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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心 in 골프]2018년 이정은과 박성현이 2017 버전보다 대단한 이유

"내 자신을 칭찬해주고 싶다."

2018 KLPGA 시즌을 마친 이정은(22)의 말이다.

이정은은 상금, 최저타수 2관왕으로 시즌을 마쳤다. 대상, 다승까지 더한 4관왕으로 기록 타이틀을 싹쓸이 했던 지난해에는 못 미치는 성적. 하지만 그에겐 올시즌의 의미가 더 크게 느껴진다. 실제 그는 "잊을 수 없는 한해"라며 감격해 한다. 올 시즌에 대해 "98점 주고 싶다. 작년보다 높은 점수 주고 싶다"고 자평했다.

왜 그럴까. "올 초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안 좋은 흐름에 힘들었어요. 사실 골프라는 게 잘 되고 있을 때는 쉬운데 어려운 상황에서 끌어올리는 건 어렵거든요. 시즌 초에 플레이가 잘 안되면서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좋은 흐름으로 바꿔서 메이저 2승을 해냈다는 것에 큰 점수를 주고 싶어요."

골프, 야구 등 멘탈 스포츠에는 어김 없이 2년차 징크스란 말이 있다. 여러가지 요인이 있다. 그 중 가장 핵심은 잘했던 걸 지켜야 한다는 부담감이다. 무거운 마음이 몸을 굳게 한다. 더 이룰게 없다는 목표상실도 슬럼프의 요인이다. 그래서 많은 선수들은 최고봉에 오른 뒤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등 환경을 바꾸기도 한다.

선수는 무거워짐을 자연스럽게 받아 들여야 한다. 어쩌면 2년차 징크스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산도 정상에 오르면 내려갈 일 밖에 없지 않은가. 일단 내려와야 더 높은 산에 오를 수 있다.

이정은 역시 변화를 모색했다. 출전 기회가 생기는 대로 해외투어를 다녔다. 그러다보니 국내투어 병행이 더욱 힘들어졌다. 일찌감치 고비가 찾아왔다. "미국 대회에 출전하면서 시차, 컨디션 등 안 좋은 상황에서 샷 감이 떨어졌어요. 플레이가 아예 안 됐었죠." 상반기 내내 우승을 신고하지 못했다. 시즌 첫승이 늦어지면서 부담은 조금씩 늘어갔다. "일단 1등의 자리에 있으면서 지켜내고 유지하는 것이 부담이 되고 힘들었어요."

몸은 피곤하고 샷은 무뎌졌다. 동반 플레이 하는 다른 선수들이 훨씬 잘 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정은'이란 이름 석자가 무겁게 느껴졌다. "다른 선수보다 못하고 있었지만 그 감정들은 1등의 자리에 있는 나만 느낄 수 있었죠."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컴컴한 방안에 덩그러니 홀로 놓인 듯한 느낌. 할 수 있는 일은 무기력한 기분을 털고 늘 준비된 상태로 기다리는 것 뿐이었다.

"성장하는 시간일 거라 믿으면서 기다리다 보니 우승하게 됐어요. 주위의 많은 분들이 올 하반기에 우승할거라고 확신에 차서 말씀해주시고 응원해 주셨죠. 그에 힘입어 견딜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미국 도전 2년차 박성현(25)도 마찬가지다.

그는 LPGA 데뷔 첫해였던 지난해 파란을 일으켰다. US오픈과 캐네디언 퍼시픽 위민스 오픈 우승 등 2승을 거두며 상금왕과 올해의 선수상, 신인상을 휩쓸었다. 미국 전역에 박성현 이름 석자를 확실하게 새겼다. 그리고 이듬해였던 올시즌. 박성현은 쉽지 않은 한해를 보냈다. 데뷔 첫 해에 단 한번도 없었던 컷 탈락 굴욕도 수차례 당하는 등 업다운이 심했다. '2년차 징크스'란 달갑지 않은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몸과 마음 모두 불편했다.

하지만 그는 역시 승부사였다. 결정적인 기회를 포착해 3승을 해냈다. 10주 연속 세계랭킹 1위도 지켰다.

"업다운이 심했던 시즌이었습니다. 하지만 목표였던 3승도 달성했고, 적어도 저는 작년보다 잘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한번 잘하는 것 보다 잘했던 걸 꾸준히 유지하는 게 훨씬 어렵다. 특히 멘탈스포츠의 끝판왕 골프는 더 그렇다. 그런 면에서 지난해 한미 양국을 제패했던 이정은과 박성현의 올 한해가 더욱 대단하고, 더욱 가치있게 느껴진다. 힘겨운 터널을 통과한 본인 스스로 가장 잘 안다. 그렇기에 시즌 끝자락에, "정은아 잘했어", "성현아 잘했어"를 읊조리며 진심으로 안아주고 도닥거려 줄 사람 역시 자기 자신 뿐이다. 왕관을 쓴 자의 무게를 제대로 느껴봤을 두 선수. 내년 시즌 활약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