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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은 사람만 있고 때린 사람은 없다?' 故최숙현사건 폭력 의혹 감독X선수'사죄할 일 없다'[국회상임委 현장리포트]

"안타까운 마음은 있지만 사과할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지난달 26일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철인3종 유망주' 고 최숙현 선수에게 폭행과 폭언을 한 가해자로 지목된 경주시청 감독과 선수 2명이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이들은 6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트라이애슬론 선수 가혹행위 및 체육 분야 인권 침해 관련 긴급 현안 질의에 증인으로 참석했다. 이날 문체위에는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최윤희 제2차관,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을 비롯한 체육계 수장들과 경북체육회, 경주시청, 부산시청 등 고인이 몸 담았던 소속팀 관계자들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고 최숙현 선수의 죽음을 세상에 처음으로 알린 이 용 의원측은 이날 오전 최 선수의 동료 2명과 기자회견을 한 후 문체위 회의에 함께 나섰다. 피해를 주장하는 옛 제자, 옛 동료인 선수들이 보는 앞에서 가해자로 지목된 경주시청 감독과 2명의 선수에게 직접 질의했다. 폭행, 폭언 사실이 있느냐는 질문에 김 모 경주시청 감독은 "그런 적 없다. 감독으로서 선수가 폭행당한 것을 몰랐던 부분의 잘못은 인정한다"면서 선수에 대한 관리 감독이 소홀했던 점에 대한 책임만을 인정했다. 8명의 선수가 핵심 가해자로 지목하고 있는 여자선수 A씨 역시 "폭행한 적이 없다"고 답했고, 남자선수 B씨도 해당 혐의를 강력히 부인했다.

이 용 의원이 "고인에게 지금이라도 사죄할 마음이 있느냐"는 질문에 김 감독과 두 선수는 한목소리로 "마음이 아프다. 안타까운 마음은 있지만 사과할 일은 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들의 한결같은 답변에 폭력 피해를 주장하는 선수와 가족들이 눈물을 훔쳤다. 이 의원은 "폭행 사실도 없고, 잘못한 것도 없고, 사과할 마음도 없는데 여기 왜 왔느냐. 어떻게 그렇게 당당하냐. 선수가 죽었다. 가족들이 울고 있다. 어떻게 함께 운동해온 동료, 감독이 이럴 수 있느냐"며 울분을 터뜨렸다. "의원 생명을 걸고 반드시 끝까지 진실을 밝히겠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김 감독은 소위 '팀닥터'라 불린 운동처방사 C씨의 고 최 선수의 폭행 사실에 대해서만 "맞다"고 인정했다. "퍽퍽 소리를 듣고 알았다. 폭행하는 상황에서 나는 남자선수들과 함께 허리를 잡으며 말렸다. 가슴을 때리는 것을 봤다. 소리가 크게 났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자격이 불분명한 일명 '팀닥터'를 영입한 데 대해 "경산의 한 병원에서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격'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2019년 12월에 선수들이 이야기해서 팀닥터의 폭행 사실을 알게 됐다"고 답했다. "그 부분에 있어 관리 감독 소홀의 책임은 인정한다"고 말했다.

'우생순 신화'의 주인공, 핸드볼 스타 출신 임오경 의원은 "고 최 선수가 2월 6일 경주시체육회에 진정서를 냈는데, 정해진 14일 이내에 민원을 해결하지 못했다"며 "철인3종 팀 해체를 대책으로 내놨는데, 해체가 아니라 선수들에게 더욱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줘야 하는 것이 체육회의 역할 아니냐"고 몰아붙였다. 이어 4월 8일 선수의 신고를 접수한 대한체육회 클린스포츠센터도 강하게 압박했다. "클린스포츠센터와 선수의 마지막 통화 내용을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엄마의 마음으로 이 문제를 보고 있다. 너무 가슴이 아프다"며 질의중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이날 상임위 현장에선 오전 기자회견에 나선 최 선수의 동료 2명의 증언과 의혹에 대한 확인도 있었다. 경주시청 출신 선수 2명은 이날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은 감독과 특정 선수만의 왕국이었으며, 폐쇄적이고 은밀하게 상습적인 폭력과 폭언이 당연시돼 있었다"고 했다. 고인이 고소장에서 언급한 이른바 '식고문'의 정황을 소상히 증언했다. "2016년 8월 점심에 콜라를 한 잔 먹어서 체중이 불었다는 이유로 빵을 20만 원치 사와 숙현이와 함께 새벽까지 먹고 토하게 만들고 또 먹고 토하도록 시켰다. 견과류를 먹었다는 이유로 견과류 통으로 머리를 때리고 벽으로 밀치더니 뺨과 가슴을 때려, 다시는 안 먹겠다고 싹싹 빌었다. 2019년 3월에는 복숭아를 먹고 살이 쪘다는 이유로 술자리에 불려가 맞았는데, 이미 숙현이는 맞으면서 잘못했다고 눈물을 흘리며 빌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김 감독은 이 부분이 사실이냐는 의원들의 질문에 모두 "사실이 아니다"라고 강하게 부인했다.

박양우 문체부 장관은 "고 최숙현 선수의 유족과 선수들, 국민께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면서 "특별조사단을 구성해 철저한 조사는 물론 8월 5일 스포츠윤리센터를 출범하고, 기존 시스템의 작동 문제를 확인해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 역시 "참담한 심정이다. 죄송하다. 철저히 조사하고 지도자들을 잘 교육하겠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가해자로 지목받은 이들은 향후 법적 공방을 의식한 탓인지 하나같이 "가슴은 아프지만, 사죄할 뜻은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도종환 문체위원장은 '고 최숙현 사건 조사단장'을 맡은 최윤희 문체부 제2차관에게 "선수들은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말한다. 감독은 하나도 잘못한 게 없다고 한다. 문체부는 '무자격 팀닥터'의 폭력을 왜 감독은 방조했는지, 어떻게 저런 비정상적인 팀 운영이 가능했는지, 선수의 신고에 왜 체육회는 통화만 하고 지나쳤는지 철저히 조사해달라.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청문회를 통해 진상 규명을 하겠다"고 말했다.

꽃다운 나이의 선수가 어느 날 갑자기 죽음에 이르렀는데 책임 지는 사람은 하나 없는 상황, 한 의원의 말이 폐부를 찔렀다. "피해자는 많은데 가해자는 한 명도 없다. 맞은 사람은 있는데, 때린 사람이 없다."

여의도(국회)=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