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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휴먼스토리]향후 7~8년 '황대헌 시대', 겁없는 황대헌 이제 '열 아홉'이다

12년 전 일이다.

안양 안일초 1학년이던 황대헌는 '나의 꿈'을 그려오라는 숙제에 스케이트 안에 글을 적었다. '나의 꿈 : 숏트랙(쇼트트랙) 국가대표 선수. 꿈을 이루기 위해선? 열심히 연습.'

다섯살 때 빙상장에 놀러갔다 스케이트에 푹 빠져 쇼트트랙을 시작한 황대헌의 근성은 모친인 강묘진씨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강씨는 "중학교 때 발 부상이 있었다. 상처가 회복되면서 살이 올라고 있는데 그 살을 메스로 자르면서 타더라"고 회상했다.

러시아로 귀화한 안현수(빅토르 안·러시아명)와 골육종으로 세상을 떠난 노진규를 보며 쇼트트랙 선수 생활을 이어간 황대헌은 '최선을 다하자'는 좌우명을 가지고 있다.

일곱살 황대헌의 당찬 포부가 실현된 것은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16년이었다. 이미 주니어 대표로 동계유스올림픽과 주니어선수권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황대헌은 2016~2017시즌 ISU 월드컵 시리즈를 앞두고 발표된 국가대표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선발전 이후 불법도박혐의로 기소된 남자 선수 3명이 대표팀에서 제외되고 차순위였던 황대헌이 극적으로 8명 대표팀의 막차를 탄 것이었다. 실제 월드컵 출전 엔트리에선 후순위였으나 박세영과 서이라가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하면서 황대헌에게까지 기회가 왔다.

그는 힘겹게 얻은 귀중한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미국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린 2차 월드컵 1000m 준준결승에선 세계신기록(1분20초875)을 작성했다. 아직 깨지지 않고 있다. 벨라루스 민스크에서 열린 6차 대회에선 1000m 금메달을 차지했다.

가능성을 증명한 황대헌은 지난해 4월 대표 선발전에서 임효준에 이어 2위에 올라 당당하게 올림픽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더 이상 '대체선수'나 '후보선수'가 아님을 입증했다.

올 시즌 국제대회 남자 1500m에서 가장 돋보였다. 국제빙상연맹(ISU) 월드컵 2차와 3차 대회에서 연속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월드컵 1차와 4차 대회에선 은메달을 따냈다. 올림픽 시즌 당당히 1500m 월드컵랭킹 1위를 차지했다.

부상도 있었다. 지난해 11월 월드컵 3차 대회에서 왼팔을 다친 뒤 훈련과 대회를 연거푸 소화하면서 통증이 악화됐다. 서울에서 열렸던 월드컵 4차 대회에선 왼팔 통증을 안고 1500m에 출전하기도 했다. 황대헌은 "팔은 재활해서 많이 나아진 편"이라고 설명했다.

황대헌의 가장 큰 장점은 패기다. 10대 답게 무서울 것이 없다. 황대헌은 대표팀 내 적게는 세살부터 많게는 열살까지 차이가 나는 형들에게 스스럼없이 장난을 친다. 황대헌은 "워낙 형들과 나이차가 많이 난다. 그러나 서로 장난도 잘 친다. 그럴수록 예의를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금메달을 향한 기대감은 숨길 수 없었다. 황대헌은 "모두가 같은 선상에서 시작한다. 그 동안 준비했던 것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했었다.

황대헌은 '선두 게이머'다. 말 그대로 레이스 초반부터 선두로 치고나가 끝까지 1위로 마무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는 것이 김 감독의 분석이다. 이 스타일은 강한 체력이 바탕이 돼야 한다. 대표팀 내에서도 체력이 좋은 편인 황대헌은 지구력으로 끌고나가는 레이스를 즐긴다. 무엇보다 '애늙은이'다. 10대 답지 않게 냉철한 레이스를 펼친다.

하지만 결국 꿈만 같던 올림픽 시상식 맨 꼭대기에 서지 못했다. 500m에서 은메달 하나를 얻는데 그쳤다. 결코 실패는 아니다. 올림픽 경험이란 큰 자산을 얻었다. 세대교체가 빠르게 이뤄지는 쇼트트랙계에서 적어도 7~8년은 '황대헌 시대'를 열어 젖혔다.

황대헌은 이제 열 아홉이다. 강릉=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