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최만식 기자] "원래 선수들에게 많은 말을 안해요."
수원 삼성 박건하 감독(50)이 12일 제주유나이티드와의 K리그1 15라운드가 끝난 뒤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비단 선수단에서뿐 아니라 박 감독의 평소 성격이 그렇다. 지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박 감독은 회식 자리에서도 부처님같은 미소를 머금고 경청할 때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슈퍼매치(vs 서울)', '공성전(vs 전북 현대)'같은 빅게임이 있을 때면 흥행을 위해 짐짓 '도발 발언'을 하기도 하는데 박 감독은 그저 점잖하다.
한 관계자는 "겉으로 보면 재미없을 사람같지만, '비호감' 스타일은 아니다. 알고 보면 '진국'같은 성품이어서 싫어하는 이가 거의 없다"면서 "남에게 폐끼치지 않고 묵묵히 자기 일(축구)에 몰두하는 선비같은 성격"이라고 말했다.
박 감독의 이런 '곰같은 성격'은 그라운드에서도 빛을 발하는 모양이다. '기다림의 리더십'이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외국인 공격수 제리치. 제리치는 사실 그동안 팀에서 '계륵'같은 존재였다. 14라운드까지 12경기에 출전해 1골을 넣는데 그쳤다.
수원이 시즌 초반 팀 득점이 저조하고 좀처럼 승률을 올리지 못하자 "외국인 공격자원 복이 없다"는 주변 얘기도 많이 나왔다. 하지만 박 감독은 제리치를 계속 기다렸다. 작년에 경남에서 부상으로 인해 오랜 기간 고생을 했고, 이제 재활을 마치고 부활하는 중이라며 제리치가 갖고 있는 능력치가 터질 날이 올 것이라며 뚝심으로 버텼다.
12일 제주전에서 드디어 터졌다. 박 감독은 이날 경기 시작 전에도 "부상 회복 후 따로 개인훈련을 하거나 출전을 통해 컨디션을 올려야 하는 어려운 상황이지만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면서 "우리 팀 템포가 빨라서 제리치가 쫓아오느라 어려움 있는 걸 잘 안다. 그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 같이 노력하는 중이라 기대할 만하다"고 제리치를 감쌌다.
박 감독의 '기다림'이 고마웠을까. 제리치는 지난 3월 14일 강원전 첫골 이후 2개월 만에 1골-1도움으로 맹활약을 펼쳤다. 제리치의 화답을 받은 박 감독은 "제리치와 대화하면서 개인훈련 프로그램을 가동한다. 지난 전북전에서 좋아진 것을 보고 이번 제주전에서 기대를 좀 했다"며 웃었다.
요즘 가장 '핫'한 젊은 피 정상빈(19)도 기다림 끝에 나온 작품이다. 정상빈은 시즌 개막 후 4라운드까지 대기 명단에도 들지 못했다. 'U-22' 자리는 주로 강현묵과 김태환의 몫이었다. 정상빈이 처음 입단했을 때만 해도 박 감독의 눈에 확 띄지는 않았고, 스피드는 좋은 선수였다. 이후 박 감독은 스피드의 장점을 살려 힘까지 겸비한 선수로 한 단계 더 성장하도록, 고등학생 티를 벗을 수 있도록 또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