 않은 과감함과 내공

올해 신인상 부문은 베테랑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완벽한 내공을 자랑한 후보자들이 대거 이름을 올려 심사위원들의 고민을 가중했다. TV 드라마를 통해 연기 기반을 탄탄히 다진 후 첫 스크린에 도전한 중고 신인들은 물론 괴물 같은 열연으로 충무로를 뒤흔든 샛별, 그리고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에서 처음으로 메가폰을 잡은 신예 감독까지.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한 신인상 라인업을 완성했다. 치열한 경합 끝에 올해 청룡 신인상 주인공은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박동훈 감독)의 김동휘, '불도저에 탄 소녀'(박이웅 감독)의 김혜윤, '헌트'의 이정재 감독이 주인공으로 선정됐다.

신인남우상을 수상한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김동휘는 "영감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매력적인 연기를 펼쳤다"라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무엇보다 김동휘는 최민식이라는 대배우와 맞서 호흡을 맞춘 신예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노련하게 극을 이끌어 심사위원들의 '원 픽'을 받아냈다. 거대한 최민식의 그늘에서 부담스럽지 않게 자신만의 색을 적절하게 드러낸 김동휘는 적재적소 자신의 롤을 완벽하게 소화하며 호평을 얻었다. 아쉽게 김동휘에게 신인남우상의 영예를 빼앗겼지만 '늑대사냥'(김홍선 감독)의 서인국 역시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유력 후보였다. 서인국은 정말 좋은 배우가 될 수 있는 원천을 가진 후보라는 평이 이어진 것. 상당한 몰입도와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냈지만 작품 자체의 장르적 수위 때문에 어쩔 수 없는 호불호 리스크를 안게 됐다.

신인여우상은 '불도저에 탄 소녀' 김혜윤과 '브로커'(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이지은의 박빙 대결이었다. "배우가 멱살 잡고 끌고 간 작품"이라는 극찬이 이어진 김혜윤은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끌고 간 엄청난 힘과 가능성을 보인 신예로 등극하며 심사위원의 마음을 완벽히 사로잡았다. 특히 그동안 TV 드라마와 상업영화 신에서 조연으로서 역할을 톡톡히 해왔던 김혜윤이 이번 '불도저에 탄 소녀'라는 독립영화를 통해 주인공으로서 가진 역량을 제대로 발휘했다는 평가가 상당했다. 김혜윤에 이어 이지은 역시 심사위원들의 많은 지지를 받으며 치열한 접전을 이끌었다. 이지은은 "오랜 구력을 가진 송강호와 강동원 사이에서 자신만의 연기를 찾기 쉽지 않았을 텐데 소신대로 캐릭터를 연기해 기특했다"며 호평을 받았다. 다만 2018년 방영된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 속 이지안 캐릭터를 지우기 쉽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나의 아저씨'의 그림자가 너무 짙고 '브로커' 또한 전작의 캐릭터의 연장선으로 느껴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신인감독상은 두 배우 출신의 신인 감독에 대한 격론이 뜨거웠다. '월드 스타' 이정재의 '헌트'와 믿고 보는 '신 스틸러' 조은지의 '장르만 로맨스'를 향한 심사위원의 고민이 상당했다. "업계를 긴장하게 만든 만능캐" "'신인감독상까지 가져가야 속이 시원했나' 싶을 정도로 질투 유발하는 완성도 있었던 첫 작품" 등 호평 일색이었던 '헌트'의 이정재 감독이 신인감독상의 영예를 차지했다. 이정재 감독은 영화가 개봉하기까지 많은 부침이 있었던 '헌트'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이끌었다는 대목에서 많은 점수를 얻었다. 상당한 부담감과 중압감에 시달려야 했는데 그 모든 압박을 이겨내고 올해 가장 재미있는, 스크린에서 볼 만한 수준급 장르 영화를 만들었다는 지점에서 심사위원의 마음을 얻어냈다. 또 다른 배우 출신 연출자인 조은지 감독 또한 "다음 작품이 기대되는 능력자"라는 호평을 받았다. 독특한 스토리 구상과 포맷의 작품을 조화롭게 만든 조은지 감독도 연출자로서 능력치를 확실하게 보여줬다는 기대를 자아냈다.

▶ 조연상, 대체 불가한 독보적 신 스틸러

주인공보다 더 돋보이거나, 때로는 강력한 한 방으로 보는 이들을 얼얼하게 만드는 조연상. 신을 훔칠 뿐만 아니라 대체 불가한 독보적인 존재감으로 마음까지 훔치는 충무로의 보물 심 스틸러가 올해도 스크린을 후끈 달궜다. 누가 받아도 이견 없는 박빙의 조연상 경합에서 끝내 트로피를 거머쥔 영광의 주인공은 '한산: 용의 출현'(이하 '한산', 김한민 감독)의 변요한과 '장르만 로맨스'(조은지 감독)의 오나라였다. 두 배우 모두 첫 청룡상 수상으로 감동과 의미를 더했다.

"거두절미 압도적이었다"라는 심사위원들의 극찬을 자아낸 '한산'의 변요한은 데뷔 14년 만에 첫 청룡영화상 조연상으로 인생 최고의 전성기를 맞았다. 특히 변요한은 '한산'의 전편이었던 '명량'(14, 김한민 감독)의 류승룡과 확연히 다른 결의 안타고니스트 와키자카로 신선한 매력을 전했다는 평을 받았다. 극의 긴장감을 끌고 가는 강렬한 힘으로 보는 이들의 긴장감을 극대화한 연기였다. 오히려 '한산'에서는 주인공이었던 이순신 역의 박해일 보다 변요한이 더 강렬한 임팩트가 있었다는 극찬도 쏟아졌다. 변요한과 마지막까지 경합을 펼친 '비상선언'(한재림 감독)의 임시완도 많은 호평이 터졌다. 호불호가 많았던 '비상선언'임에도 유일하게 마음을 내준 대목이 임시완의 분량이었다는 평이 이어졌지만 존재감에서 변요한이 우위를 선점하며 올해 청룡영화상 남우조연상의 영예를 차지했다.

올해 청룡영화상 연기상 부문에서 가장 치열하고 열띤 토론이 이어진 대목이었던 여우조연상은 오나라가 최종적으로 차지하게 됐다. 심사위원들이 저마다 "사다리 타고 싶을 정도로 결정하기 어려웠다"라는 탄식이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온 것. 그럼에도 여우조연상의 영예를 차지한 오나라는 "그동안 업계에서 과소 평가된 배우이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연기 내공이 상당한 배우다"라는 극찬을 자아냈다. 앙상블 연기가 중요했던 '장르만 로맨스'에서 특유의 코미디 흐름을 잘 잡아갔다는 오나라. 코미디 연기 자체가 평가 절하되는 부분이 있는데 그럼에도 자신만이 소화할 수 있는 특기를 적절히 활용해 녹여낸 지점에서 큰 점수를 얻었다. 기존 TV 드라마와 전혀 다른 반전 매력을 선보인 '마녀(魔女) Part2. The Other One'(이하 '마녀2', 박훈정 감독) 서은수도 오나라의 만만치 않았던 경쟁자였다. '마녀2'의 주인공이었던 신시아보다 더 존재감을 드러냈지만 작품에서 주는 호불호의 벽을 뛰어넘지 못했다.

▶ 주연상, 미결로 시작해 완결로 끝낸 케미

파도처럼 밀려오다가 때론 물에 잉크가 퍼지듯 서서히 물들기도 했다. 올해 청룡영화상 최고의 연기는 미결의 사랑으로 관객의 마음의 헤집어 놓은 '헤어질 결심'(박찬욱 감독)의 박해일과 탕웨이다.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없는, 더할 나위 없는 완벽한 케미스트리로 남·여주연상을 독식해버렸다.

새로운 인생작 '헤어질 결심'으로 여성 관객의 마음을 뒤흔든 박해일은 군더더기 없는 청결한 연기력으로 인생 두 번째 남우주연상의 영광을 차지했다. "극 중 해준의 마음에 빙의될 정도로 보는 사람을 몰입하게 만들었다" "물이 오를 대로 올랐다" "마침내 알을 깨고 나온 모습이었다" 등 '헤어질 결심' 속 형사 해준 그 자체가 된 박해일에 극찬이 이어졌다. 무엇보다 '헤어질 결심'의 클라이맥스이자 엔딩이었던 바닷가 장면에서는 '올해는 박해일의 해'라는 확신을 갖게 했다는 평이 심사위원들의 결정을 굳히게 만들었다. 박해일 필모그래피 중 가장 매력적이고 완벽한, 최고의 경지에 오른 연기력이었다는 호평을 받으며 올해 남우주연상의 주인공으로 선정됐다.

쉽사리 동요하지 않은 꼿꼿한 변사자의 아내 서래라는 독특한 캐릭터로 박찬욱 감독의 뮤즈가 된 탕웨이도 이견 없는 청룡의 여우주연상이었다. "탕웨이가 아니라면 과연 누가 서래를 소화할 수 있을까" "한국에서 사는 이방인의 느낌을 오롯하게 담아낸 연기" "해외 배우라는 어드벤티지를 떠난 압도적인 연기였다" "영화를 보는 내내 박해일이 되고 싶을 정도로 사랑에 빠졌다" 등의 찬사가 탕웨이에게 이어졌다. 언어적인 한계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서래 그 자체가 된 탕웨이는 올 한해 관객을 찾았던 수많은 여성 캐릭터 중 대체 불가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인생 첫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가져갔다. 탕웨이와 마지막까지 박빙의 경합을 펼친 염정아의 연기력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빈틈이 많았던 '인생은 아름다워'(최국희 감독)에서 고군분투하며 하드캐리한 염정아. "인간 염정아의 삶이 보이는 연기"라는 호평도 이어졌다.

▶ 감독 및 최우수작품상, 마침내 '헤어질 결심'

역시는 역시다. 충무로를 너머 전 세계가 인정하는 거장 박찬욱 감독의 품격은 세월이 지나도 변치 않는다. '헤친자('헤어질 결심'에 미친 자)' '헤결사('헤어질 결심'을 사랑하는 사람들)'라는 신조어를 양산할 정도로 올해 꺼지지 않는 '헤결 앓이'를 하게 만든 박찬욱 감독. 단일한 최고의 마스터피스 '헤어질 결심'이 마침내, 청룡영화상에서 완벽한 유종의 미를 거뒀다.

'헤어질 결심'은 산에서 벌어진 변사 사건을 수사하게 된 형사가 사망자의 아내를 만나고 의심과 관심을 동시에 느끼며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린 박찬욱 감독의 11번째 장편 영화다. 전작에서 선보인 파격과 금기를 넘나드는 강렬한 소재와 표현을 뒤로하고 새로운 공간과 관계의 변화, 그리고 진실의 변화에 따라 켜켜이 쌓이는 주인공들의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에 집중한 '헤어질 결심'은 고품격 로맨스의 정석으로 등극하며 전 세계 관객을 사로잡았다.

박찬욱 감독과 청룡영화상의 인연은 남다르다. '공동경비구역 JSA'(00)를 통해 제21회 청룡영화상 감독상 수상을 시작으로 '올드보이'(03)로 제24회 청룡영화상 두 번째 감독상을, '친절한 금자씨'(05)로 제26회 청룡영화상 최우수작품상을, '미쓰 홍당무'(08, 이경미 감독)로 제29회 청룡영화상 각본상을 받으며 명실상부 최고의 거장임을 입증받았다. 올해 최우수작품상과 감독상을 동시에 거머쥔 '헤어질 결심'은 박찬욱 감독에게 세 번째 감독상을, 또 두 번째 최우수작품상의 영예를 안았다.

심사위원들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한국 영화에 대선배 박찬욱 감독이 힘을 불어넣어 줬다. 작품의 완성도, 기술, 연기까지 작은 흠까지 잡을 수 없는 완벽한 마스터피스다. 부정할 수 없는 올해 최고의 작품이자 감독이다"며 "영화인들에게 왜 좋은 감독과 작업을 해야 하는지, 왜 좋은 작품을 선택을 해야 하는지, 왜 좋은 연기를 해야 하는지 다시 한번 방향을 알려준 지침서와 같다. OTT 플랫폼의 확장으로 한동안 TV, 태블릿, 모니터 등을 통해 가볍고 부담 없이 보는 손쉬운 콘텐츠에 취해있었는데 '헤어질 결심'을 통해 왜 극장을 찾아야 하는지 이유를 되찾았다. 품위 있는 영화가 무엇인지, 존중받아야 하는 콘텐츠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알게 해준 최고의 작품이다"고 박수를 보냈다.

◇ 청룡영화상 심사위원(가나다순) : 강혜정 외유내강 대표, 배우 문근영, 소재현 스튜디오드래곤 프로듀서, 이정혁 스포츠조선 엔터비즈 팀장, 장항준 감독, 조진희 숙명여자대학교 교수, 최재원 앤솔로지스튜디오 대표, 한준희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