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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카르타 결산] 金처럼 빛난 손흥민 리더십, 그리고 '원팀' 만든 명장 학범슨

가시밭길을 걸어온 김학범호가 금메달로 달콤한 결실을 만들었다.

악조건 속에서 시작했다. 김학범호는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 명단을 발표할 때부터 외부의 무분별한 비난에 시달렸다. 조 편성과 경기 일정의 번복, 그리고 해외파 합류 시점까지. 김학범 감독이 헤쳐나가야 할 난관이 많았다. 김 감독은 그 가시밭길을 덤덤하게 걸었다. 말레이시아와의 조별리그 2차전에서 충격적인 패배를 당했지만, 오히려 선수들은 그 패배를 계기로 반등했다. 그 고난 속에서 김 감독의 지도력과 손흥민의 '밀당 리더십'이 꽃피웠다.

▶금메달처럼 빛난 손흥민의 리더십

손흥민은 부담이 큰 아시안게임에서 주장 완장을 찼다. 매우 중요한 대회였다. 본인의 군 문제가 걸려있을 뿐만 아니라, 아시아에서 최강 팀이라는 걸 증명해야 했다. 그는 지난달 13일 인도네시아 반둥으로 입국해 곧바로 선수단에 합류했다. 주장이 된 손흥민은 후배들을 끊임없이 독려했다. '손흥민의 미팅'은 대회 내내 화제가 됐다. 김민재는 "(손)흥민이형이 처음 합류해서 좋은 말을 많이 해줬다. 경험이 많은 선수다 보니, 그라운드 밖에 있어도 힘이 될 것 같다. 모두 하나가 될 수 있는 계기다"라고 했다. 실제로 '손흥민 효과'는 존재했다. 그는 식사 시간에도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후배들과 대화를 나눴다. 쓴소리가 필요할 때는 개인 면담도 주저하지 않았다.

지난달 17일 말레이시아를 상대로 1대2 충격적인 패배를 당한 뒤에는 후배들을 강하게 질타했다. 손흥민은 "솔직히 창피한 일이다. 언제까지나 다독일 수는 없다. 나도 많은 주장 형들이 하는 걸 봐왔다. 가끔은 병도 주고 가끔은 약을 주는 게 정확하다. 격려도 필요하지만 지금은 따끔한 지적이 필요할 때다"라고 했다. 후배들의 활약에 웃기도 했다. 승리 뒤에는 "후배들에게 너무 너무 감사하다. 나도 많은 걸 배우고 있다"고 했다. 당근과 채찍을 적절하게 활용했다. 그렇게 손흥민의 리더십이 만들어졌다.

손흥민의 간절함과 리더십, 그리고 후배들의 노력이 어우러져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금메달을 목에 건 선수들을 하나 같이 "형들 덕분이다"라고 했다. 23세 이하 선수 중 맏형인 김문환은 "형들에게 너무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우리 팀의 중심을 잡아줬다. 내가 중간 역할을 못한 부분이 있었다. 형들이 마음고생도 많았다. 너무 감사하다"고 했다. 황인범은 "(손)흥민이형이 이번 대회에 임하는 자세가 간절했다. 와일드카드 형들이 오면서 많은 힘을 실어준 게 사실이다. 흥민이형이 경기 전날 항상 선수들을 모아서 미팅을 하고, 좋은 이야기도 해줬다. 정신적으로 해이해진 선수들이 있다고 생각하면 확실히 잡아줬다. 정말 고맙다. 또 우리 빛의조, 빛현우 형들 너무 고생해줘서 정말 고맙다"고 밝혔다.

그라운드에선 양보할 줄 아는 리더였다. 1일 일본과의 결승전. 손흥민의 도움을 받은 이승우가 연장 전반 3분 선제골을 터뜨렸다. 손흥민에게도 슈팅 기회가 있었지만, 이승우에게 양보했다. 손흥민은 그 순간을 떠올리며 "(이)승우가 '나와, 나와!'라고 해서 빨리 비켜줬다. 승우가 더 좋은 자리에 있었고, 좋은 마무리를 할 수 있는 자리였다. 결국 어시스트를 했다"며 활짝 웃었다.

리더로 성장한 손흥민은 "많이 부족했는데 어린 선수들이 정말 정말 노력을 많이 해줘서 너무 고맙다. 잔소리도 많이 하고 쓴소리도 많이 했다. 선수들이 부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해야 하는거구나'라고 생각해서 금메달을 딸 수 있었다. 어린 선수들이 하나가 돼서 우승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리더 손흥민의 발견은 금메달 이상으로 큰 수확이었다.

▶'원 팀'을 만든 말레이시아전 보약과 학범슨의 눈물

부진했던 김학범호에 터닝 포인트가 있었다. 말레이시아전 충격적인 패배와 김학범 감독의 눈물이다. 조별리그 1차전에서 바레인을 6대0으로 완파한 한국의 분위기는 최고조였다. 그러나 바로 말레이시아에 일격을 당하면서 분위기가 확 가라앉았다. 이 패배는 선수들에게 긴장감,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꼭 주장의 쓴소리가 아니어도 모두에게 큰 충격이었다. 김 감독과 선수들은 "우리가 자처한 길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헤쳐나가겠다"고 입을 모았다. 그리고 초심으로 돌아갔다.

수문장 조현우는 "말레이시아전에서 패하면서 다시 처음부터 한다는 생각을 가졌다. 선수들은 매일 매일 상대를 분석하면서 꼭 금메달을 딴다는 생각으로 임했다. 결국 그 이후로 상황이 좋게 풀렸다"고 했다. 김문환은 "선수들이 말레이시아전이 끝난 뒤 마인드를 아예 바꾸었다. 그래서 우승을 할 수 있었다. 보약이 됐다. 어차피 그 길은 우리가 자처한 것이기 때문에, 안 피하고 가면 충분히 승산 있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하나로 뭉친 김학범호는 첫 패배를 계기로 똘똘 뭉쳤다.

또 한 번의 위기는 있었다. '강력한 우승 후보' 우즈베키스탄과의 8강전이었다. 두 팀이 화끈하게 맞붙었다. 한국은 전반 4분 만에 선제골을 만들고도 우즈베키스탄의 파상공세를 이겨내지 못했다. 3-3 동점에서 돌입한 연장전. 마지막 2분을 남겨 놓고 황의조가 페널티킥을 얻었다. 키커 황희찬이 득점하며 우여곡절 끝에 승리. 김 감독은 플래시 인터뷰에서 말을 하던 도중 눈물을 보였다. 호랑이 감독의 낯선 모습이었다. 그 정도로 힘든 경기를 치렀다.

김문환은 "경기가 끝나고 너무 힘들어서 정신이 없었다. 인터넷을 보고 눈물을 흘리신 걸 알았다. 너무 죄송했다. 감독님이 주문하신 걸 우리가 잘 못했다. 너무 힘들어하시는 것 같아서 죄송했다. 그래서 베트남전부터 감독님을 위해서 뛰겠다며 선수들이 한 마음이 됐다"고 했다. 게다가 베트남과의 준결승전은 한국인 박항서 감독과의 대결. 절대 질 수 없었다. 이승우를 비롯한 선수들은 결승 진출 후 "감독님을 위해 뛰었다"고 했다. 다시 찾아온 위기로 선수들은 정신을 바짝 차렸다.

김학범호가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었던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어렵게 시작한 김학범호는 대회를 치를수록 조직력을 갖춘 하나의 팀이 됐다. 손흥민은 이 대표팀을 "축구를 정말 잘하고 인성 좋은 팀이다"라고 정의했다. 이들의 성장과 금메달은 한국 축구에 큰 선물이 됐다.자카르타(인도네시아)=선수민 기자 sunso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