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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올스타전]팬도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진짜 배구축제였다

선수와 팬이 하나된 한겨울의 '배구축제'였다.

21일 의정부체육관에서 2017~2018시즌 도드람 V리그 올스타전이 열렸다. 겨울철 최고 스포츠로 자리잡은 V리그, 그 최고의 별들이 모인 자리에는 함성과 웃음이 가득했다. 물론 주인공은 선수들이었다. 멋있는 모습만 보였던 선수들은 기꺼운 마음으로 망가짐도 불사했다. 팬들을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날 올스타전이 더욱 뜻 깊었던 것은 팬들이 함께 올스타전을 완성해냈기 때문이다. 선수들의 모습 하나하나에 열광하던 팬들은 직접 무대에 올라 함께 축제를 꾸몄다.

첫 테이프는 올스타 레드카펫인 '소원을 들어주세요!'가 끊었다. 장외 특별무대에서 선수들과 팬들이 만났다. 팬들이 바라는 소원을 직접 들어줬다. 재밌고, 기발한 소원들이 쏟아졌다. 정지석(대한항공)에게는 박기원 감독의 성대모사를 요구했고, 안우재 전광인(이상 한국전력)에게는 댄스를 주문했다. '코트 위의 모델'로 불리는 이바나(도로공사)에게는 모델 워킹을 요청했다. 선수들은 순간 쑥스러워 하다가도 이내 마음을 다잡고 팬들의 소원을 들어줬다.

최소리 드럼 퍼포먼스로 문을 연 올스타전은 선수들의 입장부터 눈길을 끌었다. V스타-K스타팀으로 이루어진 남녀 선수들은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며 팬들의 함성을 유도했다. V리그 올스타전의 양념으로 자리잡은 선수들의 별명 마킹은 이날도 팬들을 즐겁게 했다. 팬들이 SNS를 통해 선물한 별명에는 기발함이 넘쳤다. 이재영(흥국생명)-이다영(현대건설) 쌍둥이 자매는 유니폼만으로는 누군지 구분할 수 없었다. 둘은 나란히 '내가 누구게?'라는 별명을 등에 적었다. '배구계의 설현'으로 불리는 조송화(흥국생명)는 그간의 마음고생을 담은 듯 '설현씨 죄송합니다'라는 별명을 달았고, 하얀 피부로 유명한 고예림(IBK기업은행)은 '화성밀가루'가 됐다. 올스타전 최다득표 신영석(현대캐피탈)은 큰 코를 최근 유행어와 합쳐 '큰코니코니'를 달았고, '짝꿍' 서재덕이 부상으로 빠져 홀로 나선 전광인은 '어디갔냐 서재덕'을, 경기 중 발로 리시브한 장면을 패러디해 파다르는 '뜻밖의 족구왕'을 새겼다.

코트는 세리머니의 천국이었다. 선수들은 그간 펼치지 못했던 '끼'를 세리머니를 통해 발산했다. 역시 춤이 빠질 수 없었다. 여자부에서는 '흥자매' 이재영-이다영이 연신 춤을 추며 분위기를 주도했다. 세네갈 출신의 듀크(GS칼텍스)는 아프리카 댄스를 선보였고, 이나연(GS칼텍스)과 김나희(현대건설)는 최신 유행 K팝 댄스로 큰 환호를 이끌어냈다. 남자부에서는 신영석이 전현무 댄스로 팬들을 즐겁게 했고, 정지석(대한항공)과 박철우(삼성화재)는 저질댄스로 팬들의 배꼽을 잡았다. 의미를 담은 세리머니도 있었다. 20여일 앞으로 다가온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응원하기 위해 컬링과 쇼트트랙 동작을 재연한 세리머니도 펼쳤다.

선수들이 주연이었다면, 조연은 감독들이었다. 근엄한 모습으로 있던 감독들은 선수들의 끼에 장단을 맞췄다.신진식 삼성화재 신임 감독은 이날 가장 많이 얼굴을 비춘 사령탑이었다. 이다영과 함께 두차례 커플댄스를 춘 신 감독은 3세트 삼성화재 전성시대를 함께 이끌었던 최태웅 현대캐피탈 감독과 함께 직접 코트에 뛰어들어 멋진 득점을 올리기도 했다. 이도희 현대건설 감독과 이정철 IBK기업은행 감독도 춤판에 뛰어들었고, 경기 감독관으로 나선 차상현 GS칼텍스 감독은 '김진희(GS칼텍스)만 혼자 따로 소속팀 유니폼을 입었다'고 항의하는 황연주(현대건설)의 어필을 애교 있게 무마시켰다.

흥겨운 배구 축제, 특별 게스트를 빼놓을 수 없었다. 바로 팬이었다. 3세트에서 서브를 앞둔 파다르가 관중석으로 들어가더니 팬에게 볼을 건냈다. '대신 서브를 하라'는 뜻이었다. 이 팬은 멋지게 서브를 성공시킨 후, 댄스 세리머니까지 펼쳤다. 이날 올스타전에서 가장 큰 함성이 쏟아진 순간이었다. 1세트, 3세트 후 열린 이상형 월드컵에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선수를 직접 뽑기도 했다. 여자부에서는 배유나, 남자부에서는 전광인이 V리그 최고의 이상형으로 선정됐다. 전광인은 3년 연속 영광의 주인공이 됐다.

올스타전의 묘미로 자리잡은 서브 콘테스트는 이날도 이어졌다. 필리페은 시속 122km의 서브를 구사해 가스파리니를 제치고 '스파이크 킹'에 등극했다. 스파이크 퀸은 시속 87km를 기록한 문정원(한국도로공사)이 차지했다.지난 시즌 신설된 파워어택(남자부) 콘테스트에서는 알렉스(KB손해보험)가 우승을 차지했다. 클래스가 달랐다. 7.5m를 기록하며 이전까지 선두를 달리던 박상하(삼성화재)의 방해 공작에도 12m로 우승을 차지했다. 여자부에서만 진행된 플로터 서브 콘테스트에선 김수지(IBK기업은행)이 11점을 획득해 '최고 명사수'로 선정됐다.

이날 공격본능을 뽐낸 리베로 정민수(우리카드)는 기자단의 현장투표를 통해 남자부 최우수선수(MVP)를 거머쥐며 올스타전 별중의 별로 떠올랐다. 여자부 MVP는 이다영에게 돌아갔다. 세리머니상은 파다르와 듀크의 몫이었다. 경기는 세트스코어 2대2(13-15, 15-14, 11-15, 15-8)로 끝났지만, 총점에서 앞선 K스타팀이 V스타팀을 제압했다. 하지만 승패는 의미가 없었다. 이날 경기를 수놓은 선수와 감독, 경기장을 찾은 4823명의 배구팬 모두가 승자였다.

의정부=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