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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톡톡] 열차가 멈춘 시간...전차선 작업이 시작됩니다



23시 30분 태화강역 인근 야적장으로 안전모를 쓴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듭니다. 한숨 섞인 담배를 태우는 이. 실내등만 밝힌 트럭 안에서 일회용 손난로를 두 손 꽉 움켜쥐어 보는 이.
울산 태화강역 인근 동해 남부선 선로에서 작업할 '전차선 노동자'들입니다.
작업 시작 시각은 모두가 잠든 밤 익일 00시 30분부터입니다.






'전차선 노동자'를 아시나요?
"전차선 단전으로", 전차선에 낙뢰가 떨어지면서", "전차선 정비작업으로"
열차가 지연되거나 중단될 때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전차선'은 지하철, KTX 등이 운행하는 데 필요한 전기를 공급하는 전선입니다.
이러한 전선을 연결하고 유지 보수하는 작업을 하는 이들이 바로 '전차선 노동자'들입니다.


선로 위에 막 입장한 한 작업자가 하체를 여러 번 힘겹게 튕겨 올려 공구가 빽빽하게 꽂힌 벨트를 허리에 착용해봅니다.
펜치, 몽키, 전동공구 등을 꽂아 넣으면 10킬로는 훌쩍 넘겨 최대 20킬로까지도 몸에 장비를 두르게 됩니다.


무엇보다 가장 힘든 건 작업 시간대.
신설 개통을 위한 작업은 보통 낮에 하지만 디젤 열차가 다니는 선로에서 하는 전철화 작업은 열차가 다니지 않고 전기공급이 완전히 차단된 새벽 시간에 이뤄집니다.
작업을 모두 마친 시각은 대략 6시. 이후에 소주 2병을 마셔도 오전 10시까지 단잠 한잠 자기 어렵습니다.
밤에 하는 일은 영원히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은 고된 작업입니다.


자갈밭, 투박한 철로. 그야말로 디디는 곳마다 흉기입니다.
그 위로 설치된 사다리나 전주 위를 서커스 하듯 오르내리는 걸음걸음을 보고 있자면 온 근육이 오그라드는 듯합니다.
작업자들의 긴장감은 거침없이 뿜어져 나오는 입김이 되어 짙은 어둠 속으로 흩어집니다.
현장 관계자에 따르면 50년 된 이 사다리는 재질만 바뀌었을 뿐 안전과 관련돼 개선된 점은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






어둠이란 벽에 세워둔 것 같은 사다리 위에서 의지할 수 있는 것은 나와 동료의 헤드 랜턴뿐입니다.
조도 확보조차 되지 않은 위험한 환경 속. 열차가 멈춘 단 4~5시간 안에 신속하게 처리해야 하는 업무이기 때문에 사고는 빈번합니다.
노조에 따르면 전국에 작업자가 300명뿐인데 지난 1년간 중상자는 14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그간 전차선 노동자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전차선 시공 현장의 위험성을 알리고 철도건설 현장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국가철도공단에 이와 관련한 문제 해결을 촉구해왔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안전은 외면한 작업방식에 답답함을 느낀 전차선 노동자들은 지난 21일 다시 취재진 앞에 섰습니다. 허울뿐인 안전지침을 규탄하고 국가철도공단의 책임 있는 조치를 요구했습니다.




최우선이어야 할 안전이 지금 이 시간에도 어느 현장에서는 여전히 공정에 한참 뒤로 밀리고 있습니다.
노조관계자는 "안전 문제는 국가철도공단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힘주어 말합니다.
내가 작업한 곳의 열차가 안전하게 다니는 것이 이분들의 보람이며 내일 '전차선 노동자'들이 다시 선로 위에 서는 이유입니다.
많은 것을 요구하는 걸까요. 다만 이분들이 그러했듯 서로가 서로의 최소한의 안전만이라도 지켜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통과됐습니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중대재해법에 대해 "노동자와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새로운 출발점"이라며 "기업인을 처벌하기 위한 게 아니라 기업의 안전보건 조치를 강화하고 안전 투자를 확대해 중대재해를 근원적으로 예방하는 데 궁극적인 목적이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법과 처벌에 우선해 우리는 '김용균' 그리고 '구의역 김군'이 살아있었음을 기억해야합니다. 오늘 이 현장에서 과거의 참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는 것. 너무 늦은 일이 되지 않게 하는 것. 당장 변화하고 실천하는 일에 해답이 있습니다.
pdj6635@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