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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스토리]경남은 거상이다

[스포츠조선 박찬준 기자]전북 현대는 여러모로 레알 마드리드를 떠올리게 한다.

최고의 인프라를 갖춘 것은 물론, 절대 왕좌 자리를 놓치 않는 모습이 닮았다. 당연히 최고의 선수들이 모두 모여 있다. 선수들 역시 꿈의 클럽으로 여긴다. 또 하나 공통점이 있다. 원하는 선수는 반드시 데려온다는 점이다. 막강한 자금력, 그리고 최고의 클럽이라는 브랜드를 갖고 있는 전북과 레알 마드리드는 돈과 명예를 앞세워 점찍은 선수를 모두 영입했다.

지난 며칠간 K리그는 제리치 영입전으로 떠들썩 했다. 지난 시즌 득점 2위에 올랐지만, 올 시즌 강원에서 입지가 줄어든 제리치는 김신욱의 갑작스러운 상하이 선화 이적으로 금값이 됐다. 큰 사이즈에 득점력을 갖춘 제리치는 김신욱의 완벽한 대체자로 보였다. 당초 해외 리그 선수를 데려오려고 했던 전북은 적응 기간이 필요없고, 검증된 제리치에 올인했다. 모두가 제리치의 전북행을 예상했다. 심지어 경험 많은 에이전트들 조차 9일 밤까지 제리치가 전북 유니폼을 입을 것이라 단언했다.

하지만 최종 승자는 놀랍게도 경남이었다. 경남과 강원은 10일 오전 제리치 이적에 관한 최종 합의서를 교환했다. 경남의 발빠른 행보가 만들어낸 작은 반란이었다. 올 시즌 부진에 빠진 경남은 후반기 반등을 위한 리빌딩을 준비했다. 결론은 빌드업 축구를 포기하고, 지난 시즌처럼 사이드를 활용한 단순한 축구였다. 중국 허베이 화샤로 떠난 말컹 역할을 해줄 공격수가 필요했고, 제리치가 물망에 올랐다. 하지만 경남은 제리치를 데려올만한 이적료가 없었다.

이적료 충당 작업에 나섰다. 선수단을 정리하기로 했다. 제 몫을 하지 못하고 있는데다, 숫적 포화 상태인 수비라인부터 손을 댔다. 송주훈이 물망에 올랐다. 아직 나이가 어린데다, 이름값이 있는 송주훈은 외국에서 관심을 가질만한 카드였다. 때마침 중국 톈진 텐하이가 관심을 보였다. 고액 연봉자였던 송주훈의 연봉을 세이브한 것만으로도 수확인데 이적료 30만달러(약 )까지 벌어들였다. 여기에 조던 머치가 부상과 향수병을 이유로 팀을 떠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그의 기술은 아쉽지만, 조던의 뜻을 받아 계약 해지를 했다. 대신 잔여 연봉을 지급하지 않는 조건이었다. 10억원이 넘는 연봉을 수령했던 조던이 떠나며 연봉 규모를 줄이는데 성공했다.

자금을 마련한 경남은 바로 제리치 영입에 나섰다. 하지만 돈만으로 강원을 설득할 수 없었다. 수준급 선수를 찾는 강원의 니즈에 맞춰 과감히 이영재를 제시했다. 미드필드 전지역을 소화할 수 있는 이영재는 잠재력만큼은 높은 평가를 받는 선수다. 특히 기술 좋은 선수를 선호하는 김병수 강원 감독의 구미에 딱 맞는 선수였다. 이영재의 성장 가능성은 아쉽지만, 경남은 제리치 영입이 우선이었다. 경남은 강원에 이영재+5억원을 제시했고, 강원은 만족감을 표시했다. 전북이 뛰어들기 전 이미 구두로 합의를 마쳤고, 경남은 유리한 고지 속 제리치 영입전을 치를 수 있었다.

막판 전북의 공세가 거셌다. 당초 9일 낮 결정이 날 전망이었지만, 오후 늦게까지 딜레이 된 이유다. 이미 경남으로부터 만족스러운 제안을 받은 강원은 막판 전북에 더 큰 베팅을 했다. 이주용+8억원을 요구했다. 현금만을 고수했던 전북은 발을 뺐다. 강원 역시 얻을 것을 얻었지만, 역시 최종 승자는 경남이었다. 신속하고 과감한 결단, 그리고 정확한 계산이 만든 결과였다.

지난 몇년간 행보를 보면 경남은 '거상'으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많은 선수가 오가는 매년 겨울과 여름, 원하는 방향으로 리빌딩에 성공했다. 송수영 임창균 정현철 등 주요 선수들이 가장 비쌀때 팔고, 재빨리 그에 준하거나, 가능성을 지닌 선수들을 영입했다. 김종부 감독의 지도력과 시너지를 내며, 경남은 빠르게 전력을 업그레이드 시켰다. 해체 위기에 놓였던 경남은 K리그2를 넘어 지난 시즌 K리그1 준우승이라는 신화를 썼다.

하이라이트는 올 겨울이었다. 경남은 말컹(약 60억원), 박지수(광저우 헝다·약 22억원) 최영준(전북·약 12억원)을 팔아 무려 90억원이 넘는 돈을 벌어들였다. 1년 전에도 중국의 러브콜을 받았던 말컹을 지키며 더 높은 수익을 이끌어냈다. 한푼도 들이지 않고 영입한 박지수와 최영준으로는 그야말로 '대박'을 쳤다. K리그 역사상 이처럼 단기간에 많은 돈을 번 구단은 없었다. 이 세 선수를 데려오는데 쓴 돈은 불과 5억원. 경남은 무려 18배의 수익을 남기며, 그간 갖고 있던 빚을 모두 청산했다. 비록 올 시즌 아쉬운 성적을 거두고 있지만, 언제든 반등할 수 있는 선수단 구축에 성공했다. 물론 정해진 예산안에 모두 이뤄진 일들이다.

그 어떤 시도민구단도 해내지 못하던 일이었다. 이처럼 경남이 거상의 면모를 보일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단연 빠른 의사 결정 과정이다. 스카우팅부터 협상까지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하는 다른 구단과 달리, 창구를 일원화한 경남은 의사 결정 과정이 길지 않아 신속히 움직일 수 있었다. 구단 고위층 역시 전문성을 인정해줬다. 자금이 풍부하지 않지만, 경남이 늘 한발 앞설 수 있던 이유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같은 움직임에 균열이 보이고 있다. 내부에서 이런 저런 이유로 계속 발목을 잡고 있다. 제리치 영입도 하마터면 틀어질 뻔 했다. 경남이 거상으로 남을 수 있으려면, 일단 내부 정리가 필요하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