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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 or No]해커는 넥센의 구세주 1선발이 될 수 있을까

에릭 해커(35)는 넥센 히어로즈가 불의의 손가락 복합 골절로 시즌을 조기 마감한 에스밀 로저스를 대체해 6월말에 급히 영입한 선발 투수다. 해외 선수 수급 시장이 크게 축소된 시기라 선택지 자체가 많지 않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KBO리그에 대한 경험이 풍부하고, 훈련도 꾸준히 해온 해커가 열심히 구직활동을 했다. 결국 넥센 고형욱 단장이 직접 미국에서 투구하는 모습을 보고 계약을 진행했다. 넥센 장정석 감독도 해커의 영입에 만족스러워 하며 크게 기대했다. 그래서 후반기 1선발 역할도 맡겼다.

하지만 넥센 유니폼을 입고 나선 3번의 선발 등판에서 해커는 아직 승리를 따내지 못했다. 후반기 첫 경기인 17일 고척 LG전에서 5⅔이닝 동안 10안타(2홈런) 5실점한 끝에 시즌 2패째를 떠안았다. 평균자책점은 7.20으로 치솟았다. 후반기 본격적인 상위권 도전을 선언한 넥센으로서는 꽤나 난감한 일이다. 1선발인 해커가 살아나지 않는다면 순위 상승을 기대하기가 상당히 힘들어진다.

과연 해커는 팀이 기대했던 1선발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이제 3경기 밖에 치르지 않은 시점이라 'Yes'나 'No'를 확실히 선언하기 애매하다. 각각의 관점에 부합할 만한 이유들이 있기 때문이다. 과연 해커는 어느 관점에서 봐야 할까.

▶Yes : 늘어나는 소화 이닝수, 세 경기는 적응 과정이었다

세 번의 선발 등판에서 그나마 긍정적인 요소를 찾자면 던질 때마다 조금씩 투구 수와 소화 이닝수가 늘어났다는 점일 것이다. 선발 투수에게 이닝 소화력은 매우 중요한 조건이기 때문에 일단은 긍정 요소라고 쳐줄 수 있다. 해커는 첫 등판인 지난 3일 고척 SK전에서 82구를 던지며 4⅓이닝을 소화했다. 이어 두 번째 등판이던 지난 8일 고척 NC전에서는 93구를 던지며 5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이어 세 번째 등판이던 17일 고척 LG전에서는 10안타를 맞았지만, 그래도 104구를 던지며 5⅔이닝을 소화했다.

해커의 투구 수와 소화 이닝수가 꾸준히 증가 추세를 보였다는 건 그가 긴 실전 공백의 데미지를 빠르게 지워가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사실 해커에게는 실전 공백이 가장 우려됐던 부분이었다. 첫 등판에서 이에 따른 문제가 확연히 부각됐다. 투구수가 50구 이상으로 늘어나자 급격히 구위와 제구력이 나빠졌기 때문이다.

세 번의 등판을 통해 해커는 꾸준하게 문제점을 해결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줬다. 워낙 베테랑 투수이기 때문에 본인이 경기를 치러나가면서 투구 밸런스나 타이밍을 적절하게 조정하는 모습도 나타난다. 일단 계속 노력하면서 코칭스태프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자세는 높이 쳐줄 만 하다. 이런 과정을 거쳐 적응이 완료되면 지금보다는 더 나은 모습을 기대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면서 앞으로 나오게 될 8~9경기에서 5승 정도만 따내도 넥센으로서는 이득이다. 이게 바로 넥센 코칭스태프가 절실하게 바라는 해커의 정상적 모습이다.

▶No : 부정확해진 제구력과 무뎌진 변화구

하지만 이런 모습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측면이 다소 믿음직스럽지 못하다. 일단 상대 타자들이 이제는 해커의 꼬임에 잘 넘어가지 않고 있다는 게 기록으로 드러난다. 사실 해커는 과거 NC에 있을 때도 강력한 구위로 상대를 제압하는 유형이 아니었다. 다소 변칙적인 투구 폼과 다양한 변화구로 상대 타자의 타이밍을 빼앗아 헛스윙이나 범타를 유도하는 유형의 투수였다.

이런 유형의 투수가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일단 제구력이 정교해야 한다. 변화구 각도 역시 예리할수록 좋다. 해커는 이걸 앞세워 지난 5년간 NC의 에이스 역할을 해왔다. 이를 가장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지표는 볼넷/삼진 비율이다. 2013년부터 2017년까지 5년간 해커의 볼넷/삼진 비율은 약 0.34(볼넷 208/삼진 619)에 달한다. 볼넷에 비해 삼진 비율이 거의 3배나 많다는 건 그만큼 제구력이 뛰어났다는 뜻이다. 또한 지난 5년간 856이닝을 던지며 볼넷은 208개 밖에 내주지 않았다. 9이닝 경기 기준으로 보면 2.19개에 불과했다.

그러나 올해 넥센 소속으로 나선 3경기에서는 볼넷/삼진 비율이 0.6(볼넷 6/삼진 10)으로 치솟았다. 이닝당 0.4개꼴로 9이닝으로 환산하면 3.6개다. 확실히 제구력이 전과 같지 않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공이 스트라이크존을 많이 벗어나거나 몰리는 현상이 확인된다. 이는 볼넷의 증가 뿐만 아니라 땅볼/뜬공 비율의 변화로도 확인할 수 있다. 과거 5년간 해커의 땅볼/뜬공 비율은 1.40으로 땅볼이 훨씬 많았는데, 올해는 이 비율이 0.76으로 확연히 변했다. 변화구의 제구와 각도가 모두 저하된 결과다. 이런 상태라면 해커의 1선발 플랜은 오히려 넥센의 악수가 될 수도 있다. 과연 해커의 진짜 정체는 어떤 것일까.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