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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실점률(0.77)로 조현우 앞지른 노동건 '올해엔 시상식 가야죠'

[스포츠조선 윤진만 기자]'전성기가 언제였나요?' 유명 농구만화에 나오는 명대사다. 수원 삼성 수문장 노동건(28)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진다면, 아마 '지금'이라고 답할 것 같다. '지옥에서 돌아온 골키퍼'는 한 뼘, 아니 두세 뼘은 성장한 듯한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기록이 이를 증명한다. 노동건은 15일 성남FC 원정으로 열린 2019년 하나원큐 K리그1 29라운드에서 시즌 11번째 무실점 경기를 하며 실점률을 0.81에서 0.77(22경기 17실점)로 낮췄다. 최소 15경기 출전을 기준으로, 0.7점대 방어율을 자랑하는 골키퍼는 노동건밖에 없다. 현존 K리그 'NO.1'으로 손꼽히는 조현우(28·대구)도 실점률에서 노동건에 미치지 못한다. 29경기에서 24골을 내줘 실점률 0.83(전체 2위)을 기록 중이다. 클린시트 부문에선 조현우가 12경기로 1위, 노동건이 1경기 차이로 2위다.

국가대표 프리미엄과 인지도 등을 따지지 않고 올시즌 순수 기록만 놓고 보면, 노동건의 활약은 조현우 그 이상이다. 경기당 선방 횟수에서 노동건이 3.23개로 2.90개를 기록한 조현우를 앞지른다. 실점당 선방 횟수는 4.18개로, 이 부문 단독 1위다. 조현우는 3.50개. 수원이 팀 최소실점 5위(34실점)에 머문 건 암흑기였던 시즌 초반 내준 많은 골들 때문이다. 노동건이 다시 골문을 지키기 시작한 뒤로는 골문에 안정감이 늘어났다는 평가다. 수원 이임생 감독은 "노동건의 선방은 수비수들이 자신감을 가지는 데 도움을 준다"고 엄지를 세웠다.

시쳇말로 '하드캐리' 중인 노동건에게 직접 물었다. 지난 시즌까지 76경기에 출전해 119골(1.57골)을 내준 골키퍼가 어떻게 실점률을 절반 이상 줄일 수 있었는지를. 노동건은 16일 '스포츠조선'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작년부터 자신감이 계속 쌓였고, 축구에 대한 재미를 느끼기 시작한 것 같다"며 "세이브를 한 뒤에도 흥분하지 않고 경기가 끝날 때까지 집중하는 능력이 예전보다 나아졌다고 생각한다"고 자평했다. 평상시 생활을 할 때도 들뜨지 않은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골키퍼에 눈을 떴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 그는 "골키퍼가 공격수와 같이 화끈한 포지션이 아니란 걸 알게 됐다. 궂은 일을 도맡아 하면 선수들이 먼저 알아주고, 그다음 팬들이 알아준다"면서 "어느덧 팀내 중고참이 되면서 수비수들에게 편안하게 말을 할 수 있는 위치가 됐다. 미팅 때에도 대화를 많이 한다. 그 덕에 수비진의 도움을 많이 받아 0.7점대 실점률과 같은 좋은 기록이 나온 것 같다"고 했다.

필자가 '0.77'이란 숫자를 언급하기 전, 노동건은 이미 자신의 기록을 상세히 알고 있었다. 그는 "(정)성룡이 형이 J리그에서 실점률 1위를 했다는 기사를 본 뒤로 나도 한 번 나 자신과 싸움을 해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프로 데뷔 후 0점대 실점률을 해본 적이 없다. 기록을 세워 친구이자 현재 K리그 탑 골키퍼인 조현우와의 싸움에서도 이기고 싶다는 욕심이 난다"고 했다.

사실, 청소년 대표 시절과 고등-대학 무대에선 노동건이 'NO.1'이었다. 하지만 조현우가 2018년 러시아월드컵 전후로 실력이 일취월장하는 사이, 노동건은 정성룡, 신화용 등 선배 골키퍼에 가려 출전 기회를 잡지 못했다. 출전을 하더라도 호평을 받는 일은 드물었다. 2017년에는 포항 스틸러스로 임대를 떠나기도 했다. 2014년 수원에 입단한 그의 커리어는 예상과 달리 꼬이고 또 꼬였다.

노동건은 "한 팬분께서 '지옥에서 돌아온 골키퍼'라고 하시더라. 고생 좀 했다. 이운재 코치님과 정성룡 형으로 대표되는 '수원 골키퍼'의 부담을 이기지 못한 게 사실이다. 올시즌을 앞두고 통진고와 청소년 대표 시절 달았던 19번을 요청했다. 19번을 달았을 때 성적이 좋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진 19번이 또 한 번 행운을 가져다주는 것 같다"며 웃었다.

노동건은 올시즌 팀과 개인 타이틀을 모두 욕심내고 있다. 수원의 상위 스플릿 진출과 통산 5번째 FA컵 우승을 뒷받침하면서 데뷔 후 처음으로 K리그 연말 시상식에 참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는 "작년에 홍 철이 형이 시상식에 (수원 선수로는)혼자 다녀와 외롭다고 하더라. 올해에는 그 옆자리에 앉고 싶다"고 의지를 내비쳤다. 단순히 시상식 참가에 그치는 게 아니라 베스트일레븐에 포함되기 위해선 '친구'를 넘어야 한다. 노동건은 "현우는 청대시절 라이벌이었는데, 지금은 (폼이)많이 올라왔다. 이제는 내가 따라가는 입장"이라며 겸손한 자세로 경쟁에 임하겠다고 밝혔다.

윤진만 기자 yoonjin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