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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준의 발롱도르]프랑스는 어떻게 20년만에 월드컵을 품었나

꼭 20년만이었다.

프랑스 시대가 다시 열렸다. 프랑스는 16일(한국시각) 러시아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크로아티아와의 2018년 러시아월드컵 결승전에서 4대2로 이겼다. 전반 18분 마리오 만주키치의 자책골로 앞서나간 프랑스는 28분 이반 페리시치에 동점골을 내줬지만, 전반 38분 앙투안 그리즈만, 후반 14분 폴 포그바, 후반 20분 킬리앙 음바페가 연속골을 터뜨렸다. 후반 24분 만주키치가 추격골을 넣었지만, 프랑스는 효율적인 축구는 크로아티아의 투지를 압도했다. 자국에서 열린 1998년 프랑스 대회 이후 20년만에 프랑스 축구가 세계 정상에 서는 순간이었다.

하루아침에 만든 성과가 아니다. 20년간 프랑스의 행보를 돌아보면, 새로운 출발선상에 선 한국축구도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20년 전으로 돌아가보자. 프랑스의 성공비결은 순혈주의 타파였다. 1990년 이탈리아, 1994년 미국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한 프랑스는 백인 중심의 선수단 구성을 뒤로 하고 유색 인종을 중심으로 내세웠다. '팀은 하나'라는 슬로건 아래 이민자들도 대거 합류했다. 대표적인 선수가 아프리카 알제리계 이민자 출신 지네딘 지단이었다. 지단은 프랑스를 월드컵 우승으로 이끌며 일약 국민 영웅으로 떠올랐다. 지단은 프랑스 사회를 흔들었던 이민자와 자국민 사이의 극심한 갈등을 뛰어 넘은 사회통합의 상징이었다.

또 하나의 비결은 유소년이었다. 미셸 플라티니 이후 암흑기를 겪었던 프랑스 축구는 혁신을 단행했다. 겉멋내기에만 치중했던 로코코 양식의 유소년 아카데미를 포기하는 대신 기본기를 중심으로 한 현대적인 시스템을 도입했다. 그 유명한 클레르퐁텐의 시작이었다. 프랑스 전역에는 프랑스축구협회가 직접 관리하는 12개의 엘리트 아카데미가 있는데, 파리와 인근 13~15세 유망주들을 관리하는 클레르퐁텐도 그 중 하나다. 클레르퐁텐은 1998년 대회를 우승으로 이끄는데 일조한 티에리 앙리, 다비드 트레제게 등을 시작으로 숱한 스타들을 키워냈다.

1998년 월드컵 우승 후 프랑스는 전성기를 누렸다. 유로2000에서도 우승을 차지했다. 지단, 패트릭 비에이라, 앙리, 트레제게 등이 자리한 프랑스의 크리스마스 전술은 당대 최고였다. 하지만 그 전성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2006년 독일월드컵서 은퇴 선언 후 돌아온 지단의 불꽃 투혼으로 준우승을 차지했지만, 이후 열린 메이저대회에서 부진을 이어갔다. 유로2008과 2010년 남아공월드컵서 모두 조별리그 탈락의 수모를 겪었다.

대표팀의 성적은 퇴보했지만, 프랑스 축구는 정체돼 있지 않았다. 연령별 대표팀에서는 꾸준한 성적을 거뒀다. 프랑스는 2010, 2016년 유럽축구연맹(UEFA) U-19 챔피언십 우승, 2013년 U-20 월드컵 우승 등을 차지했다. 꾸준히 4강 이상의 성적을 거뒀다. 그 사이 유망주들이 쏟아졌다. 아프리카계를 중심으로 다양한 인종을 받아들인 프랑스 축구는 탁월한 신체조건과 재능을 지닌 원석을 세공하는데 많은 공을 들였다.

눈에 띄는 현상은 10대 스타들의 대거 등장이었다. 단순한 유망주를 넘어 기존의 선수들을 뛰어넘는 재능들이 등장했다. 킹슬리 코망, 우스망 뎀벨레 등이 10대에 레블뢰(프랑스 대표팀의 별명) 유니폼을 입었다. 대표적인 선수가 바로 이번 월드컵에서 맹활약을 펼친 킬리앙 음바페다. 음바페는 18세에 A매치에 데뷔했고, 19세에 월드컵 결승전에서 골을 넣었다. 이번 대회가 낳은 스타로 불리지만, 음바페는 이미 몸값만 1억8000만유로(약 2400억원)가 넘는 슈퍼스타다. 이번 월드컵에서도 에이스의 상징인 10번을 달았고, 스타군단 프랑스의 주전으로 활약했다.

젊은 유망주들의 대거 등장으로 프랑스 축구는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이번 대회에 나선 프랑스는 평균연령 25세10개월로 나이지리아에 이어 두번째로 어린 팀이었다. 우승을 차지한 팀 중에는 역대 최강으로 불리는 1970년 브라질(25세9개월)에 이어 두번째다. 단순히 어리기만 한 것이 아니다. 기량적으로 완성된 선수들이었다. 몸값이 이를 증명한다. 음바페를 비롯해 10대 스타들의 몸값은 어마어마했다. 그 결과 프랑스는 대회 전 독일의 이적통계사이트 트랜스퍼마르크트가 발표한 러시아월드컵 진출국 가운데 선수단 몸값이 가장 높은 팀이었다. 선수단 23명의 몸값 총액만 10억8000만 유로(약 1조4133억원)에 달했다.

답은 역시 유소년 육성에 있었다. 20년 전 프랑스의 첫 우승을 안긴 클레르퐁텐은 다시 한번 세계축구를 프랑스 천하로 바꿨다. 프랑스의 유소년 시스템은 혀를 내두를 정도다. 일단 지도자 육성부터 남다르다. 프랑스는 코칭 라이선스 취득까지 걸리는 시간이 가장 긴 나라다. UEFA A라이선스를 위해서는 무려 1038시간이 필요하다. 프랑스는 프로와 유소년을 철저히 나눴다. A라이선스 취득 후 프로 감독이 되기 위해서는 프로 라이선스를, 유소년 감독이 되기 위해서는 UEFA U-13 프로 라이선스를 획득해야 한다. U-13 프로 라이선스를 따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교육을 받으며, 많은 연구를 해야 하고, 자신의 인생관을 담은 유소년 축구 논문까지 작성해야 한다. 이 논문은 클레르퐁텐의 기술부서에 보관돼 지도자를 준비 중인 이들에게 제공된다. '위대한 선수'를 만들 수 있는 '훌륭한 지도자'를 더 많이 양산하기 위해서다.

지도법도 눈여겨 볼만 하다. 철저하게 기본기를 강조한다. 날고 기는 유소년 대표지만 아주 기본적인 패스부터 반복적으로 가르친다. 다음 단계까지 올라가는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급하지 않다. 지도자들은 선수들을 다그치지 않는다. 이 동작을 완벽히 자기 것으로 만든 뒤, 그 필요성을 느낄 때까지 기다려준다. 너무 많은 것을 가르쳐주기 보다는,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렇게 성장한 선수들은 어린 선수들을 기용하는데 주저함이 없는 프랑스 리그의 개방적인 감독들과 만나 시너지를 냈다. 프랑스 리그1은 유소년 육성 비중이 가장 큰 리그 중 하나다.

프랑스는 20년만에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젊은 프랑스는 당분간 세계축구를 지배할 가능성이 높다. 오랜 시간, 철저한 계획 하에 견고히 구축된 성이기에 쉽사리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유소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기본의 중요성, 프랑스가 다시 한번 증명했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