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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자 어딨느냐'…폭우에 잠긴 납골당, 분노하는 유가족

"도대체 책임자는 어디 있는 거예요. 왜 아무런 설명도 없이 마냥 줄만 서라는 겁니까."
"그 사람도 유족이에요, 우리끼리 다툴 일이 아니고 지금은 물이 차 있으니 들어갈 수가 없는 거예요."
폭풍우 같았던 비가 물러난 9일 광주 북구 동림동의 한 사설 납골당에서는 불안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는 유가족이 삼삼오오 모여들어 언성을 높였다.
수일간 폭우가 이어지면서 영산강 둔치에 자리한 이 납골당도 침수 피해를 봤다.
건물 안으로 빗물과 강물이 밀려들면서 유골함 1천800기를 안장한 지하 추모관이 천장까지 통째로 잠겼다.
유가족 가운데 일부는 장대비가 쏟아지던 전날 오전 걱정스러운 마음에 납골당을 찾았다.
이 유가족은 지하층이 완전히 물에 잠기기 전에 유골함을 수습할 수 있었다.
납골당 침수 소식은 저녁 무렵에야 SNS(사회관계망서비스)와 맘카페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했다.
대다수 유가족은 납골당 운영자가 소문이 퍼진 지 한참 뒤에야 짤막한 안내 문자 한 통만 보냈다며 책임감 부재를 지적했다.
유가족 100여명은 전날 밤부터 납골당 입구에 모여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날이 밝자 수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까지 차를 세워두고 영산강 둑길을 따라 걷는 유가족의 행렬이 납골당으로 이어졌다.



전날 폭우를 뚫고 온 소방대가 일부 작업을 진행하기는 했으나 본격적인 배수는 날씨가 갠 이날 아침 시작됐다.
민간업체로부터 빌려온 장비만으로는 배수가 더뎌지자 육군 31사단 장병이 배수펌프를 들고 힘을 보태기도 했다.
경찰과 소방, 행정 당국도 현장에서 안전관리와 민원대응 등으로 분주했다.
오전 9시께 물을 빼내기 시작하자 정오 무렵 지하층의 3단 납골묘까지 수위가 낮아졌다.
이날 새벽부터 직접 물빼기 작업에 힘을 보탠 일부 유가족은 유골함을 손수 챙겨서 하나둘 밖으로 나왔다.
유골함을 수습한 한 유가족은 밀봉상태가 유지돼 흙탕물이 용기 안까지 스며들지는 않았다며 다른 유가족을 안심시켰다.
그는 지하 내부를 살펴봤는데 납골묘 유리문이 단단히 고정돼 유골함은 모두 제자리에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진흙탕으로 변한 잔디광장에 운집한 수백명의 유가족은 배수가 완전히 끝나고 안전점검까지 이뤄지면 차례차례 건물 안으로 들어가 유골함 상태를 살펴볼 예정이다.
유가족은 기다리는 동안 여러 의견을 나누며 대응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
운영자를 더는 믿을 수 없으니 곧장 유골함을 수습하자는 의견, 광주시나 지방자치단체에 책임을 물을 때까지 현장을 보존하자는 생각 등이 교차 중이다.

한 유가족은 "이 침수는 천재지변이 아니라 인재"라며 "업체뿐만 아니라 행정당국의 과실 여부도 살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hs@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