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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칸] '버닝' 수상?...'설레발' 기사에 대한 변명

[스포츠조선 칸(프랑스)=이승미 기자] "아…". 제 71회 칸 영화제 폐막식이 끝나고 한국 기자단 사이에서 탄식이 터져나왔습니다. 폐막과 함께 진행된 시상식에서 한국 영화 최초로 황금종려상 수상까지 기대했던 이창동 감독의 '버닝'의 이름이 불리지 않았기 때문이죠.

폐막식 전까지 칸에 있는 한국 기자단의 마음은 부풀어 있었습니다. 한국영화가 처음으로 황금종려상을 받는 모습을 바로 칸 현지에서 지켜볼 수 있는 기회는 쉽게 얻을 수 있는게 아니기 때문이죠. 저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생애 첫 칸 영화제 출장. 내 생에 첫 칸에서 한국 영화가 새 역사를 쓰는 걸 목격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떨렸습니다.

그래서 매체마다 수상을 예측하는 기사들이 쏟아졌죠. "연이은 최고 평점" "황금종려상 탈까" "이창동 3년속 수상할까." 심지어 "황금종려상 눈앞"이란 제목의 기사도 나왔습니다. 기자들이 쏟아내는 장밋빛 보도에 독자들도 '이번엔 받을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버닝'의 본상 수상은 불발됐습니다. 영화 제작 당사자들에 앞서 수상 가능성을 높게 보던 기자들도 머쓱해졌고, 역시나 포털 댓글에는 '설레발'을 치는 기자들에 대한 질타와 비아냥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저도 그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죠. 그렇다면 왜 이런 현상이 벌어졌을까 곰곰이 되짚어봅니다.

해외영화제에 한국 영화가 진출할 때마다 수상 가능성을 높게 점치는 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유독 올해는 기대감이 컸습니다. 칸이 아끼는 이창동 감독이 8년만에 만든 신작인데다, 시사가 끝난 뒤 나온 현지 전문지들의 평점이 경쟁작 중 가장 높았기 때문입니다. 칸영화제 공식 매체인 '스크린'은 역대 영화제 최고 평점에 해당하는 4점 만점에 3.9점을 매겼습니다. 그러니 한국 영화 중심으로 취재하는 기자들에게 단단히 착시 현상이 생긴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이같은 평점이 칸 심사위원단에게 어떤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게 또 한번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일례로 2016년 제69회 칸 영화제에서도 각 영화 전문지로부터 최고 평점을 받은 '토니 에드만'(마렌 아데 감독)도 그 어떤 상을 받지 못한 채 빈 손으로 돌아간 바 있습니다.

칸 뿐만 아니라 유수의 해외영화제 수상작(자)은 온전히 심사위원단의 판단입니다. 그들의 취향을 비롯해 국적, 성별, 인종, 가치관 등이 큰 영향을 미칩니다. 올해 칸영화제 심사위원들은 지난해부터 부상한 페미니즘 영향으로 인해 여성 비중이 대폭 늘었습니다. 심사위원장부터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여배우 케이트 블란쳇이 맡았고 배우 레아 세이두, 크리스틴 스튜어트를 포함 해 총 다섯 명의 심사위원이 여성이죠. 따라서 따뜻하고 가족주의적이며 여성적 색체가 담겨 있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가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게 현지 관계자의 분석입니다. 이 관계자는 "세계적인 페미니즘 기류를 의식해 여성이 사건의 피해자로 나오는 '버닝'을 배제했다는 이야기 있다"며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내기도 했죠.

뿐만이 아닙니다. 영화 전문지에서 매긴 높은 평점이 오히려 독이 됐을 수도 있습니다. 심사위원들이 영화 전문지에서 선정한 평점과는 색깔이 다른 선택하는 것을 지향하며 평점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자체를 경계하기 때문입니다. 현지에서는 각종 영화 전문지와 영화 평론가들로부터 높은 점수를 받은 '버닝'이 오히려 역차별을 당했다는 말도 있습니다."그렇게 잘 아는 기자가 왜 그렇게 기대감을 높여놨나?" 이렇게 물으실 분들이 많겠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해외 영화제에 진출한 한국 영화를 제3자의 눈으로 냉정하게 보긴 쉽지 않습니다. 올림픽으로 치자면, 우리나라를 대표해서 출전한 선수인 셈이니까요. '실력은 좋은데, 메달 가능성은 경기가 끝나봐야 안다' 사실 전달을 넘어 의미(예측)를 담아야 하는 기자로서는 쉽지 않은 형식의 보도입니다. '한국 영화가 상을 받았으면'하는 기자의 마음이 12일 영화제 기간에 드러난 현지 분위기, 객관적으로 증명된 평단의 평가와 어우러지다 보니, 지금 다시 읽으며 민망한 보도들이 줄을 이은 듯합니다.

영화는 기록을 재는 스포츠 경기가 아니죠. 해외영화제에서의 수상은 순전히 그 해 심사위원들의 주관이 반영된 결과이고, 그래서 앞으로도 예측은 더욱 힘들 것입니다. 그럼에도 앞으로도 해외 영화제에 진출한 한국 영화에 대한 믿음과 기대는 꺾이지 않을 것 같습니다. 팔이 안으로 굽는 것에 대해 부끄럽지 않을 만큼 외신의 극찬을 이끄는 훌륭하고 좋은 한국 영화들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으니까요. 다만 기대 뒤에 앞서 말한 예측의 한계 등 객관적 사실을 더욱 강조할 필요는 있다고 여겨집니다.

smlee0326@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