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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슬후 주저앉아버린 김기희...축구는 때로 이렇게 아프다[현장리포트]

25일 K리그1 울산-전북의 우승결정전, 90분 종료 휘슬과 동시에 '울산 센터백' 김기희는 그만 그라운드에 주저앉았다.

치명적인 실책이었다. 0-0으로 팽팽하던 후반 18분 울산의 빌드업을 위해 김기희가 골키퍼 조현우를 향해 무심히 툭 떨어뜨린 백헤더가 화근이었다. 전북의 바로우가 먹잇감을 낚아챈 맹수처럼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골망을 흔들었다. 어이없는 실책… 또다시 악몽이었다. 이 골은 이날 16개의 슈팅을 주고받은 울산과 전북, 양팀에서 나온 유일한 골이었다.

이날 맞대결은 '막상막하' 리그 1-2위의 우승결정전다웠다. 빠르고 뜨겁고 흥미진진했다. 울산 역시 지난 두 번의 전북전과는 달랐다. 마지막까지 라인을 끌어올린 채 동점골을 향해 분투했다. 변칙 전술이나 선수 기용에 대한 비판도 별반 나올 것이 없었다. 윤빛가람의 날카로운 프리킥이 골대를 두 번 강타한 불운, 그리고 후반 18분 단 한번의 뼈아픈 실책이 패배의 이유가 됐다.

김기희는 직전 포항전에서 주전 센터백 불투이스가 퇴장 당하면서 기회를 잡았다. 15년만의 우승을 결정지을, 중요한 경기에서 잘하고자 하는 마음이 누구보다 컸을 것이다.

축구가 제아무리 실수의 스포츠라지만, 빅매치에서 치명적인 실수는 선수도, 팬들도 받아들이기 힘들다. 지난해 포항과의 최종전 스로인, 올 시즌 첫 전북전과 마지막 포항전의 퇴장 악재… 왜 반드시 잡아야할 절체절명의 경기에서 평소 하지도 않던, 황당한 실수가 나오는 건지, 그리고 이 실수 하나에 한해 농사의 성패가 좌우된다니, 축구는 때로 달콤하지만 때로 너무 잔인하다.

김기희는 그라운드에 주저앉아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었다. 치열한 축구전쟁 후 다시 친구로 돌아온 전북의 김보경이 김기희를 위로했다. 둘은 홍익대 동기이자 대표팀 동료다. 지난해 울산에서 같은 아픔을 겪어야 했던 김보경이 전북 유니폼을 입은 채 친구의 시련을 함께 아파했다. 이날 전반 전북 구스타보의 페널티킥을 온몸으로 막아냈던 '울산의 국대 수문장' 조현우가 동료 김기희를 끌어안으며 위로했다. 베테랑 이청용 역시 김기희 곁을 떠나지 않았다. 라커룸으로 들어갈 때까지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경기후 기자회견에서 김도훈 울산 감독은 김기희의 실수에 대해 "축구하다보면 많은 상황이 생긴다. 운이 나빠서도 생긴다.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불투이스가 뛸 수 없는 상황, 김기희는 내달 1일 광주와의 최종전을 또다시 준비해야 한다. 전북과의 FA컵 결승 1-2차전,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일정도 이어진다. 죽을 것처럼 힘든 상황에도 축구는 계속된다.

김 감독은 "선수는 이렇게 패배하게 되면 정말 괴롭다. 여러분이 상상하지 못할 기분일 것"이라고 했다. "위로를 할 수밖에 없다. 무슨 말이 필요하겠나. 휴식이 필요하다. 가족과 함께 해야 한다. 지나간 것은 빨리 잊고 다음에 이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면 된다. 축구는 계속해야 한다. 계속 발전해나가야 한다. 누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이겨내야 한다." 울산=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