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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갑질' 현대중공업 협력사 기술탈취 철퇴…경영진 국감 증인 소환되나

현대중공업의 하도급업체 상대 갑질이 도를 넘어섰다는 지적이다. 하도급업체의 기술을 탈취해 제3자에게 넘기는 형태의 기술유용행위가 발단이 됐다. 기술유용행위는 '갑질'의 대표사례다. 시장지배력을 앞세워 기술 자료를 넘겨줄 것을 요구하는 형태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납품 중단 카드를 꺼낸다. 현대중공업은 조선사업 관련 글로벌 1위 업체다. 중소기업인 하도급업체 입장에선 현대중공업의 요청을 거절하기란 쉽지 않다. 현대중공업은 그동안 협력사 및 하도급업체 상대 갑질 의혹을 받아왔다. 기술 뿐 아니라 대금 및 단가 인하 등 분야도 다양하다. 매번 문제가 될 때면 '상생' 카드를 꺼냈지만 별다른 효과는 거두지 못했다. 정치권 일각에선 현대중공업의 하청업체 및 협력사 상대 갑질 근절을 위해 총수 및 경영진을 2020년 국정감사(국감) 증인으로 채택한다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중공업 경영진이 국감 증인으로 채택될 경우 그간 밝혀지지 않았던 갑질 사례가 언급될 수 있는 만큼 기업 이미지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특히 2016년 11월 회사 분할 등을 통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에 나서며 최근 정기선 부회장 체제를 안착하고 있는 만큼 경영권 안정 및 기업경쟁력 강화를 위해선 하청업체 관련 갑질 문제의 근절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공정위, 과징금 9.7억 부과 '기술유용행위' 역대 최고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달 26일 현대중공업에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9억7000만원을 부과했다. 하도급업체의 핵심 기술을 강제로 빼낸 뒤, 십여년 이상 이어온 거래를 끊는 등의 갑질이 적발된 탓이다. 과징금 9억7000만원은 기술 탈취 관련 역대 최고 과징금액이다.

사실 기술유용 관련 갑질을 적발하기가 어렵고, 적발했다고 해도 피해규모 산출 등이 쉽지 않다. 하도급업체 관련 갑질 문제가 끊이질 않는 이유다.

4일 공정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은 지난 2000년 디젤엔진을 개발한 뒤 하도급업체 A사와 협력해 엔진에 사용할 피스톤을 국산화했다. A사는 독일 기업과 함께 세계 3대 피스톤 제조사로 꼽힐 정도의 기술력을 보유한 곳으로 해당 피스톤 국산화에 성공한 뒤 현대중공업에 단독 공급해왔다.

그런데 현대중공업은 2014년 비용 절감을 위해 A사 몰래 B사에 피스톤 공급을 위한 제작을 의뢰했다.

B사의 피스톤 제작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자 현대중공업은 A사에 "제품에 하자가 발생할 경우 대책을 수립하기 위해 필요하다"며 작업표준서, 공정순서와 공정관리 방안 등을 포함한 기술자료를 요구하면서 법정 서면도 교부하지 않았다. 대신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발주물량을 통제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모두 하도급법(하도급 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위반이다.

A사는 자료를 주지 않을 경우 피스톤 양산 승인을 취소하거나 발주 물량을 줄일 수 있는 점을 우려해 기술자료를 제공했다. 현대중공업의 피스톤 생산 이원화 추진 계획은 전혀 모르던 상황이었다.

현대중공업은 A사 기술자료를 B사에 제공해 2016년 피스톤 생산 이원화를 완료했고, A사에 피스톤 단가 인하 압력에 나섰다. A사는 거래를 지속하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요구를 수용했다. 단가는 3개월간 약 11% 인하됐고 A사의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57%, 579% 하락했다. 그러나 현대중공업은 단가 인하 요구 1년 뒤인 2017년 A사와의 거래를 일방적으로 끊고 B사로 거래처를 변경했다.

기술 탈취 등 갑질 논란이 제기됐고 현대중공업은 당시 "B사에 제공한 기술 자료는 당사가 제공한 사양을 재배열한 것에 불과하고 단순 양식 참조로 제공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공정위는 조사결과 B사의 자료에 A사의 기술이 포함돼 있다고 판단했다. B사가 작성한 자료에 A사가 작성한 것과 같은 오탈자 등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의 A사를 상대로 한 갑질 수위만 놓고 보면 검찰 고발 대상에 해당한다.

공정위는 이와 관련해 "(이번 사안에 대해 검찰 고발을 하지 않은 것은) 사안의 심각성이 낮아서가 아니라 이미 했기 때문에 하지 않은 것"이라면서 "(지난해 10월 고발하지 않았다면) 시정 명령과 과징금을 부과하고, 검찰 고발까지 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현대중공업 과징금은 역대 최대"라면서 "사업자에게 경각심을 줘 기술 자료 유용 행위 근절에 상당히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업계 일각에선 검찰 고발이 빠진 것과 9억7000억원의 과징금 부과를 두고 솜방망이 처벌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계속되는 갑질을 막기 위해선 정부차원의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문제가 될 때면 하도급업체와 협력사 간 상생안을 내놓고 있지만 변화된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현대중공업은 최근 공정위에 제재를 받은 사안 외에도 2016년 당시 현대중공업 건설장비사업부(현 현대건설기계)가 굴삭기의 전기회로를 구성하는 핵심부품 하네스의 단가를 낮추기 위해 기존업체의 도면을 다른 업체에 넘겨주다가 공정위에 적발된 바 있다. 기술유용 행위 외에 하도급법 관련 갑질 문제도 심각하다. 지난해 12월 수년간 하청업체에 단가 인하를 강요하고, 하도급 대금을 미리 알려 주지 않는 등의 갑질이 공정위에 적발, 208억원의 과징금을 부과 받았다.



▶송갑석 의원 "갑질 문제 낱낱이 밝힌다"

송갑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26일 현대중공업의 기술유용을 대기업의 대표적인 갑질 사례로 규정하고 향후 국정감사 소환을 통해 실태를 밝혀낸다는 계획이다. 송 의원은 2018년과 2019년 국감에서 현대중공업의 기술유용 문제를 꾸준히 제기하는 등 대기업의 하청업체 갑질 근절에 적극 나서왔다.

그는 "현대중공업의 기술탈취, 거래단절은 대기업의 대표적인 갑질 사례"라며 "최대 과징금 결정을 내린 공정위의 결정을 환영하고 21대 국회가 끝날 때까지 갑질 근절을 위한 제도정비와 법률지원 등 가능한 모든 조치를 지속적으로 강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대기업 총수와 경영진을 국감 증인으로 소환해 중소기업에 대한 부당한 갑질 실태를 낱낱이 밝혀내겠다"고 강조했다. 송 의원 외에도 일부 국회의원들은 현대중공업에 대한 과징금 규모가 적다며 향후 과징금 확대 등 대기업 기술탈취 방지 개선 방안을 마련할 것을 공정위에 요청하는 등 갑질 근절 대책 마련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중공업은 공정위의 기술유용 갑질 관련 제재와 관련해 일단 최대한 몸을 낮추고 있다. 경영진의 국감 증인 채택 관련 사안을 대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분위기다. 지난 3월 대표이사 직할 동반성장실을 신설한 이후 경영진이 사외 협력사를 방문하는 등 연말까지 협력사 간 상생 활동 알리기에 나섰다. 특히 공정위 제재는 억울하다는 입장을 우회적으로 내비치고 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공정위의 판단을 존중하지만 당사의 입장과 차이가 있어, 의결서를 받게 되면 검토 후 대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세형 기자 fax123@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