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을 소환하라.'
"10년 이상 마이크를 놓았다가 다시 잡았는데 설레면서도 두려움이 더 앞서네요. 그래도 축구팬들을 위한 재능기부라 하니 동참하게 됐습니다."
방송사 스포츠 전문 기자·아나운서 출신 한종희 빅터IND 사장(61)은 축구 중계 캐스터로 복귀한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한 사장은 MBC와 SBS에서 33년간 스포츠 취재부, 보도본부 등에서 근무하다가 지난 2015년 배드민턴 전문 브랜드 빅터코리아에 영입돼 기업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역 시절 기자 업무와 함께 배드민턴, 축구, 골프 등 방송 중계 캐스터로 활동해 이른바 '올드팬'에겐 친숙하다. 그가 방송에 복귀한 것은 한국프로축구연맹의 간곡한 요청 때문이었다.
연맹은 올해부터 K리그2 자체 중계를 선보이고 있다. 일명 'K리그 프로덕션'을 만들어 40명의 자체 중계 인력과 장비를 확보한 뒤 K리그2 경기를 소개한다. 상대적으로 열악한 K리그2를 활성화하고 축구팬들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다.
자체 중계 인력을 보강하는 과정에서 영입된 인물이 한 사장이다. 한 사장은 빅터 대표를 맡고 있어 한사코 고사했지만 '재능기부'라는 연맹의 설득에 더 고집부릴 수 없었단다. 주로 주말 공휴일 방송이니 회사 업무에도 큰 지장이 없었다.
한 사장과 함께 이번에 영입된 인물로는 송재익 캐스터(77)가 있다. 송 캐스터 역시 1970년 MBC 아나운서로 입사, 1998년 정년 퇴직 후 SBS 프리랜서로 일하는 등 39년간 스포츠 전문 방송인으로 활동했다. 한 사장과 마찬가지로 현장을 떠난 지 10년 만에 마이크를 잡았다.
데이터 분석을 해봤다. K리그2가 열리는 주말 낮시간대에 중계방송을 시청할 사람은 누가 있을까. 이른바 요즘 젊은 세대는 그 시간 TV 앞에 거의 없다. 젊은 세대 중 골수 축구팬이라도 새벽에 유럽 축구리그 경기를 보거나 게임, 모바일에 열중하는 게 대부분이다. 차라리 중장년층을 유효 시청자로 공략하는 게 낫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들을 위한 맞춤형 중계진 편성이 필요했다. 왕성하게 활동하는 젊은 캐스터들이 많지만 중장년층 입맛에는 사실 별로다. 이른바 올드 축구팬들은 요즘 달라진 축구 중계 용어에도 친근감을 느끼지 못한다는 게 연맹의 판단이었다.
예를 들어 '헤더'보다 '헤딩'이, '크로스'보다 '센터링'이 더 익숙하다. 젊은 세대는 '헤딩', '센터링' 같은 말이 일본식 표현, '콩글리시'라고 촌스러워할지 모른다. 하지만 무슨 외래어 표기법 시험보는 것도 아니고, '빌드업'이란 말도 생소하다는 올드팬에게는 오히려 향수를 자극할 수 있다.
그래서 추억 속에서 조용히 지내던 한종희, 송재익 캐스터를 소환한 것이다.
10년간 현장을 떠났더라도 30여년간 쌓아온 몸에 깊숙하게 밴 내공은 쉽게 빠지지 않는 모양이다. "친숙한 목소리, 안정된 진행으로 팬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는 게 연맹의 설명이다. 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