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웸블리(영국 런던)=이건 스포츠조선닷컴 기자]하프라인에서 로빙 패스가 쭉 들어왔다. 40번을 단 앳된 소년을 향한 패스였다. 그는 상대 수비 라인을 무너뜨렸다. 골키퍼가 달려나오는 것을 봤다. 오른발로 볼을 툭 쳤다. 골키퍼 머리 위로 볼을 띄웠다. 골키퍼를 돌려세웠다. 그리고 그대로 왼발 슈팅. 원더골이었다. 2010년 10월 30일. 독일 쾰른. 40번을 단 선수는 18세 3개월 22일의 손흥민이었다.
그로부터 2958일 후. 2018년 12월 5일 영국 런던 웸블리. 후반 10분 토트넘의 주포이자 2018년 러시아월드컵 득점왕 해리 케인이 볼을 잡아 돌파했다. 수비수를 제친 뒤 문전 앞으로 패스했다. 손흥민이 쇄도하고 있었다. 손흥민은 그대로 슈팅을 때렸다. 골네트를 갈랐다. 성인 무대, 그리고 동시에 유럽 빅리그에서 터뜨린 손흥민 자신의 100번째 골이었다. 토트넘은 사우스햄턴을 3대1로 눌렀다.
▶월드클래스 인증
9시즌 총 320경기에서 100골. 그것도 유럽에서 가장 수준이 높다는 독일 분데스리가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뽑아낸 것이다. 결국 이 100골은 손흥민이 세계 최고 클래스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교적 꾸준했다. 이번 시즌을 제외한 지난 8번의 시즌 가운데 한자릿수 득점에 그친 것은 단 3번에 불과하다. 그 중 두 번은 프로 1,2년차였을 때였다. 그리고 또 한 번은 8골에 그쳤던 2015~2016시즌, 토트넘으로 막 이적한 때였다. 그 이에는 모두 10골을 넘게 넣으며 자신의 존재감을 알렸다. 특히 2016~2017시즌에는 21골, 2017~2018시즌에는 18골을 넣었다.
다른 월드클래스 선수들, 특히 1992년생으로 동갑이자 비슷한 포지션의 선수들과 비교해봐도 떨어지지 않는다. 사디오 마네(리버풀)는 8시즌동안 총 112골을 넣었다. 다만 앞선 4시즌은 프랑스 리그1과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에서 뛰었다. 그곳에서 총 47골을 넣었다. 빅리그에서 넣은 골은 65골이다.
모하메드 살라(리버풀)와도 비교할 수 있다. 살라는 유럽무대에서 총 118골을 넣었다.(이집트리그에서 넣은 12골 제외) 이 가운데 4대 빅리그에서 넣은 골은 총 98골이다.
물론 선수들마다 사정이 다르고, 팀 내 역할이 다르다. 그렇기에 단순히 골 숫자를 가지고 비교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빅리그에서 9시즌을 뛰면서 100골을 넣은 것은 분명 최고의 기량을 유지하고 있다는 뜻이다.
▶여전히 배고프다
100골을 넣고 팀을 승리로 이끌었지만, 손흥민은 들뜨지 않았다. 그는 "사실 경기를 뛸 때는 잊고 있었다. 골을 넣었을 때도 몰랐다. 동료가 와서 알려줬다"고 했다. 이어 "영광스러운 일"이라면서도 "내가 잘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다만 열심히 했다. 한 순간도 소홀했던 적은 없었다"며 차분하게 말했다. 그는 "앞으로도 축구할 날이 더 많다"면서 "좋은 경기를 보여줘서 팬들도 기쁘게 하고 내게도 좋은 일들이 있었으면 한다"고 했다.
손흥민의 다음 목표는 한국인 유럽 빅리그 최다골 기록이다. 차범근 전 감독이 선수 시절 기록한 121골이다. 차 감독은 1979년 독일 무대에 진출한 뒤 10년간 분데스리가에서 98골 등 총 121골을 넣었다. 손흥민은 "많은 골을 넣어 대한민국 국민으로 유럽에서 대한민국 알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