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um App

Experience a richer experience on our mobile app!

'불혹의 깎신'주세혁, 클래스는 영원하다[종합탁구선수권]

[스포츠조선 전영지 기자]"주쌤은 정말 대단해요. 마흔의 나이도 그렇지만, 1년 넘게 쉬고 나서 저런 플레이를 보여준다는 게…."

8일 오후 춘천 호반체육관에서 펼쳐진 제73회 고진모터스 전국남녀종합탁구선수권, '열일곱 살 에이스' 조대성(대광고)이 대선배이자 한때 개인코치였던 불혹의 주세혁(한국마사회) 경기를 지켜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자타공인 세계 최고 수비전형 에이스인 주세혁은 명실상부 대한민국 탁구의 레전드다. 2003년 파리세계선수권에서 수비 전형 최초로 남자단식에서 준우승 한 후 2012년 런던올림픽 은메달까지 한국 남자탁구의 전성기를 이어왔다. 2016년 리우올림픽까지 대표팀 후배들을 이끌고 '징검다리' 역할을 하며 헌신했던 주세혁은 2017년 은퇴 후 삼성생명 여자팀 코치로 일하다 올해초 다시 현역선수로 돌아왔다. 지난 4월 창단한 한국마사회 유니폼을 입었다. 나이와 공백이 무색했다. 특유의 깊은 커트와 날선 드라이브 한방은 그대로였다.

주세혁은 이번 대회 후배들을 줄줄이 제치고 개인단식 4강에 올랐다. 톱랭커 장우진(미래에셋 대우)과의 맞대결에서 0대3으로 패하며 아쉽게 결승행은 놓쳤지만, 20대 후배들을 보란 듯이 돌려세우는 '깎신'의 경지는 경이로웠다. 무엇보다 '맏형'의 책임감은 묵직했다. 주세혁은 "신생팀의 사정상 제가 뭐라도 해야 한다. 결과를 만들어내려면 먼저 희생하고 헌신해야 한다"고 했다. 주세혁은 단체전, 개인단식, 복식, 혼합복식까지 전종목을 다 뛰었고, 2종목에서 4강 이상의 성적을 거두며 솔선수범했다.

8일 KGC인삼공사와의 단체전 4강에서 주세혁은 제1단식 주자로 나섰다. 상대 에이스 임종훈을 3대0으로 꺾으며 기선을 제압했고 게임스코어 3대0 완승으로 결승행을 이끌었다. 9일 결승에서도 주세혁의 마사회는 '초호화군단' 삼성생명을 상대로 분투했다. '맏형' 주세혁의 강인한 정신력이 정상은, 백광일, 박찬혁 등 후배들에게도 그대로 이어졌다. 이상수, 조승민, 박강현, 안재현이 '국대'들이 즐비한 삼성생명을 상대로 누구도 예상치 못한 풀세트 접전을 펼쳤다. 게임스코어 2대3으로 패했지만 선수층 엷은 신생팀으로는 보기드문 쾌거였다. 올시즌 최영일 감독이 이끄는 한국마사회는 대통령기에서 우승했고, 실업연맹전과 실업리그에서 3위에 올랐다. 한시즌 농사를 마무리하는 전통과 권위의 종합탁구선수권에서 준우승하며 언더독의 반란을 이어갔다. 주세혁은 '맏형의 공로'를 언급하자 손사래쳤다. "정상은, 박찬혁, 백광일 등 후배들이 150% 이상을 해줬다. 최영일 감독님, 현정화 감독님이 정말 편하게 해주셨다. 선수들 스스로 자기주도적으로 탁구를 한 것이 선전의 비결"이라고 밝혔다.

한국나이 마흔 살, '돌아온 에이스' 주세혁은 "뿌듯한 것도 있지만 미안한 것도 있다. 어린 후배들이 저한테 지게 되면 상실감이 크다. 기죽는 경우도 생긴다"고 솔직한 심경을 전했다. "후배들이 더 팍팍 치고 올라와야 하는데…"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애제자이자 후배인 조대성의 궁금증, 1년여의 공백 후에도 변함없는 기량을 유지하는 이유를 묻자 당연하다는 듯 "원래 쉬면 더 잘된다"고 답했다. "야구, 축구선수들도 재활하고 돌아와서 다시 잘하지 않나. '쉬면 안된다'는 것은 편견이다. 불안해서 그런 거지 기술은 절대 도망가지 않는다"고 했다. 클래스는 영원하다. 복귀 후 혹독한 두세 달 적응기를 거친 후 예전 기량이 살아났다. "처음 몇 달은 공이 너무 빨리 와서 못받겠더라. 다리가 마음처럼 잘 안움직였다. 그런데 두세 달 경기를 하다보니 저절로 컨디션이 올라왔다." 'K리그 1강' 전북 현대에서 마흔의 나이에 변함없는 기량을 선보이고 있는 이동국의 활약상을 언급하자 주세혁은 "잘 알고 있다"며 반색했다. 타고난 재능과 재능을 뛰어넘는 노력, 세월을 거스르는 베테랑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주깎신' 역시 "공이 가는 길이 보이고, 수가 보이고, 상대 심리가 보인다"고 했다.

돌아온 녹색 테이블에서 후배들과 함께 땀흘리는 삶은 그 어느 때보다 만족스럽고 자유롭고 행복하다. 어떤 것에도 미혹되지 않는 나이, '불혹의 깎신'은 이제 즐기는 경지에 올라 있었다. "지금처럼 아프지 않고, 후배들과 재미있게 건강하게 탁구를 즐기고 싶다"며 활짝 웃었다. 올 한해를 마무리하는 대회, '깎신'이 남긴 마지막 한마디가 귓전에 맴돌았다. "인조이 라이프, 헬시 테이블테니스(Enjoy life, Healthy Table tennis)." 춘천=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