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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현장리포트]'나이는 못 속인다'는 황제, 은퇴엔 단호히 고개 저었다

[도쿄=스포츠조선 박상경 기자] 또 한 시대가 저물었다.

'사격 황제' 진종오(42·서울시청)가 '노메달'로 도쿄올림픽을 마무리 했다. 진종오는 27일 도쿄 아사카 사격장에서 펼쳐진 대회 10m 공기권총 혼성전에서 추가은(20·IBK기업은행)과 짝을 이뤄 총점 575점(10점 13발)으로 이란의 자바드 포루지-하니예 로스타미얀조(575점·10점 18발)와 동률을 이뤘지만, 10점 숫자에서 밀려 아깝게 결선행에 실패했다.

지난 26일 개인전에서 전체 15위로 결선행 좌절을 맛봤던 진종오는 혼성전에서도 8위까지 주어지는 결선 티켓을 잡지 못했다. 앞선 4번의 올림픽에서 6개의 메달(금4 은2)을 따내 '신궁' 김수녕(금4은1동1)과 함께 한국 올림픽 최다 메달 타이 기록을 갖고 있는 진종오는 이번 대회를 통해 새 역사에 도전했지만, 아쉬움을 삼켰다.

그동안 진종오는 초반 실수에도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한 역전의 명수이자 승부사였다. 이번 도쿄올림픽에선 그답지 않은 실수가 잦았다. 개인전 1시리즈에서 3번이나 8점이 나왔다. 개인전 6시리즈에선 1~8번째발을 모두 10점 과녁에 꽂아넣는 신들린 집중력을 선보였으나, 9번째발이 8점에 그쳤다.

진종오는 단체전을 앞두고 야간 훈련까지 자청할 정도로 심기일전 했다. 그 결과 혼성전 1시리즈 초반 불안한 출발에도 빠르게 영점을 잡았고, 2시리즈 초반엔 잇달아 10점 과녁을 뚫는 등 '사격 황제'의 면모를 비로소 증명하는 듯 했다. 하지만 3시리즈 후반 쏜 탄환이 잇달아 10점 과녁을 벗어났다. 황제도 세월의 무게를 이겨내진 못했다.

진종오는 경기 후 전광판을 주시했다. '유쾌한 도전'을 다짐했던 올림픽이지만, 원하지 않았던 결과에 아쉬움까지 숨기진 못했다. 추가은이 달고 있던 등 번호표를 직접 떼준 진종오는 곧 펜을 들더니 자신의 사인과 함께 '가은아, 이제는 승리할 날들만 남았다!'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추가은도 진종오의 번호표에 '좋은 추억 남겨줘서 고마워요'라고 화답했다.

경기 후 믹스트존에서 취재진과 만난 진종오는 "무슨 말을 해야할 지 떠오르지 않는다. 부족함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 이를 채우기 위해 야간 훈련까지 하며 준비했는데, '세월에 장사 없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감정을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고 했다. 그는 이내 곁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추가은을 바라보더니 "(추가은의) 첫 올림픽이다. 진종오와 호흡을 맞춰 부담이 컸을 것이다. 이제 스타트를 끊었다. 다음엔 세계 정상권 선수들과 겨룰 것"이라고 응원했다. 3시리즈 막판 추가은이 8점 실수를 한 부분에 대해선 "실수를 하면 본인이 가장 속상하다. 성적을 떠나 열심히 하는 모습도 인정해주셨으면 한다. 나는 비난 받아도 괜찮지만, 가은이에게 심한 비난은 하지 말아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주고 받은 메시지를 두고는 "두 번 다시 이런 기회가 있을까 싶었다. 갑자기 떠올라 하게 됐다. 평생 기억에 남는 순간이기에 기념하고 싶었다"고 했다.

어느덧 불혹을 넘었다. 원치 않았던 내용과 결과는 귀국길에 오르는 진종오에게 많은 생각을 남길 것이다. 진종오도 "나이는 못 속이는 것 같다. 예전보다 확실히 집중력 등 몸의 변화를 느끼는 것 같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아직까진 '은퇴'라는 단어를 떠올리고 싶진 않다. (선수의 은퇴는)직장인이 회사를 관두는 것과 같지 않나. 정정당당하게 대표 선발전을 거쳐 여기까지 왔다"고 강조했다. 최상의 결과를 이루진 못했지만, 도쿄에서의 아쉬움은 진종오에게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이다.

도쿄=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