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um App

Experience a richer experience on our mobile app!

[도쿄올림픽]'할 수 있다'박상영의 눈물, 형들 빈자리-엄청난 부담감을 이겨냈다

'할 수 있다' 박상영이 또 한번 해냈다.

남자 에페 대표팀은 에이스 박상영(26·울산광역시청)-권영준(34·익산시청)-송재호(31·화성시청)-마세건(27·부산시청)으로 이뤄졌다. 그들은 30일 일본 지바 마쿠하리 메세홀B에서 벌어진 도쿄올림픽 에페 남자 단체전 동메달결정전에서 중국을 45대42로 제압했다. 앞서 일본에 무너져 결승 진출이 좌절된 상황, 사기가 꺾였지만 포기하지 않고 기어이 중국을 물리쳤다.

동메달을 확정짓는 순간, 박상영은 눈물을 펑펑 쏟았다. 심적인 부담감이 그 어느 때보다 컸다. 2016년 리우올림픽, 올림픽이 처음인 박상영은 남자에페 대표팀 막내였다. 런던올림픽 개인전 동메달리스트 정진선, 세계선수권 금메달리스트 박경두 등 톱랭커 베테랑 형님들이 건재한 올림픽에서 박상영은 거침없이 부담없이 날아올랐다. 개인전 결승 세계 3위 임레 게저(헝가리)를 상대로 기적의 명승부를 펼쳤다. "할 수 있다"를 되뇌인 후 10-14의 스코어를 15대14로 뒤집어내며 첫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파죽지세였다. 불과 3년전까지 남자 에페는 한국 펜싱의 얼굴이었다. 국제대회에서 박상영이 첫 번째로 자신의 점수룰 따내면 든든한 형님 박경두, 정진선이 뒤를 받쳤다. 두려울 것 없던 시절이었다.

도쿄올림픽은 달랐다.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 이후 정진선과 박경두가 대표팀을 떠났다. 당연히 세대교체는 단번에 이뤄지지 않았다. 펜싱 하면 박상영을 떠올리는 이들의 기대감은 더 높아졌고, 해야할 역할이 더 커졌다. 디펜딩 챔피언, 에이스의 중압감이 어깨를 짓눌렀다. 금메달 후 펜싱 인생 최대의 슬럼프도 겪었다. 도쿄올림픽이 미뤄진 후 촌외훈련으로 컨디션을 다져왔다. '막내온탑' 박상영은 도쿄행 전날 선배 정진선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님, 리우 때가 마음이 편했네요" 했다. "메달 안따도 돼, 편하게 하고 와." 잠도 잘 못잔다는 막내에게 선배가 해줄 유일한 응원은 부담감을 덜어주는 일뿐이었다.

박상영은 개인전 8강에서 아쉽게 탈락한 후 결연하게 단체전을 준비했다. 여자에페 대표팀이 은메달, 남자 사브르 대표팀이 금메달을 따낸 직후 피스트에 섰다.

베테랑 권영준의 컨디션이 좋지 않았고, 마세건, 송재호는 올림픽이 생애 처음이었다. 말번으로 나선 박상영은 승리를 결정지어야 했다.

스위스와의 8강전, 30-34로 밀린 상황에서 마지막 주자로 나선 박상영은 무려 14점을 찔러내며 44대39 대역전극을 완성했다. 탈락 직전의 대한민국을 4강으로 올렸다. 그러나 4강 한일전에선 4라운드 20-8까지 벌어진 점수를 따라잡기엔 역부족이었다. 38대45로 패하며 동메달 결정전에 나섰다.

중국과의 동메달 결정전 6라운드 20-21, 한 점 뒤진 채 칼을 넘겨받은 박상영은 6점을 내리 내주며 23-27로 밀렸다. 그러나 7라운드 송재호가 6-5, 8라운드 권영준이 5-2로 이겨내며 34-34, 다시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이번엔 8강전, 4강전에서 부진했던 동료들이 힘을 냈다. 마지막 주자, 박상영의 부담감을 줄여주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9라운드 11점을 찔러내며 마지막 짜릿한 플래시로 45대42, 동메달을 확정짓는 순간 박상영은 눈물을 펑펑 쏟았다. 그간의 마음고생을 날리는 뜨거운 눈물이었다. '선배' 권영준 역시 대성통곡을 했다. 앞선 경기 컨디션 난조를 동메달 결정전 투혼으로 갚았다. 남자 에페의 자존심을 지켜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누구보다 컸을 권영준이다.

최악의 위기를 이겨내고 '원팀'으로 똘똘 뭉쳐 따낸 이 동메달은 금메달보다 값지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이상기가 한국 펜싱 사상 첫 올림픽 동메달을 따낸 후,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정진선이 개인전 동메달을 따냈다. 2016년 리우올림픽에서 박상영이 개인전 첫 금메달을 목에 걸더니, 2021년 도쿄올림픽에서 박상영, 권영준, 송재호, 마세건이 한국 남자 에페 사상 최초의 단체전 메달을 획득했다. 한국 펜싱의 자존심 남자 에페가 또 한번 새 역사를 썼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