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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탄' 화물선에서 '안 탄' 중고차 꺼내기 악전고투

"자동차 하역에 투입된 인원들이 모두 10년 넘게 일한 베테랑인데 이렇게 힘든 환경에서 작업하기는 처음입니다."
22일 오전 인천 내항 1부두에서는 평소에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광경이 펼쳐졌다.
불에 탄 화물선 내부에서 불에 타지 않은 중고차 880여대를 꺼내는 작업이 진행된 것.
이날 작업은 지난달 21일 화재가 발생한 자동차운반선 오토배너호(5만2천t급)에서 이뤄졌다.
당시 화재로 소방 당국은 밤낮으로 진화작업을 벌였지만 불은 사흘이 지나서야 완전히 진화됐다. 선박 규모가 워낙 큰 데다 내부의 열기와 연기가 쉽게 빠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불로 중동으로 수출하기 위해 배에 실었던 중고차 2천438대 중 선박 11∼13층에 있던 차량 1천400여대는 전소됐다.
그러나 선박 10층 밑으로는 불길이 거세게 번지지 않은 덕분에 1∼5층, 9∼10층에 실려 있던 중고차 880여대는 잿더미가 될 위기를 간신히 피했다.
수출 화주는 이들 차량이 운행에 별문제가 없고 상품가치가 있는 것으로 판단되자 배에서 내려 수출하기로 하고 하역작업에 착수했다.



화재 피해를 겪은 선박에서 중고차를 꺼내는 작업은 쉽지만은 않았다.
인천 내항 하역 인력은 21일 오후 6시부터 3시간 반가량 차를 직접 운전해서 부두로 이동시키는 방식으로 하역작업을 했지만 하역 대상 880여대 중 96대만 꺼낼 수 있었다.
화재로 동력이 끊겨 별도의 조명을 준비해야 하는 어두컴컴한 배 안에서 화물 고정장치를 풀고 장기간 방치돼 시동이 잘 걸리지 않는 중고차를 한 대씩 꺼내는 작업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현장에는 20여명의 하역 인력 외에도, 화재 발생 등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소방관들도 배치됐다.
이날 오전 8시부터 재개된 하역작업에서는 시간당 약 40대가 배 밖으로 나왔다.
인천항운노조 관계자는 "일반적인 자동차 선적보다 두 배 이상 시간이 걸리고 있다"며 "중간중간에 시동이 아예 걸리지 않는 차량도 섞여 있어 작업에 애를 먹고 있다"고 말했다.
화재 선박에서 꺼낸 중고차는 다른 화물선으로 옮겨져 중동으로 수출될 예정이다.
불에 타 못 쓰게 된 나머지 중고차는 화재 선박에 실린 상태로 인천 내항 밖으로 예인된 뒤 제3국에서 폐기 처분될 가능성이 크다.
화재 선박 선주 측은 화재조사를 통해 화인이 규명되고 보험 처리 문제 등이 매듭지어진 이후에야 선박의 폐선·수리 여부를 결정해 이동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최종적으로 폐선이 결정되면 선박 해체 작업은 환경오염 문제 등으로 인해 국내에서 진행하기 어려워 중국 등 외국 업체에 맡길 가능성이 큰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smj@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