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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마]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명마 이야기-한국경마를 빛낸 스타말

한 종편 채널에서 방송하는 '슈가맨'이라는 프로그램은 지금은 방송가에서 사라졌지만 한 때를 풍미했던 추억의 가수들을 소환하여 큰 반향을 일으켰다. '태사자' '양준일' 등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슈가맨'이란 타이틀은 2013년 제8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상을 받은 다큐멘터리 영화 '서칭 포 슈가맨'에서 유래한다. 1970년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슈퍼스타였으나 정작 고향인 미국에서는 별로 인기가 없었던 가수 '식스토 로드리게스'의 삶을 재조명하는 영화다. 슈가맨처럼 과거의 스타들을 재조명하는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면서 스포츠 분야에서도 역대 월드컵 예선전처럼 과거 명승부를 찾아보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에이원과 포경선, 뚝섬 경마장의 향수를 자극하는 이름

생생한 경주를 못 본지 벌써 몇 주를 지나고 있는 경마계에서도 온라인으로 과거 스타말을 추억하는 팬들이 점점 늘고 있다. 특히 5070 올드팬들은 일명 '뚝섬시절'로 불리는 1970~1980년대 추억의 명마들을 기억한다. 대표적인 명마가 '에이원'과 '포경선'이라는 말이다.

'에이원'은 1969년 호주에서 도입된 갈색의 암말로, 뚝섬 경마장에서 1974년까지 6년간 72승이라는 공전의 기록을 세웠다. 비공식으로는 25연승이라는 최고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전산화가 이루어지지 못했던 때, 모든 기록을 수해로 잃는 바람에 기록을 인정받지 못한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 명마 '에이원'. 1971년 5월 24일 경향신문 기사에 의하면 전주 토요일 11경주에 팔린 마권 350만원 중 340만원이 베팅될 정도로 '에이원'은 적수가 없었던 전설적 존재다. 10여 년 전부터 그녀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있는 마사회 관계자는 '에이원'의 이름과 분필로 적힌 배당판 사진 등은 남아있지만 정작 '에이원'의 실물 사진을 찾을 수 없어 안타깝다고 전했다.

인터뷰 자료에 의하면 박진호 기수가 에이원과 20차례 호흡을 맞추었는데 단 한번도 1등을 놓친 적이 없다고 회고했다. 조후구 기수는 다른 1군의 말들이 '에이원'과 함께 편성되기를 꺼려해서 4군마들로 구성된 경주에서 다른 말들이 모두 출발한 후 100m쯤 앞서갈 때 뒤늦게 출발하는 말도 안 되는 일도 있었다고 전한다. '부담중량'에 '부담거리'까지 있었다니 '세상에 이런 일이'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다.

▶믿기 어려운 부담중량 68㎏ '포경선', 과천의 스타말 등장, '차돌'과 '대견'

1980년대에는 명마 '포경선'이 등장한다. 1983년 뉴질랜드에서 도입된 포경선은 밤색의 거세마로 통산 25전 20승 중 그랑프리를 2연패했고, 1985년부터 1987년 사이 달성한 15연승은 무려 24년간이나 깨지 못할 만큼 대단한 기록이었다. 상대할 말이 없어 무려 68㎏의 부담중량을 지고 출전했음에도 우승했던 '포경선'은 이름만큼이나 강렬한 이미지로 경마팬들을 사로잡았다.

1989년 뚝섬시대가 막을 내리고 경마장이 과천으로 이전하면서 새로운 스타말들이 등장했다. 먼저 1987년부터 1994년까지 무려 8년간 경주로를 달렸던 경주마 '차돌'이 있다. 520㎏의 거구를 자랑했던 '차돌'은 등장하자마자 첫해에만 12전 8승을 올리며 두각을 나타냈는데 언제인가부터 경주 중 펜스 쪽으로 파고드는 나쁜 습관으로 슬럼프를 겪었다. 그런데 천우신조의 기회가 생긴다.

1989년 여름 때 마침 경마장이 이전하며 진로 방향이 반대로 바뀐 것이다. 그 해 파죽지세로 달린 '차돌'은 그랑프리를 비롯해 대상경주를 3개나 휩쓸었다. 지금은 26개의 대상경주가 있지만 당시는 연 7회밖에 없었던 시절이기에 더 대단한 기록이라 할 수 있다.

뒤를 이어 등장한 경주마 '대견'도 한국경마계를 빛낸 스타 중 하나다. 1993년 데뷔해 2001년까지 무려 9년 동안 통산 49전 29승이라는 우수한 성적으로 경마팬의 뇌리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다른 말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맞추기 위해 60~64㎏의 부담중량을 받아야 할 정도로 월등한 능력을 소유했던 대견은 6세 때인 1995년 그랑프리 경주에서 우승도 차지했다. 여러 번의 부상으로 잦은 휴양과 복귀를 반복했지만 오뚝이처럼 다시 경주로에 돌아온 대견은 경주마로는 사람으로 치면 환갑이 넘는다는 12세까지 활약했다.

▶국내산 경주마로 그랑프리를 제패한 '새강자'

이 외에도 '가속도' '신세대' 등 많은 경주마들이 한국경마사에 한 획을 그었지만 1990년대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새강자'를 빼놓을 수 없다. 1996년 태어난 국산마 '새강자'는 외환위기로 국내 경기가 많이 위축된 1999년 그랑프리 경주에서 외산마들을 따돌리고 국산마 최초로 우승을 차지하며 국내 경마팬에게 큰 기쁨을 주었다. 국산마와 외산마의 동등한 경쟁 가능성을 처음 확인했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 또 경주마로서는 노령인 9세에 출전해서우승을 차지할 정도로 오랜 시간 주로의 강자로 군림했기에 이름 값을 톡톡히 해낸 명마 중의 명마라 부를 만하다.

이렇게 스타말의 존재가 한국경마 100여 년의 역사를 옹골지게 채워왔다. 이들의 선전 덕분에 이후 국내산 3관마 '제이에스홀드', 17연승이라는 신기록을 세운 '미스터파크', 대통령배 4연패에 빛나는 '트리플나인' 등 수없이 많은 명마들을 계속해서 만날 수 있었다. 또한 세계로 뻗어나가는 지금의 '돌콩', '블루치퍼', '문학치프' 등 떠오르는 명마들로 역사는 이어지고 있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