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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 국감 예상질문까지 기업에 넘긴 환경부 공무원

검찰의 가습기 살균제 재수사 과정에서 환경부 서기관이 국정감사 예상 질의응답 자료까지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기업에 넘긴 사례가 확인돼 파문이 일었다.
이 공무원은 검찰의 가습기 살균제 재수사가 임박하자 "관련 자료를 철저히 삭제하라"고 기업에 귀띔해주기까지 한 것으로 조사됐다.
환경부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 주무 부처인데, 이 부처에서 구제를 담당했던 공무원이 기업과 유착돼 있었던 셈이다.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권순정 부장검사)는 환경부 서기관 최모(44) 씨를 수뢰후부정처사, 공무상 비밀누설, 증거인멸 교사 혐의로 지난 22일 불구속기소 했다고 23일 밝혔다.
최 서기관은 2016년 가습기 살균제 사태 대응 태스크포스(TF)에 들어가 올 초까지 피해구제 업무를 맡았다. 환경부는 지난 2월 그를 환경피해구제과장으로 발령했다가 3개월 만인 지난 5월 산하 지방청으로 전보했다. 현재 대기 발령 상태다.
최 서기관은 2017년부터 수백만 원 상당의 선물과 금품, 향응 등을 받고 클로로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CMIT)·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MIT) 물질이 함유된 가습기 살균제 건강 영향 평가 결과 보고서 등 환경부 각종 내부 자료를 애경산업에 넘긴 혐의를 받는다.
여기에 더해 국정감사에 대비해 환경부가 작성한 가습기 살균제 관련 예상 질의응답 자료, 답변 방향까지 사전에 애경산업에 제공한 것으로 조사됐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가 민감한 주제였던 시점에 기업이 국감에 대비할 수 있도록 도운 것이다.
2018년 11월에는 애경산업 직원에게 검찰 수사가 개시될 것으로 보이니 압수수색에 대비해 가습기 살균제 자료를 삭제하라고도 알려준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최 서기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은 증거가 이미 수집돼 있고 밝혀진 뇌물 액수가 수백만 원 정도인 점을 고려해 구속영장을 기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서기관은 애경 외에 SK케미칼과도 만나 환경부 문건을 넘긴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넘겼다는 증거가 남아있는 문건은 모두 외부에 공개된 자료라 검찰은 SK 측과의 접촉을 최 서기관의 공소사실에 포함하지는 못했다.
검찰 관계자는 "3∼5년에 걸쳐 SK케미칼 내 자료가 인멸된 부분이 있어 수사에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은 최 서기관 사례를 '한 개인의 일탈'로 치부할 게 아니라 환경부와 기업의 유착 관계를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일부 피해자들은 "그간 가습기 살균제 참사의 원흉인 SK케미칼과 애경산업이 미꾸라지 같이 빠져나가 처벌받지 않았는데 그 이유를 이제야 알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김기태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 공동운영위원장은 "서기관 한 명을 끝으로 환경부와 기업의 유착 관계 수사가 끝난 것은 아쉬운 점"이라며 "압수수색을 통해 환경부에 대한 수사를 더 강도 높게 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피해를 입증할 책임이 전환되지 않으니 가해 기업은 팔짱을 낀 상황에서 피해자나 환경부가 피해를 입증해야 한다"며 "제2, 제3의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징벌적 손해배상과 입증 책임 전환, 집단소송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등 4가지 법안이 통과돼야 한다"고 말했다.
chopark@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