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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감독들은 '경질'되지 않는다

[스포츠조선 윤진만 기자]K리그가 개막한 지 채 석 달도 지나지 않아 세 명의 감독이 물러났다.

지난 6월 28일 인천 유나이티드 임완섭 감독을 시작으로 지난달 17일 수원 삼성 이임생 감독, 지난달 30일 FC서울 최용수 감독이 차례로 지휘봉을 내려놨다. 세 사령탑 모두 '성적부진에 따른 자진사퇴(resign)' 형식으로 작별했다. 구단 프런트와 감독의 관계, 팀 사정, 계약 조건 모두 제각각일 텐데 감독들이 하나같이 '책임을 통감해 스스로 물러났다'. '구단이 잘못에 대한 책임을 물어' 경질된(sacked) 지도자는 없다.

7월 말 막을 내린 2019~2020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를 돌아보면, 7명의 감독이 모두 성적부진에 따라 경질됐다. 그 이전 시즌, 그 이전 시즌도 그랬다. 시즌 중 경질이 아닌 방식으로 물러나는 형태는 '상호합의 하에 계약해지(mutual consent)' 정도가 있다. 감독들은 보통 계약기간이 남은 상태에서 시즌이 종료됐을 때야 사퇴 결단을 내린다. 시즌 초반 팀의 부진을 막지 못한 감독이 스스로 물러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럼 K리그에선 왜 그럴까.

베테랑 지도자, K리그 구단 프런트 등 다양한 분야의 관계자를 취재해본 결과, 공통으로 나온 키워드는 '예우'와 '돈'이다. 경질과 사퇴가 주는 어감 차이는 크다. 경질은 '쫓겨났다'는 뉘앙스를 강하게 풍긴다. 여론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구단은 시즌 중 감독을 경질하는 것에 부담을 느낀다. 경질 후 불어닥칠 후폭풍을 고려할 때 감독이 압박에 못 이겨 스스로 그만두는 그림이 더 낫다고 판단할 수 있다. 여기엔 동고동락한 감독에 대한 예우도 담겨 있다. 소위 '쫓겨난 감독'은 팀수가 제한적인 K리그 내에서 재취업하기가 쉽지 않다는 인식이 강하다.

돈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감독이 구단과 체결한 계약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의 경우, 경질은 잔여연봉을 모두 지불한다고 인식된다. 반면 사퇴는 '남은 연봉을 어느정도 받을 수 있다면 물러나겠다'는 식의 협상 여지를 남겨둔다. 지도자가 경질보단 사퇴를 선호하는 이유다.

구단 입장에서 보면, 과감한 경질로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선택도 나쁘지 않지만, 구조적으로 그렇게 하기 어렵다. K리그에는 로만 아브라히모비치(첼시 구단주)나 셰이크 만수르(맨시티 구단주)가 없다. 구단은 모기업 또는 지방자치단체에서 내려주는 돈에 의존한다. 그 운영비를 알뜰살뜰 써야 한다. 구단 수뇌부가 감독 거취 관련 보고서를 들고 '윗선'을 찾는다고 가정해보자. 운영비와 구단 이미지를 고려한 '합리적인 방안'이 보고서에 담겼을 가능성이 더 높지 않을까 싶다.

구단이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사이, 팀은 더 큰 어려움에 처하곤 한다. 올시즌만 봐도 시즌 도중 감독을 교체한 세 팀은 14라운드 현재 최하위권에서 허덕이고 있다. 수원(승점 13점·13골), 서울(승점 13점·12골), 인천(승점 5점)순이다. 감독은 떠나면 그만이지만, 강등이라도 당할 경우 그 책임은 오롯이 구단이 져야 한다. 윤진만 기자 yoonjin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