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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자립위해 애쓰는 히어로즈, KBO가 도와줄 순 없나

한국야구위원회(KBO)와 히어로즈 구단의 골이 갈수록 깊어지는 모양새다. 구단의 재정 자립을 위한 노력마저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구단은 이런 KBO의 반응에 당황해하면서도 내심 서운한 눈치다. 이런 식으로 KBO와 회원사 간에 갈등 구조가 생기는 것은 리그 발전을 위해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정녕 공존과 공생의 길은 없을까.

▶정운찬 총재의 취임사에 담긴 실마리

그 길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다. 사실상 정운찬 KBO 총재가 해답을 내놓은 것이나 다름없다. 정 총재는 올해 초 공식 취임식에서 '프로야구 산업화'를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모기업에 의존하는 구단 운영체계로는 미래가 불투명하다. 야구단 스스로 경제적 독립체이자 이익을 낼 수 있는 프로기업으로 성장해야 한다." 지난 1월, 정 총재의 취임사에 담긴 내용이다.

군사정권의 강요로 갑자기 출범한 탓에 30여 년 간 '명색만 프로'에 그쳤던 한국 프로야구 구단의 본질적 문제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다. 이렇게 정 총재가 프로야구 구단의 본질적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선 것은 대단히 용기 있고, 진취적인 일이다. 역대 21명의 KBO총재 중 그 누구도 이 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성공까지는 가야할 길이 멀지만, 시도 자체만으로도 박수받을 일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히어로즈 구단이 바로 정 총재가 청사진으로 제시한 '경제적 독립체이자 이익을 낼 수 있는 기업'에 현재 10개 구단 중에서는 가장 근접해 있다. 이미 2008년 창단 때부터 모기업의 지원없이 살림을 꾸려왔다. 그리고 히어로즈 구단은 지난 6일, '키움증권'과 5년간 총액 규모 500억원(인센티브 제외)의 네이밍 스폰서 계약을 체결함으로써 그 초석을 더욱 새롭고 단단히 다졌다.

하지만 정작 KBO는 히어로즈 구단의 이런 자립 노력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다. 장윤호 KBO 사무총장은 히어로즈 구단이 네이밍 스폰서 계약을 발표하자 곧바로 "이 건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심하게 표현하면 예의가 아니다. 한국시리즈라는 KBO리그 잔치를 하고 있는 와중에 네이밍 스폰서십 교체를 발표했다"며 "사무국 차원에서 이에 관해 논의할 것"이라며 강경 발언을 했다.

▶KBO의 심기가 불편한 진짜 이유

사실 시기에 대한 문제제기는 표면상의 이유일 뿐이다. 히어로즈 구단에 대한 근원적 불만이 핵심이다. 물론 이런 KBO의 반응이 이해되는 측면도 있다. 경제사범으로 복역 중인 이장석 전 대표가 히어로즈 구단을 운영하면서 배임과 횡령, 뒷돈 트레이드 등 적잖은 편·불법 행위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이는 정 총재의 또 다른 중점 목표인 '클린 베이스볼'과 매우 상충되는 사안들이다. KBO로서는 이런 부분이 모두 깨끗이 정리되야만 히어로즈 구단이 정상화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이 전 대표와 홍성은 레이니어그룹 회장 사이에 구단 지분 분쟁이 미해결 상태로 남아있다는 점도 KBO가 히어로즈 구단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이유다. 또한 히어로즈 구단의 운영에 여전히 이 전 대표의 영향력이 작용하고 있다는 의혹도 갖고 있다.

하지만 명확히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 관계들이 있다. 우선 이 전 대표는 이미 배임과 횡령에 관해 유죄(사기는 무죄) 판결을 받아 복역 중이다. 구치소 수감까지 포함해 복역기간은 거의 1년이 다 되어 간다. 또한 KBO도 발표 시기만 늦췄을 뿐, 이 전 대표에 대한 '영구제명'을 결정했다.

이는 곧, 이 전 대표가 3년 6개월 징역형의 사법적 단죄 뿐만 아니라 KBO로부터도 사실상 '행정적 사형' 처분을 받았다는 뜻이다. 이로써 이 전 대표가 앞으로 구단 운영에 공식적으로 관여할 수 있는 방법은 원천 차단됐다. 배임과 횡령, 편·불법 운영의 루트가 단절됐다는 뜻이다. 키움증권이 5년 계약을 진행한 이유도 이런 점을 평가했기 때문이다.

또한 홍 회장과 이 전 대표 사이의 지분 분쟁에 관해서도 KBO는 개입할 수 없다. 개인간의 분쟁인데다 실질적으로 이 분쟁이 구단 운영에 큰 위기가 될 가능성도 희박하기 때문이다. 홍 회장은 강제 집행권한이 없고, 지분 양도의 주체인 히어로즈 구단 법인은 정작 넘겨줄 지분이 없다. 또 이 전 대표에게는 개인 지분을 줄 의무가 없다. 예민한 대치 상황이 이어지겠지만, 구단운영에 미치는 영향은 실질적으로는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결과적으로 KBO는 현 시점에서 히어로즈 구단의 운영정상화에 관해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구단 운영에 관해 더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노하우도 쌓아놨다. 의혹이 있다면 즉각적으로 조사해서 진위를 밝혀내면 된다.

사실 이 전대표의 배임 및 횡령 사실이 다 드러난 마당에 히어로즈 구단이 운영과정에서 또 다시 편·불법 행위를 저지를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런 행위가 반복되면 그때야말로 구단 퇴출을 피해갈 수 없기 때문이다. KBO에게도 구단의 경영 행위를 감시하고 조사할 수 있는 역량과 권한이 있다. 때문에 KBO는 감정적인 반응을 보일 것이 아니라 비즈니스적으로 도울 부분은 돕고, 의혹이 있으면 감사를 진행해 구체적으로 밝힌 뒤 처벌할 게 있으면 그때 처벌하면 된다. 이는 다른 9개 구단에도 공히 적용되어야 할 방침이다.

결국 이렇게 따지고 보면 KBO가 히어로즈 구단을 냉담한 시선으로 바라볼 이유는 객관적으로 찾기 어렵다. 이장석 전 대표에 대한 배신감이나 혐오감은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이 프레임을 구단 전체에 걸 필요는 없다. 또한 현재 구단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전부 이 전 대표의 뜻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편견이다. 여러 논란과 악재들을 딛고 지금 히어로즈 구단은 정 총재가 제시한 프로야구 산업화 모델의 청사진을 향해 가고 있다. 이런 측면 만큼은 KBO가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