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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신태용 감독, 첫 태극마크 '달콤살벌' 기억(U-17월드컵)

[스포츠조선 김가을 기자] "캐나다에서 열렸던 대회 말하는 것 맞죠. 그걸 어떻게 잊어요."

신태용 전 대한민국 A대표팀 감독이 눈빛을 반짝거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얼굴에는 아련한 미소가 번져 흘렀다.

어느덧 30년도 훌쩍 흐른 지난 1987년 7월의 이야기. 하지만 신 감독은 지금도 그때의 기억이 생생한 듯 했다. 신 감독은 김삼락 감독이 이끄는 한국 17세 이하(U-17) 대표팀에 선발돼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았다. 태극기를 가슴에 단 신 감독은 캐나다로 건너가 제2회 국제축구연맹(FIFA) U-17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에 출전했다. 한국 U-17 대표팀의 첫 월드컵 도전이자 신 감독 생애 첫 메이저 대회였다. 신 감독에게 1987년 여름이 특별하게 기억되는건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달콤살벌했던 첫 메이저 대회의 추억

"내가 먼저 질문해도 될까요."

신 감독이 인터뷰 시작 전에 '선공'을 날렸다. 그는 "나는 1969년생이에요. 그런데 프로필을 보면 1970년생으로 돼 있죠. 왜 그렇게 됐는지 아세요?"라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내가 1970년생이 된 건 다 1987년 캐나다 대회 때문이에요. 지금은 연령별 제한을 1월1일로 둬요. 하지만 당시에는 대회가 열리는 시점을 기준으로 '만 나이'를 따졌어요. 캐나다 대회는 7월에 열렸는데, 나는 생일이 빨랐거든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한 살을 미뤄서 대회에 나갔죠"라고 설명했다. 대한축구협회의 공식 프로필에 따르면 신 감독은 1970년생으로 돼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1969년 4월생이다.

캐나다로 가는 길부터 험난했던 신 감독. 현장에서는 더욱 파란만장했다. 그는 "미국을 경유해서 캐나다에 들어간 것 같은데, 솔직히 결전지까지 어떻게 갔는지 기억나지 않아요. 그만큼 힘들게 갔어요. 스태프도 5명인가 밖에 가지 않았고요. 지금과 비교하면 많이 열악하지만, 벌써 30년 전 얘기잖아요"라며 입을 뗐다.

산 넘고 강 건너 도착한 캐나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들을 기다리는 교민이 있었다. 신 감독은 "우리가 경기를 치렀던 캐나다 세인트존에 교민이 한 분 살고 계셨어요. 태권도 사범님이셨던 것 같은데, 그분께서 우리를 많이 챙겨주셨어요. 한국 음식도 보내주시고 응원도 많이 해주셨죠"라며 슬며시 미소지었다.

'일당 만'의 응원을 받으며 치른 첫 경기. 상대는 코트디부와르였다. 한국은 경기 시작 9분 만에 상대에 선제골을 내주며 끌려갔다. 패배 위기 속에서 팀을 구한 것은 다름아닌 신 감독의 발끝이었다. 그는 후반 13분 천금 동점골을 꽂아 넣었다. 한국은 1대1 무승부를 기록하며 U-17 월드컵에서 첫 승점을 기록했다.

신 감독의 활약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미국과의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역전승의 발판을 마련하는 동점골을 기록했다. 신 감독의 활약을 앞세워 미국을 4대2로 제압한 한국은 조별리그를 1승1무1패로 마감, 8강에 올랐다. U-17 월드컵 첫 출전에 쓴 기록이었다. 비록 한국은 8강에서 이탈리아에 패하며 도전을 마감했다. 하지만 신 감독은 첫 태극마크, 첫 메이저대회에서 자신의 기량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눈도장을 찍었다.

신 감독은 "우리는 U-17 월드컵 전까지 외국팀과 겨룰 기회가 많지 않았어요. 그래서 경기장에 들어갔을 때 기가 많이 죽었었죠. 우리 눈으로 봤을 때 상대는 20대인 것처럼 키도 크고 몸집도 컸으니까요. 게다가 세인트존 경기장은 바다 근처에 있었어요. 안개가 어찌나 심한지 바로 앞에 있는 상대 선수가 보이지 않을 정도였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다 펼쳐보이지 못한 게 좀 아쉬움으로 남네요"라며 허허 웃었다.

▶충전완료, 다시 걸어가고픈 현장지도자의 길

30년 전 한국 U-17 대표팀에 첫 골을 선물했던 신 감독. 그는 한국을 대표하는 지도자로 거듭났다. 2016년 리우올림픽, 2017년 20세 이하(U-20) 월드컵, 2018년 러시아월드컵 감독으로 메이저 대회를 섭렵했다. 현재는 그라운드에서 한 발 물러서 축구를 보고 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매력적인 지도자다. 태국 대표팀, 중국 슈퍼리그 소속 클럽팀 등에서 꾸준히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그는 "내가 '어느 팀 감독으로 간다'는 소문은 많은데 결정된 것은 없어요. 확실한건 요즘 예능 출연 섭외가 많다는 거에요. 허 재 전 농구대표팀 감독은 정글에 가자고 하고, 안정환도 계속 연락이 오더라고요. 하지만 제가 갈 길은 한 가지에요. 현장 지도자"라며 목소리에 힘을 줬다.

신 감독은 "3년 동안 메이저 대회를 경험했어요. A대표팀 감독을 그만 둔 뒤에도 꾸준히 축구를 보고 있어요. 그때마다 느끼는 것이, 요즘 선수들은 유럽이나 아프리카팀을 만나도 기죽는 게 없더라고요"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에 U-17 월드컵에 나가는 선수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대회를 앞두고 해외에서 친선경기도 많이 한 걸로 알고 있어요. 그동안 준비했던 것을 자신있게 하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U-17 대회는 내 인생 첫 대회에요. 그때의 골과 추억을 잊을 수 없거든요. 선수들도 잘 하고 왔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저 역시도 충전을 많이 했으니 다시 현장으로 복귀해 내 몸에 축적된 노하우를 발산시키고 싶어요"라며 미소 지었다.

한편, 신 감독은 우리나라 11세 이하(U-11) 어린이들 13명을 뽑아 영국으로 건너간다. 그는 영국에서 뉴캐슬, 리버풀, 아스널 U-11팀과의 8대8 경기를 지도할 예정이다.

김가을 기자 epi17@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