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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현장]'한번도 다룬적 없던 소재'…'69세' 예수정, 노년 여성의 존엄성에 대하여(종합)

[스포츠조선 이승미 기자]"인생은 그렇게 쉽게 끝나지 않아." 한국 영화에서 단 한번도 다루지 않았던 노년 여성의 성폭행 사건을 다룬 영화 '69세'과 주연을 맡은 '명품 배우' 예수정(65)이 관객들에게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깊은 화두를 던진다.

비극적인 상황에 처한 69세 효정이 부당함을 참지 않고 햇빛으로 걸어나가 참으로 살아가는 결심의 과정을 그린 영화 '69세'(임선애 감독, ㈜기린제작사 제작). 11일 오후 서울 성동구 메가박스 성수에서 열린 언론·배급시사회를 통해 공개됐다. 이날 시사회에는 임선애 감독과 예수정, 기주봉, 김준경이 참석했다.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부문에 선정, 관객상을 수상해 이미 영화에 작품성과 진정성에 대해 진가를 발휘한 바 있는 '69세'는 한국 영화에서도 한 번도 다루지 않았던, 무심코 당연하게 지나쳤던 장년 여성의 이야기를 통해 여성으로서, 노인으로서, 사회에서 약자가 감내해야 할 시선과 편견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극장 문을 나서고 나서도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영화는 오래토록 관객의 마음에 묵직한 울림을 전해준다.영화를 울림을 더욱 깊게 만들어준 건 주인공 효정 역을 맡은 예수정의 연기에 있다. 영화 '신과 함께-죄와 벌', '허스토리', tvN 드라마 '비밀의 숲',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 등의 작품에서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준 명품 배우 예수정은 이번 작품에서 덤덤하면서도 절제되어 된 연기로 스크린에 묵직한 깊이를 전해주며 빛나는 연기 내공을 여실히 드러낸다. 그가 연기하는 효정은 사회가 정해놓은 노인의 틀에서 벗어나는 인물로 예수정은 단단한 눈빛과 결연한 표정만으로도 관객에게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

임선애 감독은 "우연히 웹 검색을 하다가 노인 여성이 성폭행 피해사건을 다룬 칼럼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제가 인상깊게 봤던 문장은 우린 사회가 노인을 차별적 존재로 보는 시선이 노인을 타깃으로 삼고 약점으로 이해한다는 것이었다"고 작품에 대해 설명했다. 이어 "그게 계속 마음에 남더라. 사실 여성 노인을 다루는 영화가 많지 않은데, 괜한 도전을 하고 싶었다. 제가 또 중년 노년의 이야기를 좋아하기도 해서 꼭 한번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이어 주인공의 나이 설정을 69세로 설정한 이유에 대해 "시나리오를 쓸 때 나이와 이름을 정확하게 쓰고 시작하는 편인데 효정을 몇세로 정할까 고민하다가, 중년과 노년의 경계 정도로 정하고 싶었다. 그게 70세는 아닌것 같고 69세로 정했다. 그런데 지어놓고 나니 지금 60세인 우리 엄마도 여전히 젊어 보인다. 그냥 저의 선입견이 들어간 제목인 것도 같다"고 설명했다.

임 감독은 이날 예수정과 기주봉의 캐스팅에 대해 깊은 만족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저는 행운아인 것 같다. 제 마음 속에는 이미 예수정, 기주봉 선배님을 캐스팅 했었다"라며 "그런데 기주봉 선생님은 다른 작품 때문에 힘든 스케줄이었는데 예수정 선배님이 캐스팅 된 후에 예수정 선배님께서 '효정은 아무나 해도 되는데 동인은 기주봉 선생님이 해야 한다'고 하시더라. 그래서 기주봉 선생님께 다시 연락을 드렸고 하시기로 한 작품을 하지 않게 되셔서 다행히 저희와 함께 하게 됐다"며 웃었다.

69세의 성폭행 피해자 심효정 역의 예수정은 "배우는 선택되는 직업이다. 내가 하고 싶은 역을 택하진 못하지만 나의 기준의 하고 싶지 않은 건 안하는 거다. 내가 생각하는 삶의 방향과 다른 메시지를 주는 작품은 택하지 않는다. 이왕이면 영화는 사회성이 있는 작품을 선호하고 연극은 문학성이 있는 작품을 선호한다"며 영화 선택 기준에 대해 말했다.

그러면서 '69세'를 택한 이유에 대해 "('노년 성폭행'이라는) 소재는 낯설었지만 소재에 국한하지 않고 넓은 개념으로 생각을 했다"라면서 "우리나라도 노령사회로 접어든다고 재앙처럼 다들 걱정하시는데, 사실 가보지 않은 것 처럼 우리가 경험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노년사회'라는 집합체로만 생각하는 것 같더라. 연령에 상관없이 사회는 변화하는데 개체로서 사회를 들여다 볼 기회는 없었던 것 같다. 이 영화는 상당히 개인적인 삶을 그려내서 좋았다"고 설명했다.극중 효정이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현재 효정이 큰 고통스러운 일을 당했지만, 인생의 고통이라는 면에서는 어쩌면 살아오면서 더 큰 고통도 겪었을 법한 인물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래서 어떤 일이 있어나도 바로바로 반응하는 인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미 인생의 여정에 있어서 그 고통을 겪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일어나는 사건에 감정에 흔들리지 않도록 표현하려 했다"고 덧붙였다.

주인공 심효정의 곁을 지키는 남동인 역의 기주봉은 "작품에서 책방 주인으로 나오는데, 책을 보면 많은 상상을 하듯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의외의 모습이 생기는 작품이었다. 고맙게도 감독님과 예수정 씨가 저를 찾아줬다"고 말했다. 이어 "일찍부터 예수정 배우의 궤적을 알고 있고 연극으로부터 시작할 때 동지 의식도 있었다. 작품할 때도 어색함 없이 호흡을 맞후게 됐다"며 예수정과의 호흡에 대해서도 만족했다.

"시나리오를 보고 이런 천인공노할 놈이라서 어떻게 연기해야 하나 생각했다"는 간호조무사이자 29세의 성폭력 가해자 이중호 역의 김준경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전체가 주는 메시지가 저를 기꺼이 희생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이어 쟁쟁한 대 선배들과 함께 호흡을 맞추게 된 것에 대해 "캐스팅 되고 나서는 가소롭고 거만하게도 내가 뭔가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촬영에 들어가니까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체감하게 됐다"며 "그러던 중에 선배님의 연기를 듣고만 있어도 최선의 연기가 나올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선배님이 연기를 집중해서 보려고 했다"고 덧붙였다.

한편, '69세'는 '사바하', '남한산성', '화차' 등 수십 편의 장편 영화에 참여한 스토리보드 작가 출신의 임선애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예수정, 기주봉, 김준경, 김중기, 김태훈 등이 출연한다. 오는 20일 개봉.

이승미 기자 smlee0326@sportshc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