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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회 청룡] '韓영화 버텨라, 힘내라'…청룡영화상 심사표 공개

[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버텨라, 힘내라, 한국 영화"

코로나 시국의 위기를 딛고 꿋꿋하게 한국 영화를 지키고 있는 국내 최고의 별들이 제42회 청룡영화상을 통해 다시 한번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됐다. 올해 청룡영화상은 관객을 웃고 울리게 만든 17편의 한국 영화, 10명의 감독, 30명의 배우가 각축을 벌였고 그 끝에 최고의 영예를 차지한 스타들이 탄생했다.

투명한 공정성으로 국내 최고의 권위를 갖은 청룡영화상은 8명의 심사위원과 네티즌 투표 결과를 종합한 총 9표 중 과반수 득표수를 받은 후보를 수상작(자)으로 정하는 방식을 택했다. 전문성과 대중성을 두루 평가하며 모든 작품, 배우에게 공평한 심사를 내리기 위한 방식이다. 또한 상영된 지 오래된 영화를 새롭게 기억하고 흥행작이나 화제작에만 관심이 집중되는 오류를 최소화하기 위해 연 후보작 상영제를 통해 후보에 오른 모든 작품을 꼼꼼하게 평가, 여러 과정의 심사를 거쳐 올해 최고의 작품과 배우를 선정했다.

올해 심사는 시상식 당일인 지난 26일 오후 3시부터 시작해 약 4시간의 심사위원 격론 끝에 영광의 수상자가 탄생했다. 8명의 심사위원은 심사 결과 유출을 사전에 막기 위해 휴대전화를 반납하고 열띤 토론으로 수상작(자)을 선정했다. 투명하고 공정함을 자랑하는 청룡영화상의 심사, 올해 최고의 작품과 배우는 어떻게 탄생했는지 그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한다.

▶ 신인답지 않은 괴물 같은 연기, 신인상

청룡영화상의 시작으로 충무로의 대배우들이 엄마, 아빠 미소를 짓게 만드는 신인상 부문은 독립영화에서 두각을 드러낸 '충무로의 미래'들이 조명을 받았다. 마치 캐릭터 그 자체가 된 신인들은 괴물 같은 연기를 뽐내며 작품 속 강렬한 메시지를 표현했다. 올해 청룡 신인상 부문 주인공은 '낫아웃'(이정곤 감독)의 정재광, '혼자 사는 사람들'(홍성은 감독)의 공승연, '내가 죽던 날'의 박지완 감독이 영예를 차지했다.

먼저 신인남우상을 수상한 '낫아웃'의 정재광은 "영화가 다큐멘터리처럼 느껴질 정도로 리얼한 연기였다"라는 심사평이 심사위원들의 공감을 샀다. 연출자가 요구한 지점을 정확히 파고든 정재광은 완벽한 수비수와 같은 꽉 채운 연기를 펼쳤다는 호평이 상당했다. 정재광에 이어 하준 역시 유력한 신인상 후보로 거론됐다. 정재광이 수비수였다면 하준은 공격수의 연기를 선보였다고. 주연급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배우로 하준이 적격이라는 평이 이어졌지만 결국 심사위원은 고민 끝에 정재광에게 더 많은 표를 던지며 신인남우상을 안겼다.

신인여우상은 노련한 신예 공승연이 차지했다. "고립된 캐릭터를 위해 스스로 억압하고 억누르는 연기가 좋았다"라는 심사평이 결정적 한 방이 됐다. 절제된 캐릭터를 안정된 연기로 살렸고 배우 자체의 매력으로 영화를 집중하게 만드는 힘을 보였다고. 주인공이 영화를 빛나게 만들어준 것은 공승연의 연기 실력이라는 평가가 이어졌다. 공승연에 이어 이유미에 대한 평가도 상당했다. "즉흥적으로 반응하는 생명체 같았다"라는 이유미의 연기에 대해 호감을 나타내는 심사위원들도 상당했던 것. 하지만 '어른들은 몰라요'(이환 감독)라는 작품 자체가 배우를 너무 소모했다는 평가에 입이 모이며 신인여우상의 주인공은 공승연에게 돌아갔다.

신인감독상을 향한 격론도 뜨거웠다. 무려 2차 투표까지 이어진 신인감독상의 주인공은 '내가 죽던 날'로 충무로에 입성한 박지완 감독이 차지했다. 삶의 벼랑 끝에 선 여성 인물들의 보이지 않는 연대를 세밀하고 깊이 있게 담아내며 기존 장르 영화의 문법을 탈피, 섬세한 감성 드라마로 강렬한 울림과 여운을 남긴 '내가 죽던 날'에 심사위원들은 "작품이 가진 미스터리한 구조와 그 안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들이 진지하게 가고자 했던 방향성이 보였다"라는 호평을 내놨다. 특히 신인감독상 작품 중 유일하게 감독 자신이 직접 쓴 오리지널 시나리오라는 대목이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 박지완 감독과 2차까지 경합을 펼친 '발신제한'의 김창주 감독은 "강렬한 연출을 보여줬다"라는 호평을 받았지만 후반부 연출의 힘이 약했다는 평가로 아쉽게 신인감독상을 박지완 감독에게 내어줘야 했다.

▶ 이견없는 최고의 신 스틸러, 조연상

청룡영화상 심사 부문 중 심사위원들의 고민이 가장 큰 조연상은 주연보다 분량은 적지만, 주연 이상의 연기력으로 극의 완급조절을 담당하는 조력자들이다. 연기력에 있어서 완벽에 가까운 실력을 자랑하는 충무로 최고의 조연들이 총출동한 올해의 청룡. 모두의 공감을 산 조연상의 주인공은 '모가디슈'의 허준호, '세자매'의 김선영이라는 충무로의 믿고 보는 신 스틸러가 차지했다.

1995년 열린 제16회 청룡영화상에서 '테러리스트'로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이후 무려 26년 만에 '모가디슈'로 두 번째 청룡 남우조연상을 수상하게 된 허준호. 심사위원들은 다른 작품들에서 봐왔던 북한 대사가 보여준 스테레오 타입의 연기를 벗어나 새로운 캐릭터를 만든 허준호의 연기력에 호평을 쏟아냈다. 특히 한 심사위원은 "허준호가 공백기 이후 다시 배우로 딛고 일어나면서 힘을 실어주고 싶다. 공백기의 아픔이 그를 배우로 성장시킨 것 같고 어떤 배우도 따라갈 수 없을 정도의 내공을 보였다. 마침내 아버지이자 선배 배우인 고(故) 허장강의 연기를 뛰어넘는 수준의 경지에 올랐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허준호와 호흡을 맞춘 구교환과 '승리호'의 맛을 200% 살린 진선규 또한 심사위원들의 관심을 받았다.

여우조연상은 베테랑 김선영과 패기의 이수경의 접전이었다. 심사위원들은 김선영을 향해 "'세자매'에서 보인 김선영의 연기는 소름 끼칠 정도로 잘한 연기의 정석을 보였다. 김선영이라는 배우의 넘치는 에너지를 잘 잡고 캐릭터를 이끌어 갔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된 연기력이었다"고 호평 일색이었다. 김선영과 함께 '세자매'에서 열연을 펼친 장윤주에 대한 평가도 뜨거웠다. "아티스트의 방점을 찍은 느낌을 받았다. 한 번도 레퍼런스를 삼기 어려운 역할을 장윤주가 소화했다. 다만 베테랑들의 싸움에서 너무 날것의 느낌을 보여 아쉽다"라는 평가를 받았다. 더불어 김선영과 격돌을 보인 '기적'의 이수경에 대해서는 "영화의 빈틈을 메꾼 일등 공신이다. 새로운 배우의 발견이라는 느낌을 받아 반가웠다. 김선영이 워낙 압도적인 연기를 보여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이수경은 김선영 못지않은 큰 배우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 다시 돌아온 '오아시스', 주연상

2002년 한국 영화를 뜨겁게 달군 '오아시스'(이창동 감독)의 설경구, 문소리가 19년 뒤 청룡의 무대에서 최고의 영예로 다시 한번 두 손을 잡았다. 청룡 주연상 부문은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중심을 이끈 명배우의 열전으로 올해는 '자산어보'의 설경구, '세자매'의 문소리가 차지했다.

'지천명 아이돌'로 제3의 전성기를 맞이한 설경구. 올해엔 '자산어보'에서 흑산도로 유배된 후 바다 생물에 눈을 뜬 학자 정약전으로 관객을 찾은 그가 청룡의 남자로 등극했다. 2000년 열린 제21회 청룡영화상('오아시스'), 2002년 열린 제23회 청룡영화상('공공의 적') 이후 세 번째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게 된 설경구. 심사위원들은 "과거 '박하사탕'을 보며 배우가 빛난다는 느낌을 처음 받았는데 어느 순간 그런 모습을 못 본 것 같았다. 그런데 '자산어보'로 오랜만에 그의 빛나는 모습을 봤다. 연기가 아닌 마치 자산 그 존재가 된 느낌이 있었다. 연기가 일취월장한 느낌이었다. 성숙한 톤으로 영화를 이끈 설경구는 '자산어보'에서 나온 바람 소리까지 들리게 만들었다. 정약전 그 자체로 기억됐다"고 압도적인 평가를 받았다. 설경구와 함께 '자산어보'를 이끈 변요한 역시 "대배우 옆의 젊은 배우가 주눅이 들 수 있는 상황인데 그것과 상관없이 자신의 존재감을 부족함 없이 보여줬다"고 호평을 받기도 했다.

충무로 대표 걸크러시 문소리에게도 올해 청룡은 특별한 순간이 됐다. 제23회 청룡영화상에서 '오아시스'로 신인여우상을 수상한 그는 19년 만에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그 존재감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세자매'에서 완벽한 척하는 가식덩어리 둘째 미연을 연기한 그는 겉으로는 독실한 믿음을 가진 성가대 지휘자이자 나무랄 데 없는 가정주부이지만 그 내면에는 유년 시절 겪은 고통과 상처의 트라우마를 가진 캐릭터를 완벽히 표현하며 올해 최고의 여배우로 등극했다. 심사위원들은 문소리에 대해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완벽했다. 설경구와 같이 거리감이 있는 배우로 느껴졌는데 '세자매'에서는 그런 거리감이 사라졌다. 미연을 현실적인 캐릭터로 만드는 데 문소리가 정말 큰 역할을 했다. 다른 배우가 이 역할을 맡는다면 이 정도로 포인트를 잡아 표현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뛰어났다"고 평가했다. 문소리와 2차 투표까지 가며 접전을 펼친 김혜수에 대한 호평도 상당했다. 심사위원들은 "대스타에서 벗어난 듯한 자유로워진 모습을 봤다.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했는데 이번 '내가 죽던 날'에서는 모든 걸 내려놓고 평범한 중견의 배우로 변신한 지점이 인상적이었다. 마치 그리스 신화로 봤을 때 아틀라스가 지구를 혼자 짊어진 느낌을 받았다" 등의 평가를 받기도 했다.

▶ 한국 영화 심폐소생, 감독 및 최우수작품상

청룡영화상 최고의 영예인 최우수작품상은 올해 감독상과 동시에 심사가 진행됐다. 감독의 역량이 곧 작품성이며 반대로 작품성이 곧 감독의 역량이기 때문. 유독 힘들었던 올해의 한국 영화였지만 그 속에서도 빛을 낸 명작과 이를 이끈 최고의 선장은 바로 '모가디슈'와 류승완 감독이었다. 앞서 '모가디슈'를 제작한 강혜정 외유내강 대표는 2011년 열린 제32회 청룡영화상('부당거래') 이후 두 번째 작품상을, 류승완 감독은 제32회, 제36회 청룡영화상('베테랑') 이후 세 번째 감독상을 수상하게 됐다.

코로나19 4차 대유행, 그리고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로 극장가는 고사 위기의 최악의 여름 시즌을 맞았다. 하지만 이 위기 속에서도 작품성과 진정성 하나로 과감히 출사표를 던져 무려 361만명의 값진 관객수를 동원한 류승완 감독의 '모가디슈'는 올해 최고의 작품과 최고의 감독으로 손색이 없었다. 앞서 '모가디슈'는 올해 청룡영화상에서 최우수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남우조연상, 스태프상 등 총 10개 부문(13개 후보)에 이름을 올리며 최다 노미네이트 후보작으로 눈도장을 찍었는데 실제로 굵직한 주요상을 독식하며 올해 최고의 영화라는 이름값을 톡톡히 해냈다.

'모가디슈'는 1991년 소말리아 내전으로 수도 모가디슈에 고립된 사람들의 생존을 건 탈출을 그린 액션 영화다. 먼 타지 모가디슈에서 맨땅에 헤딩하듯 한국을 홍보하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내전까지 겪게 되면서 위기를 겪고 또 오직 생존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함께 탈출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운 '모가디슈'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00) '주먹이 운다'(05) '짝패'(06) '부당거래'(10) '베를린'(12) '베테랑'(15) '군함도'(17) 등 매 작품 한계 없는 도전을 이어가며 흥행과 작품성을 동시에 사로잡은 류승완 감독의 4년 만의 신작이자 11번째 연출작이다.

심사위원들은 "작품상은 말 그대로 프로덕션 전체의 완성도를 따져야 하는 부문이다. 다섯 작품 중 프로덕션 전체에서 가장 단점 없이 완성도를 높인 작품은 '모가디슈'다. '모가디슈'는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다. 250억원의 대규모 예산이 들어간 작품이지만 사실 할리우드에 비하면 독립 영화 수준으로 블록버스터를 만든 셈이다. 이러한 'K-블록버스터'를 만들 수 있는 건 뛰어난 제작자와 최강의 호흡을 자랑한 감독의 컨트롤이 필요하다. '모가디슈'는 한국 영화 산업의 현재를 정확히 보여주고 있는 작품으로 의미가 깊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 청룡영화상 심사위원(가나다순) : 곽신애 바른손이앤에이 대표, 김지연 이든픽쳐스 대표, 민창기 스포츠조선 편집국장, 양우석 감독, 윤성은 평론가, 배우 정보석, 조진희 숙명여자대학교 교수, 조혜정 중앙대학교 교수

조지영 기자 soulhn1220@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